[ Classic Review ]
브람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Johannes Brahms, Concerto For Violin in D major, Op. 77)
1870년대는 브람스에게 매우 생산적인 시기였다. [하이든 주제의 의한 변주곡], [교향곡 1번]과 [2번] 같은 대작들이 이 10년의 기간 동안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1878년의 여름,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푀르트샤흐(Poertschach)에서 그의 오랜 친구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 연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떠올리고 있었다.
장엄한 양식을 가진 바이올린 협주곡을 구상하다
처음부터 브람스가 요아힘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1877년 여름 바덴바덴에서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 1908) 가 연주하는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초연 현장에 있던 브람스는 이 스페인 출신의 비르투오조에게 완전히 넋이 나갔다. 물론 그는 브루흐의 협주곡에 대해서는 그다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독주자의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에는 감탄을 표시했다. 브람스는 결국 장엄한 양식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브람스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모델로 생각했던 것은 베토벤의 협주곡이었지만, 조반니 비오티의 [바이올린 협주곡 22번]에서 첫 번째 씨앗을 발견했다. 브람스가 이 협주곡을 작곡하던 바로 그 해에도 요아힘과 함께 비오티의 협주곡을 연주했고 클라라 슈만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비오티의 [협주곡 22번]입니다. 대단히 독창적인 상상력이 인상적이었고 요아힘의 연주도 끝내줬죠.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 의견을 주고받은 작곡과정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요아힘의 역할은,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과장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브람스와 요아힘이 교환한 편지를 보면, 이 두 사람은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브람스가 요아힘의 기술적인 조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요아힘은 너무 어려운 기교적인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완성된 판본은 브람스의 굳은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힘의 역할은 비록 한정된 부분이지만, 분명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탄생에 하나의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요아힘은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나의 오랜 친구인 당신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얼마나 마음이 설레였는지. 더군다나 4악장의 협주곡이라니……. 독주 부분을 세심하게 보고 있는데 몇 군데는 손을 좀 봐야할 것 같더군요. 물론 총보가 아닌 파트보만을 보고서 판단하기는 좀 어렵지만 말입니다. 이 협주곡은 대단히 독창적인 것 같습니다. 실제 연주할 때의 효과가 어떨지는 지금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이 삼일 내로 함께 만나서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1878년 10월 23일, 브람스는 요아힘에게 “지금 아다지오와 스케르초 부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낸다. 한 달 후에는 “원래 계획했던 2개의 중간 악장을 빼버리기로 결심했고 대신 아다지오를 넣었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전체적인 구성에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독주자도 난색을 표한 어려운 기교의 걸작
요아힘의 손에 완성본이 전해진 것은 1878년 12월 12일이었고, 초연까지는 보름이 조금 넘게 남아 있었지만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던 25일까지는 열 이틀 밖에 시간이 없었다. 여전히 요아힘은 클라라 슈만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독주 부분이 너무 어렵다고 투덜거렸다. 초연 장소도 계속 표류중이었다. 프라하나 부다페스트가 물망에 오르다가 베를린과 빈으로 그러다 결국 라이프치히로 결정되었다. 1879년 1월 1일, 브람스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요제프 요아힘의 협연으로 초연되었다. 사라사테 같은 연주자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20세기 초반 에밀 소레와 앙리 마르토 그리고 브로니수아프 후베르만, 아돌프 부슈, 프리츠 크라이슬러 같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브람스 연주를 통해 자신들의 명성을 높였다. 현재 이 곡은 베토벤, 멘델스존의 작품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불려지는 걸작이 되었다.
1악장 - 알레그로 논 트로포
부드러운 세 박자, 그리고 첫 주제의 3화음 등이 인상적이며, 두 개의 주제적 동기가 지닌 리듬의 특성은 매우 흥미롭다. 다섯 개의 4분 음표 음형이 반복되면서 조성된 부드럽고 서정적인 동기는 제1바이올린에 의해 펼쳐지며, 다섯 박자 음형의 동일반복은 기초가 되는 세 박자의 갈등 구조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으뜸음과 딸림음에서 지속되는 페달 포인트 위로 독주자는 46마디의 ‘기교적인 어려움’를 풀어야 한다.
2악장 - 아다지오
매력적인 오보에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 악장은 고독하고 쓸쓸한 정경을 제시한다. 유달리 아름다운 아다지오 악장에 대해 브람스 자신은 그다지 만족하지 않은 것 같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대위법을 감상할 수 있다.
3악장 - 알레그로 지오코소, 마 논 트로포 비바체 - 포코 피우 프레스토
여섯 부분으로 된 론도는 독주 악기가 주제를 더블스톱으로 연주함으로써 시작된다. 헝가리의 짚시 스타일의 이 악장은 첼로의 셋잇단음표로 시작되는 코다가 파도처럼 긴장감을 높여나간다. 다만 브람스가 지시했듯이 ‘마 논 트로포 비바체’(그러나 너무 활기차지는 않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음현의 피치카토에 이어 독주 바이올린은 8분음의 휴지부를 두면서 마무리 된다.
- 글 김효진 / 월간 <라 뮤지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