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블랙모어의 딥 퍼플 탈퇴

1974년,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로 대변되는 딥 퍼플 3기가 두 번째 앨범Stormbringer를 발표했다. 그 후, 딥 퍼플의 리드 기타리스트이자 팀의 리더 리치 블랙모어가 돌연 딥 퍼플을 탈퇴했다. 이것은 기실 엄청난 사건이었다. 1960년대 후반, 블랙모어가 팀원들을 이리저리 모아서 딥 퍼플을 결성한 다음, 하드 록과 헤비메탈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다음, 스스로 자신이 만든 팀을 나간 것이다. 그 집의 주인이 집을 버리고 나갔으니, 집안의 위계 질서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리치 블랙모어가 딥 퍼플을 탈퇴했어도, 나머지 멤버들은 흑인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어느새 그의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바로 그 이유에는 딥 퍼플의 음악관이 리치 블랙모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갔기 때문, 그리고 더 이상 리치 블랙모어가 딥 퍼플의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치 블랙모어 이외의 나머지 멤버 4명 (이언 페이스, 존 로드, 데이비드 커버데일, 글렌 휴즈) 은 모두 블루스에 기반을 둔 록음악이나, 펑키 재즈 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에 의해 정식적인 데뷔를 마치고 딥 퍼플의 이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는, 리치 블랙모어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반기를 들 정도로 많이 성장해 있었다. 리치 블랙모어의 영향력은 딥 퍼플 내에서 더는 없었고, 리치 블랙모어는 스스럼없이 딥 퍼플을 탈퇴한 다음, 미국으로 날아갔다.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레인보우 1기 탄생

미국 뉴욕에 기반을 둔 블루스 록그룹 엘프 (Elf) 는 록 마니아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밴드이다. 그렇다. 리치 블랙모어의 눈에 띄어서 본격적으로 데뷔, 그렇게 해서 작금 록계에서 가장 위대한 보컬로 불려지는 로니 제임스 디오 (Dio) 가 몸 담았던 블루스 록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또 엘프는 딥 퍼플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의 섭외에 의해 딥 퍼플의 라이브 콘서트의 오프닝 밴드로 자주 호출되었던 그룹으로써, 딥 퍼플에게 자신들의 실력을 입증 받았던 때가 있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이런 기억 때문에 홀연히 뉴욕에 당도한 것이겠고, 그 목적은 다름 아닌 엘프 멤버들을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 밴드에 흡수시킬려고 했던 것이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마땅히 솔로로 독립한 이후 자기와 함께 음악을 할 뮤지션을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딥 퍼플 오프닝 밴드로서의 인연을 갖게 된 엘프 밴드가 있었기에 뉴욕으로 날아가 그들을 단박에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엘프는 리치 블랙모어에 의해 간판을 내리게 되었고, 리치 블랙모어는 자기가 예전부터 구상하던 팀 이름을 끄집어 내다가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였다. 그는 예전부터 <오즈의 마법사>,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무지개에 대한 순수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이름이 바로 레인보우 (Rainbow) 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짧게 ‘레인보우’ 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자신이 아무리 딥 퍼플에서 탈퇴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자신의 네임 밸류가 록계에서 강성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고 레인보우라는 밴드를 손쉽게 팬들에게 광고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덧붙여 Ritchie Blackmore's Rainbow라고 팀 이름을 지었다. 이렇게나 긴 이름은 심지어 레인보우가 정규 1집을 만들어서 발매하기 직전까지 그 이름이 유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레인보우의 매니지먼트 측의 의견과 팀 멤버들의 불만, 그리고 결정적으로 리치 블랙모어 자신도 팀 이름이 너무 길다고 인정했기에 다시 레인보우 (Rainbow) 로 짧게 고쳐 넣었다. 다시 이름 불려지기 편하게 고쳐졌지만, 또 여기에서 리치 블랙모어의 독단적인 행동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Ritchie Blackmore's Rainbow에 대한 이야기들

레인보우는 1975년 2월 20일부터 3월 14일까지,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1집 스튜디오 앨범을 내놓았는데, 바로 그것이 레인보우의 첫 시작, Ritchie Blackmore's Rainbow였다. 당시 레인보우의 매니지먼트와 음반 취입을 맡던 기획사는 폴리돌 레코즈 (Polydor Records) 였고, 리메이크 곡을 두 곡 삽입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트랙을 디오와 리치 블랙모어가 각각 작사, 작곡을 맡았다. 빠른 시일 내에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앨범의 완성도는 기준점 이상이었지만, 역시 급하게 내놓은 것이라서 약간의 억지스러움과 미숙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띤다. 그리고 Man On The Silver Mountain, Sixteenth Century Greensleeves 등의 노래가 히트를 친 것에 비해 나머지 트랙들은 평단으로부터 중간점 정도의 점수를 받는 것에 불과하였다.

Man On The Silver Mountain은 하드 록의 고전으로 기억되는 레인보우 초기 시절의 최고 히트곡이다. 리치 블랙모어의 철두철미한 리드 기타에, 환상의 보컬 디오의 목소리가 조합되어 최상의 화음을 자랑한다. 이 곡은 리치 블랙모어와 디오가 개인적으로 좋아라하는 유럽 고대 신화, 중세 스타일, 그리고 환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구조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봤을 때 리치 블랙모어 - 디오 조합은 서로의 기호가 잘 맞아떨어져 이후의 레인보우 명작 Rising 등이 태어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1969년에서부터 1971년까지 활동했던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쿼터마스 (Quatermass) 의 히트곡을 레인보우가 리메이크한 Black Sheep Of The Family는 전체적으로 흥겨운 분위기에서 곡이 전개되고, 굴곡이 많은 멜로디를 디오가 천부적인 보컬 능력으로 손쉽게 풀어나가는 능력이 대단히 잘 녹음되어있다. 게다가 마치 영국 록밴드 퀸 (Queen) 을 연상시키는 듯, 배킹 보컬과 리드 보컬의 호흡도 훌륭하다.

로니 제임스 디오는 클래식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슬로우 록에도 강점을 보이는데, 그러한 성향은 레인보우 1집의 수록곡 Catch The Rainbow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레인보우 초기 시절의 상징적인 이정표가 되는 곡이기도 하는데, 디오의 천부적인 보컬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할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디오는 사실 록 보컬에 있어 최강자이지만, 이렇게 슬로우 록이나 발라드 스타일의 노래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이후 레인보우는 이것과 비슷한 스타일의, 레인보우 최고의 슬로우 록 Rainbow Eyes를 1970년대 후반에 발표하게 되는데 (앨범 Long Live Rock 'n' Roll), 어떻게 보면 바로 그것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레인보우의 기수가 바뀌고, 보컬이 수시로 자리를 옮겨도 이 곡만큼은 레인보우의 라이브 공연에서 애창되는 곡이기도 하다. 레인보우의 4기 보컬 그레이엄 보넷 또한 이 곡을 애창한 바가 있다.

6번 트랙 The Temple Of The King은 고대 잉카 음악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면서, 특히나 우리나라 및 아시아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기도 하다. 심금을 울리는 환상적인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중간 부분에서 등장하는 리치 블랙모어의 정교하면서도 은은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조화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빈 틈이 없는 탄탄한 멜로디를 자랑하며, 이 곡은 디오나 블랙모어에게 공을 돌리기보다, 옆에서 전통 악기 파트로 물심양면 도와준 잉카 음악 밴드와 레인보우 멤버 전체의 팀플레이가 최고였다라고 언급해야 옳을 것이다. 이밖에도 If You Don't Like Rock 'N' Roll이라는 노래에서는 레인보우 멤버들의 록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노래로서, 로니 제임스 디오의 신명나는 보컬로 하여금 듣는 이에게 로큰롤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조바심이 날 정도. 이렇게 레인보우는 If You Don't Like Rock 'N' Roll을 시작으로 로큰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나타내는 곡들을 만들었는데, 3집 Long Live Rock 'n' Roll의 동명 타이틀곡에서 결정적으로 심화된다.

우리에게는 야드버즈 (Yardbirds) 의 히트곡으로 잘 알려진 Still I'm Sad가 1집에 들어있는데, Still I'm Sad가 수록되어 있는 이유를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 출신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떨친 리치 블랙모어가 야드버즈 멤버들인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턴, 그리고 제프 벡에 비해 영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순위에 자신의 이름을 끼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기를 든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인트로와 초반부를 장식하는 능수능란한 리드 기타 실력으로 듣는 이에게 일렉트릭 기타의 매력 속으로 푹 빠지게 만들고 있다. 그의 기타 주법 하나하나에 힘이, 그리고 자기가 영국 3대 기타리스트에 꼽히지 못한 그 설움을 담은 그 한 (恨) 이 서려있는 듯 하다.


레인보우 1집, 절반의 성공

레인보우 1집 Ritchie Blackmore's Rainbow는 리치 블랙모어가 급하게 섭외한 밴드 엘프를 기반으로 해서, 그 엘프 멤버들과 손발도 제대로 맞춰보지 못하고 급하게 음반을 뺀 것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앨범의 빈 틈이 수두룩하다. 리치 블랙모어 본인 스스로도 1집은 단지 레인보우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 자신의 강성함을 록계에 과시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었고, 처음부터 히트나 판매고 등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이것을 증명하는 바가, 바로 리치 블랙모어가 1집 발매 직후 몇 번의 콘서트 투어를 거친 다음 가장 자신과 손발이 잘 맞고 잠재적 능력이 있는 로니 제임스 디오를 제외한 레인보우 1기 멤버들을 모두 탈퇴시켰다는 것에 있겠다.

결국 리치 블랙모어의 마음 속에는 엘프 멤버들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고, 로니 제임스 디오라는 걸출한 보컬과 음악 작업을 같이 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엘프 출신의 레인보우 1기 멤버들을 모두 숙청시킨 다음 토니 캐리 (키보드), 지미 베인 (베이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슈퍼스타 드러머 코지 파웰을 영입한 것을 보면, 1집의 실패를 무마해서 레인보우의 내실을 키운 다음 곧바로 정상권에 복귀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리치 블랙모어는 1976년 2집 Rising을 통해 Stargazer 등의 하드 록, 헤비메탈 클래식을 발표하며 1집의 실패, 그리고 부진한 성적을 단숨에 만회하였다.

그래도 레인보우 1집에 내실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레인보우 1집이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다른 레인보우 앨범들에 비해 멤버들도 화려하지 않고, 음악적으로도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주목을 못 받지만 말이다. 잘 생각해보라. 록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18번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1집의 수록곡 Man On The Silver Mountain이라는 것을. 그리고 특히나 우리나라와 아시아권에서 우리나라 하면 딱 떠오르는 레인보우 명곡 The Temple Of The King 역시 1집 수록곡이다. 잉카 음악 밴드의 연주 덕분에 느껴지는 월드 뮤직 같은 이국적인 선율과 전체적으로 올드 팝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The Temple Of The King 때문에, 우리나라와 아시아권에서 레인보우 1집이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주시할 만하다.

                                          - 출처 : http://blog.naver.com/lzma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