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ck Review ]
글 수 33
딥 퍼플 3기
첫 번째, 리치 블랙모어는 1970년대 초반부터 신 리지 (Thin Lizzy) 의 필 리놋과 함께 모의했던 흑인 음악 프로젝트, 베이비 페이스 (Baby Face) 에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 두 번째, 그렇게 해서 부와 명예의 자리는 모두 누리던 정체된 딥 퍼플 2기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세 번째, 마침 딥 퍼플의 주도권이 이언 길런과 양강 체제로 굳혀지자 결국 '음악적 견해' 와 '이권 다툼' 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이언 길런을 쫓아냈다. 더불어서 좀 더 유연한 흑인 음악을 하기 위해,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도 내쫓았다.
이것이 바로 Burn과 Stormbringer를 내놓은 딥 퍼플 3기의 탄생 이유다. 결론적으로 독단적 성격과 타 멤버들과 음악적으로나 팀워크적으로나 공평한 위치에 놓일 수 없었던 리치 블랙모어의 입김이 컸다. 어딜 가던 반드시 주인공의 자리에 올라서야 했던 리치 블랙모어, 그리고 그만의 생각은 결국 하드 록, 헤비메탈의 절정을 연출했던 영광의 딥 퍼플 2기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온통 그루브감으로 철철 넘치는 두 멤버, 데이비드 커버데일 (보컬) 과 글렌 휴즈 (베이스, 보컬) 를 영입했다. 기존의 멤버 존 로드 (키보드), 이언 페이스 (드럼) 는 리치 블랙모어의 입맛에 맞춰서 어느새 부드러운 연주로 일관하고 있었다. (물론 이언 페이스는 리치 블랙모어와 흑인 음악을 하기로 암묵적 약속을 하긴 했었다)
평단에서는 딥 퍼플 3기가, 딥 퍼플 역대 기수 중에서 '짧은 기간 내에 고수익을 얻은 시기' 라고 평가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딥 퍼플 3기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햇수로 약 3년여의 시간동안 적당한 스튜디오 앨범, 라이브 앨범을 내면서 기대 이하의 성적보다는 늘 기준치 그 이상의 성적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흑인 음악을 했다지만, 딥 퍼플의 본능을 숨기지 않고 헤비메탈 넘버를 여러개 만들기도 했고, 애절한 포크 록 또는 Burn 앨범의 수록곡 "A" 200 같이 전위예술적인 인스트루먼틀 트랙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딥 퍼플 2기의 아우라가 너무 강했기에, 결국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딥 퍼플 2기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딥 퍼플 3기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히 즐겨 찾게 되는 기수이고, 딥 퍼플 2기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딥 퍼플 3기의 히트 트랙인 Burn이나 Stormbringer, Soldier Of Fortune 등을 들려준다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기수가 딥 퍼플 3기가 아닐까 싶다. 더해서 딥 퍼플 3기는 연속성을 지닌다.
헤비메탈의 딥 퍼플 2기는 1980년대에 들어서야 재결성 되었을 정도로 그 텀이 길었지만, 딥 퍼플 3기는 (좋게 이야기해서)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타미 볼린이 가세한4기까지 그 음악적 공통분모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리치 블랙모어의 탈퇴 외에는, 음악적인 베이스는 그대로 4기로 이전되는 시기였다.
극단적인 평가가 오가는 딥 퍼플 3기의 마지막, Stormbringer
딥 퍼플 3기는 1974년 첫 작품 Burn의 엄청난 대히트에 힘입어 앨범의 높은 판매고, 투어 콘서트 성황리 등 행하는 것마다 1위를 달렸다.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라는 주력 멤버들이 빠진 딥 퍼플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평론가들의 모든 예상을 뒤엎고 말이다. 물론 딥 퍼플의 익사이팅한 록음악의 향연을 바라던 팬들에게는 딥 퍼플 3기가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 모두 헤비메탈에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의 첫 스타트나 하일라이트에서는 어김없이 Highway Star나 Smoke On The Water를 들려주며 객석을 열광의 바다로 만들었다.
그 사이에 딥 퍼플 3기는 1번 트랙 Stormbringer 외에는 온통 그루브감 넘치고 블루지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Stormbringer를 1974년 가을에 내놓았다. Burn과의 앨범 발매 연도는 같으나, Burn이 1973년 후반기에 제작되어 1974년 연초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사실상 1년의 텀이 있었다고 봐도 무관할 것이다. 이렇게 딥 퍼플 3기는 스튜디오 앨범에서는 흑인 음악을,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와 록 스피릿의 충만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팬들이 모인 콘서트 현장에서는 고출력의 헤비메탈을 쏟아내며 '완벽한 이중 생활' 을 엮어냈다. 그런데 Stormbringer는 이전 작품 Burn처럼 '흑인 음악과 록의 적절한 조화' 가 아니었다. 작정하고 블루스, 펑키 재즈, 포크 록으로 도배를 해놨다.
그래서 평단에서는 Stormbringer 앨범에 대해, 이전작 Burn보다는 짜게 점수를 주는 편이었다. 물론 Stormbringer 역시 전 세계에서 무수한 판매고를 올리며 딥 퍼플 3기의 네임 밸류를 증명케했지만, 평단은 "딥 퍼플 고유의 록적인 맛이 배제되었다" 라는 반응을 보이며 유력 언론지마다 한 목소리를 해냈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Stormbringer를 상업적인 측면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딥 퍼플 3기의 음악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 포털 사이트 <올뮤직닷컴> 에서도 이 앨범에게 별 두 개만 책정했다. 게다가 이 앨범의 수록곡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이 앨범의 제목이 어느 판타지 소설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전설 속의 대검 (大劍) 이라고 서술하는 등, 그다지 평할 거리가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Stormbringer에 대한 아시아권의,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 평단의 반응은 이와 정 반대이다. 영국을 비롯한 현지의 평단이 Stormbringer에 대한 실망이라면, 아시아권 평단에서는 거의 딥 퍼플 역대 앨범 중 히트작 In Rock, Machine Head와 비견했을 때 전혀 모자르지 않다는 말을 한다. 물론 이것은 동서양 평단 모두 공통적이다. Stormbringer와 Soldier Of Fortune 외에는 거의 전체적인 트랙에 있어서 연결성이 부족하고, 맥이 빠지는 느낌을 준다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두 노래 중 Soldier Of Fortune이 지니고 있는 그 한 (恨) 스러움과 애절한 멜로디가 아시아권을 사로잡은 결정적 요인이다. 그래서 아시아권 평단에서는 Stormbringer 작품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다.
Soldier Of Fortune이 지니고 있는 아시아권에서의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 특히 우리나라만 봐도, 이 노래를 모르는 음악 팬들이 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하며, 딥 퍼플의 히트곡을 나열해보라 하면 반드시 이 곡이 언급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7080 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들까지, Soldier Of Fortune은 딥 퍼플이 남긴 최고의 어쿠스틱 넘버이다. 그래서 사실상 이 곡 하나 때문에 음반 판매점에서는 Stormbringer의 판매고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굳이 Stormbringer 정규 앨범에서 추출되지 않더라도 중년 세대들이 즐겨 찾는 베스트 팝 앨범에서 Soldier Of Fortune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문화적 차이를 수용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서 Stormbringer의 평가는 동서양 사이에서 극단적인 평이 오간다.
데이비드 커버데일 - 글렌 휴즈 조합의 환상적인 앙상블
Stormbringer는 사실 앞서 말했듯이 전체적 트랙의 연결성이나 음악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흑인 음악의 그 특유의 통통거리는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그루브를 즐기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이유가 바로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환상적인 팀워크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 앨범이 그나마 최악의 혹평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앙상블이 Burn 앨범보다 더 짜임새 있게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허스키한 음색으로 리치 블랙모어, 그리고 존 로드의 펑키한 연주에 맞춰 음악의 리듬을 탄다. 이렇게 단순하게 이뤄진다면 조금 스피디한 맛이 줄어들텐데, 이 즈음에서 글렌 휴즈의 정적을 깨는 상쾌하면서도 그루브한 보컬이 더해지며 세션은 어느새 '빠르게, 그리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 두 사람은 서로의 빈 틈을 막아주며 곡을 전개시키는데, 예를 들어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첫 스타트를 끊고 한참 가사를 읊다가 음악의 맛에 취해 애드리브를 하고 있으면, 글렌 휴즈가 재빨리 가사를 이어서 빈 틈을 막아주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조합이 너무 완벽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대표적으로 권할 수 있는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완성작은 2번 트랙 Love Don't Mean A Thing, 6번 트랙 You Can't Do It Right, 그리고 8번 트랙 The Gypsy다. 공교롭게도 앞선 두 개의 트랙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하는 두 보컬의 팀워크이고, 마지막에 언급한 The Gypsy는 평단에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Love Don't Mean A Thing은 마치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가 한 몸이 된 것처럼, 끊어짐 없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니 소름이 다 돋을 정도이다. You Can't Do It Right에서는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이 스피디한 리듬에서도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자랑스런 커버일 것이다.
The Gypsy는 팬들 사이에서 "Soldier Of Fortune의 그늘에 가렸지만, 사실상 딥 퍼플 3기의 베스트 트랙에 꼭 넣어야할 노래" 라고 들려지며, 평단에서도 역시 이 곡의 애절한 멜로디와 딥 퍼플 팀원들의 플레이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 곡에서는 리드 기타 리치 블랙모어의 결단력 있는 기타 주법과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밀고 당기기가 예술인데, 결국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가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팀워크가 얼마나 탄탄한지 실험을 하는 격이고, 거기에 맞선 보컬 듀오는 긴장감을 놓지 않고 충분히 대응했기에 The Gypsy가 고평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Stormbringer가 실망스런 작품이라고 잣대를 무심코 내리기보다는,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훌륭한 상응성에 점수를 더 줘야 할 것이다.
너무나도 아쉬운 딥 퍼플 3기의 종말
이렇게 딥 퍼플 3기는 1974년이 곧 그들의 절정기였고, 그들은 여기에서 흑인 음악과 록의 적절한 조화로도 딥 퍼플의 브랜드 네임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했다. 또한 그러면서 딥 퍼플은 더욱 더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신인에 불과하던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는 어느새 록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제 또 뻔한 레퍼토리가 등장하는데, 원맨 밴드의 이름을 다하고 싶었던 1인자 리치 블랙모어, 그리고 여기에 대항하는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배치는 딥 퍼플 3기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근데 문제는 이제 더이상 딥 퍼플 3기 내에서 리치 블랙모어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존 로드, 이언 페이스 모두 커버데일 - 휴즈 듀오의 편이었다.
팀의 프론티어 리치 블랙모어의 딥 퍼플 탈퇴라는 희대의 사건,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라는 새로운 밴드 결성과 미국 기타리스트 타미 볼린의 딥 퍼플 가입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타미 볼린 역시 제임스 갱 (James Gang) 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하드록 슈퍼밴드 출신이기에, 슈퍼스타들의 자리 이동과 타미 볼린의 딥 퍼플 가입은 말 그대로 세계 록계의 커다란 지각 변동이었다. 물론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라는 그룹을 만들고 오로지 자기만의 음악적 세계에 빠질 수 있어서, 그리고 딥 퍼플 측에서는 계속 흑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재즈 퓨전 기타의 1인자 타미 볼린을 영입해서 그것을 지속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윈윈 게임이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이것은 사실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Soldier Of Fortune처럼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작심하고 구슬픈 보컬로 온 공기를 엄숙하게 만들어놓고, 그 사이에서 리치 블랙모어가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사용하며 잘 정돈된 기타 주법으로 전개해나가는 이른바 커버데일 - 블랙모어 조합이 굉장히 훌륭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지에서는 앞서 말했던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상응성과 딥 퍼플 3기가 헤비메탈과 흑인 음악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로 임기응변 했다는 것에 더 점수를 주는 편이지만,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리치 블랙모어가 자아내는 넘버원 포크 록 트랙 Soldier Of Fortune의 존재 역시 재조명 되어야 마땅하다.
어차피 상응성, 임기응변은 누구나 다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기에, 이런 커다란 이유에 의해서 커버데일 - 블랙모어가 잠시간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포크 록의 진면목이 가려진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Stormbringer 앨범에서는 글렌 휴즈가 리드 보컬로 나서 본격적으로 포크 록을 들려주었던 Holy Man이라는 트랙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딥 퍼플 베스트 앨범에 몇 번 소개된 적 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실험적 요소였다. 하지만 Soldier Of Fortune은 일단은 아시아권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있고, 딥 퍼플이 일본 시장 등을 공략할 때 자주 사용되었던 무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분명 굉장한 곡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커버데일 - 블랙모어 듀오의 포크 록은 아름다운 선율의 명곡과 함께,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역사가 되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lzmania
낭만적이었던 제 3기의 마지막 작품
하드 록의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록 음악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던 딥 퍼플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제 3기도 이제 본작을 남기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특이한 사실은, 3기 당시 약간이나마 남아 있었던 하드 록의 색깔(Burn이나 Stormbringer)과 리드 기타인 리치 블랙모어의 탈퇴 빼고는 거의 변한게 없다는 사실이죠. 그것 빼고는 앞으로 도래할 제 4기에서도 데이빗 커버데일의 블루지한 보컬과 글렌 휴즈의 탄탄한 베이스 및 도발적인 보컬을 계속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리치 블랙모어의 탈퇴를 정말 눈여겨 보아야 할 텐데, 데이빗과 글렌으로부터 영향을 받은정통 미국 블루스, 펑키 재즈 식의 음악관에 질려버린 리치는 1969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그룹의 일원이자 리더로써 그 자리를 굳게 지켜온 '딥 퍼플' 을 탈퇴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미 그에겐 그만의 음악관이 형성되어 있었고, 딥 퍼플을 떠난다 해도 절대 굴하지 않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죠. 강인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치가 오히려 이 데이빗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를 쫓아내야 할 텐데 쪽수(?)가 안되다 보니 선뜻 힘을 발휘하지 못했나 봅니다. 심지어 제 2의 권력을 가진 키보드 존 로드는 물론 딥 퍼플의 붙박이 드럼 연주가 이언 페이스도 자기네들은 '보류' 상태라며 이 일에 간섭하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리치는 1974년 딥 퍼플 탈퇴를 표명하고 미국 뉴욕으로 날아갑니다. 거기서 그는 무명 록그룹 엘프(Elf)를 흡수하여 Ritchie Blackmore's Rainbow(레인보우의 전신)를 결성하게 됩니다.
하드 록, 펑키 재즈, 소울 등이 적절히 분배된 '크로스오버 앨범'
1번 곡 Stormbringer는 제 2기를 연상시키는 리치 블랙모어의 도발적인 기타 리프로 시작하여 데이빗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공격적인 보컬이 서로 교차하면서 경쟁합니다.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기타 리프는 헤비 메탈을 연상시키죠. 그런데 2번 곡 Love Don't Mean A Thing에서부터는 쫄깃쫄깃한 펑키 재즈가 들려옵니다. 이런 식으로 본작 Stormbringer는 딥 퍼플의 주종목인 하드록에서부터 펑키 재즈, 블루스, 소울까지 그 장르가 다양합니다. 일명 크로스오버(cross-over)라고도 불리우는 이러한 방식은, 듣는 이에게 딥 퍼플이 연출하는 다양한 음악으로 하여금 일종의 선택 기회도 갖게 만들고, 음악적 감흥을 더욱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딥 퍼플 불후의 명곡 9번 Soldier Of Fortune 같음 블루스 곡은 이제까지 딥 퍼플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우울하면서도 한스러운 감정을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끝까지 열심히 녹음 작업에 착실했던 리치 블랙모어
누구는 본작에서 들려오는 리치의 기타 연주를 듣고선 "레인보우의 냄새가 난다." 고 하고, 누구는본작에서 몇몇곡은 리치가 참여하지 않았다며 마치 리치가 딥 퍼플을 그냥 손에 놓았다는 듯이 표현합니다. 그러나 본작 Stormbringer의 모든 곡은 다 리치가 리드기타로 참여했었고, 작곡 면에서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이러한 유언(流言)들은 리치의 자존심을 깎아먹는 말일 것입니다. 분명 그는 모든 곡의 작사,작곡 표시에 자신의 이름을 들이밀 정도로 열심히 연주했습니다. 각각 들어보시면 전에 들어보셨던 리치 특유의 기타 연주법(기타를 잘 몰라 어떻게 설명해드릴지 모르지만,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직선적인) 들이 귓속을 사정없이 찌를 것입니다. 약 5년간 활동하면서 깊이 정든 딥 퍼플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Soldier Of Fortune에서의 그의 기타는 정성스럽게 감정을 싣고 연주한 흔적이 선합니다.
난무하는 혹평 끝에 다시 재조명받게 된 '수작'
리치 블랙모어 자신도 '역대 딥 퍼플 앨범 중에서 제일 싫어하는 앨범' 이라고 젊은 날 칭했었고, 딥 퍼플 팬들은 물론 언론에서까지도 미국물이 제대로 든 블루스의 아류작이라며 혹평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1994년에서야 정식으로 발매되어 대부분의 팬들은 본작 Stormbringer를 잘 몰랐었습니다. (물론 본작 수록곡 Soldier Of Fortune은 대박을 터트렸지만) 그러나 점점 본작이 국내 팬들에게 재조명되면서 대체로 곡이 좋다는 평을 듣습니다. 세계 각 도처의 딥 퍼플 팬들도 본작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저 또한 딥 퍼플 제 4기의 단 하나의 앨범 Come Taste The Band와 함께 아까운 명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치 블랙모어도 최근에 "레드 제플린의 앨범들과 함께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앨범은 Stormbringer 다." 라고 할만큼 본작의 진가는 뒤늦게 밝혀지죠. 특히 8번 곡 The Gypsy는 애절한 블루스 곡으로써 딥 퍼플 제 3기의 또다른 명곡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mokook
첫 번째, 리치 블랙모어는 1970년대 초반부터 신 리지 (Thin Lizzy) 의 필 리놋과 함께 모의했던 흑인 음악 프로젝트, 베이비 페이스 (Baby Face) 에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 두 번째, 그렇게 해서 부와 명예의 자리는 모두 누리던 정체된 딥 퍼플 2기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세 번째, 마침 딥 퍼플의 주도권이 이언 길런과 양강 체제로 굳혀지자 결국 '음악적 견해' 와 '이권 다툼' 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이언 길런을 쫓아냈다. 더불어서 좀 더 유연한 흑인 음악을 하기 위해,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도 내쫓았다.
이것이 바로 Burn과 Stormbringer를 내놓은 딥 퍼플 3기의 탄생 이유다. 결론적으로 독단적 성격과 타 멤버들과 음악적으로나 팀워크적으로나 공평한 위치에 놓일 수 없었던 리치 블랙모어의 입김이 컸다. 어딜 가던 반드시 주인공의 자리에 올라서야 했던 리치 블랙모어, 그리고 그만의 생각은 결국 하드 록, 헤비메탈의 절정을 연출했던 영광의 딥 퍼플 2기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온통 그루브감으로 철철 넘치는 두 멤버, 데이비드 커버데일 (보컬) 과 글렌 휴즈 (베이스, 보컬) 를 영입했다. 기존의 멤버 존 로드 (키보드), 이언 페이스 (드럼) 는 리치 블랙모어의 입맛에 맞춰서 어느새 부드러운 연주로 일관하고 있었다. (물론 이언 페이스는 리치 블랙모어와 흑인 음악을 하기로 암묵적 약속을 하긴 했었다)
평단에서는 딥 퍼플 3기가, 딥 퍼플 역대 기수 중에서 '짧은 기간 내에 고수익을 얻은 시기' 라고 평가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딥 퍼플 3기는 1973년부터 1975년까지, 햇수로 약 3년여의 시간동안 적당한 스튜디오 앨범, 라이브 앨범을 내면서 기대 이하의 성적보다는 늘 기준치 그 이상의 성적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흑인 음악을 했다지만, 딥 퍼플의 본능을 숨기지 않고 헤비메탈 넘버를 여러개 만들기도 했고, 애절한 포크 록 또는 Burn 앨범의 수록곡 "A" 200 같이 전위예술적인 인스트루먼틀 트랙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딥 퍼플 2기의 아우라가 너무 강했기에, 결국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딥 퍼플 2기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딥 퍼플 3기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상당히 즐겨 찾게 되는 기수이고, 딥 퍼플 2기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딥 퍼플 3기의 히트 트랙인 Burn이나 Stormbringer, Soldier Of Fortune 등을 들려준다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기수가 딥 퍼플 3기가 아닐까 싶다. 더해서 딥 퍼플 3기는 연속성을 지닌다.
헤비메탈의 딥 퍼플 2기는 1980년대에 들어서야 재결성 되었을 정도로 그 텀이 길었지만, 딥 퍼플 3기는 (좋게 이야기해서)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타미 볼린이 가세한4기까지 그 음악적 공통분모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리치 블랙모어의 탈퇴 외에는, 음악적인 베이스는 그대로 4기로 이전되는 시기였다.
극단적인 평가가 오가는 딥 퍼플 3기의 마지막, Stormbringer
딥 퍼플 3기는 1974년 첫 작품 Burn의 엄청난 대히트에 힘입어 앨범의 높은 판매고, 투어 콘서트 성황리 등 행하는 것마다 1위를 달렸다.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라는 주력 멤버들이 빠진 딥 퍼플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평론가들의 모든 예상을 뒤엎고 말이다. 물론 딥 퍼플의 익사이팅한 록음악의 향연을 바라던 팬들에게는 딥 퍼플 3기가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 모두 헤비메탈에도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의 첫 스타트나 하일라이트에서는 어김없이 Highway Star나 Smoke On The Water를 들려주며 객석을 열광의 바다로 만들었다.
그 사이에 딥 퍼플 3기는 1번 트랙 Stormbringer 외에는 온통 그루브감 넘치고 블루지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Stormbringer를 1974년 가을에 내놓았다. Burn과의 앨범 발매 연도는 같으나, Burn이 1973년 후반기에 제작되어 1974년 연초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사실상 1년의 텀이 있었다고 봐도 무관할 것이다. 이렇게 딥 퍼플 3기는 스튜디오 앨범에서는 흑인 음악을,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와 록 스피릿의 충만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팬들이 모인 콘서트 현장에서는 고출력의 헤비메탈을 쏟아내며 '완벽한 이중 생활' 을 엮어냈다. 그런데 Stormbringer는 이전 작품 Burn처럼 '흑인 음악과 록의 적절한 조화' 가 아니었다. 작정하고 블루스, 펑키 재즈, 포크 록으로 도배를 해놨다.
그래서 평단에서는 Stormbringer 앨범에 대해, 이전작 Burn보다는 짜게 점수를 주는 편이었다. 물론 Stormbringer 역시 전 세계에서 무수한 판매고를 올리며 딥 퍼플 3기의 네임 밸류를 증명케했지만, 평단은 "딥 퍼플 고유의 록적인 맛이 배제되었다" 라는 반응을 보이며 유력 언론지마다 한 목소리를 해냈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Stormbringer를 상업적인 측면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딥 퍼플 3기의 음악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 포털 사이트 <올뮤직닷컴> 에서도 이 앨범에게 별 두 개만 책정했다. 게다가 이 앨범의 수록곡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이 앨범의 제목이 어느 판타지 소설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전설 속의 대검 (大劍) 이라고 서술하는 등, 그다지 평할 거리가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Stormbringer에 대한 아시아권의,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 평단의 반응은 이와 정 반대이다. 영국을 비롯한 현지의 평단이 Stormbringer에 대한 실망이라면, 아시아권 평단에서는 거의 딥 퍼플 역대 앨범 중 히트작 In Rock, Machine Head와 비견했을 때 전혀 모자르지 않다는 말을 한다. 물론 이것은 동서양 평단 모두 공통적이다. Stormbringer와 Soldier Of Fortune 외에는 거의 전체적인 트랙에 있어서 연결성이 부족하고, 맥이 빠지는 느낌을 준다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두 노래 중 Soldier Of Fortune이 지니고 있는 그 한 (恨) 스러움과 애절한 멜로디가 아시아권을 사로잡은 결정적 요인이다. 그래서 아시아권 평단에서는 Stormbringer 작품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다.
Soldier Of Fortune이 지니고 있는 아시아권에서의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 특히 우리나라만 봐도, 이 노래를 모르는 음악 팬들이 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하며, 딥 퍼플의 히트곡을 나열해보라 하면 반드시 이 곡이 언급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7080 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들까지, Soldier Of Fortune은 딥 퍼플이 남긴 최고의 어쿠스틱 넘버이다. 그래서 사실상 이 곡 하나 때문에 음반 판매점에서는 Stormbringer의 판매고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굳이 Stormbringer 정규 앨범에서 추출되지 않더라도 중년 세대들이 즐겨 찾는 베스트 팝 앨범에서 Soldier Of Fortune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문화적 차이를 수용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서 Stormbringer의 평가는 동서양 사이에서 극단적인 평이 오간다.
데이비드 커버데일 - 글렌 휴즈 조합의 환상적인 앙상블
Stormbringer는 사실 앞서 말했듯이 전체적 트랙의 연결성이나 음악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흑인 음악의 그 특유의 통통거리는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그루브를 즐기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 이유가 바로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환상적인 팀워크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 앨범이 그나마 최악의 혹평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앙상블이 Burn 앨범보다 더 짜임새 있게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허스키한 음색으로 리치 블랙모어, 그리고 존 로드의 펑키한 연주에 맞춰 음악의 리듬을 탄다. 이렇게 단순하게 이뤄진다면 조금 스피디한 맛이 줄어들텐데, 이 즈음에서 글렌 휴즈의 정적을 깨는 상쾌하면서도 그루브한 보컬이 더해지며 세션은 어느새 '빠르게, 그리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 두 사람은 서로의 빈 틈을 막아주며 곡을 전개시키는데, 예를 들어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첫 스타트를 끊고 한참 가사를 읊다가 음악의 맛에 취해 애드리브를 하고 있으면, 글렌 휴즈가 재빨리 가사를 이어서 빈 틈을 막아주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조합이 너무 완벽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대표적으로 권할 수 있는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완성작은 2번 트랙 Love Don't Mean A Thing, 6번 트랙 You Can't Do It Right, 그리고 8번 트랙 The Gypsy다. 공교롭게도 앞선 두 개의 트랙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하는 두 보컬의 팀워크이고, 마지막에 언급한 The Gypsy는 평단에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Love Don't Mean A Thing은 마치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가 한 몸이 된 것처럼, 끊어짐 없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니 소름이 다 돋을 정도이다. You Can't Do It Right에서는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이 스피디한 리듬에서도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자랑스런 커버일 것이다.
The Gypsy는 팬들 사이에서 "Soldier Of Fortune의 그늘에 가렸지만, 사실상 딥 퍼플 3기의 베스트 트랙에 꼭 넣어야할 노래" 라고 들려지며, 평단에서도 역시 이 곡의 애절한 멜로디와 딥 퍼플 팀원들의 플레이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 곡에서는 리드 기타 리치 블랙모어의 결단력 있는 기타 주법과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밀고 당기기가 예술인데, 결국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가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팀워크가 얼마나 탄탄한지 실험을 하는 격이고, 거기에 맞선 보컬 듀오는 긴장감을 놓지 않고 충분히 대응했기에 The Gypsy가 고평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Stormbringer가 실망스런 작품이라고 잣대를 무심코 내리기보다는,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훌륭한 상응성에 점수를 더 줘야 할 것이다.
너무나도 아쉬운 딥 퍼플 3기의 종말
이렇게 딥 퍼플 3기는 1974년이 곧 그들의 절정기였고, 그들은 여기에서 흑인 음악과 록의 적절한 조화로도 딥 퍼플의 브랜드 네임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했다. 또한 그러면서 딥 퍼플은 더욱 더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신인에 불과하던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는 어느새 록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제 또 뻔한 레퍼토리가 등장하는데, 원맨 밴드의 이름을 다하고 싶었던 1인자 리치 블랙모어, 그리고 여기에 대항하는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배치는 딥 퍼플 3기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근데 문제는 이제 더이상 딥 퍼플 3기 내에서 리치 블랙모어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존 로드, 이언 페이스 모두 커버데일 - 휴즈 듀오의 편이었다.
팀의 프론티어 리치 블랙모어의 딥 퍼플 탈퇴라는 희대의 사건,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레인보우라는 새로운 밴드 결성과 미국 기타리스트 타미 볼린의 딥 퍼플 가입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타미 볼린 역시 제임스 갱 (James Gang) 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하드록 슈퍼밴드 출신이기에, 슈퍼스타들의 자리 이동과 타미 볼린의 딥 퍼플 가입은 말 그대로 세계 록계의 커다란 지각 변동이었다. 물론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라는 그룹을 만들고 오로지 자기만의 음악적 세계에 빠질 수 있어서, 그리고 딥 퍼플 측에서는 계속 흑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재즈 퓨전 기타의 1인자 타미 볼린을 영입해서 그것을 지속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윈윈 게임이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아쉬운 점이 있다. 이것은 사실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Soldier Of Fortune처럼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작심하고 구슬픈 보컬로 온 공기를 엄숙하게 만들어놓고, 그 사이에서 리치 블랙모어가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사용하며 잘 정돈된 기타 주법으로 전개해나가는 이른바 커버데일 - 블랙모어 조합이 굉장히 훌륭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지에서는 앞서 말했던 커버데일 - 휴즈 조합의 상응성과 딥 퍼플 3기가 헤비메탈과 흑인 음악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로 임기응변 했다는 것에 더 점수를 주는 편이지만,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리치 블랙모어가 자아내는 넘버원 포크 록 트랙 Soldier Of Fortune의 존재 역시 재조명 되어야 마땅하다.
어차피 상응성, 임기응변은 누구나 다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기에, 이런 커다란 이유에 의해서 커버데일 - 블랙모어가 잠시간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포크 록의 진면목이 가려진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Stormbringer 앨범에서는 글렌 휴즈가 리드 보컬로 나서 본격적으로 포크 록을 들려주었던 Holy Man이라는 트랙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딥 퍼플 베스트 앨범에 몇 번 소개된 적 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실험적 요소였다. 하지만 Soldier Of Fortune은 일단은 아시아권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있고, 딥 퍼플이 일본 시장 등을 공략할 때 자주 사용되었던 무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분명 굉장한 곡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커버데일 - 블랙모어 듀오의 포크 록은 아름다운 선율의 명곡과 함께,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역사가 되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lzmania
낭만적이었던 제 3기의 마지막 작품
하드 록의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록 음악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던 딥 퍼플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버린 제 3기도 이제 본작을 남기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특이한 사실은, 3기 당시 약간이나마 남아 있었던 하드 록의 색깔(Burn이나 Stormbringer)과 리드 기타인 리치 블랙모어의 탈퇴 빼고는 거의 변한게 없다는 사실이죠. 그것 빼고는 앞으로 도래할 제 4기에서도 데이빗 커버데일의 블루지한 보컬과 글렌 휴즈의 탄탄한 베이스 및 도발적인 보컬을 계속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리치 블랙모어의 탈퇴를 정말 눈여겨 보아야 할 텐데, 데이빗과 글렌으로부터 영향을 받은정통 미국 블루스, 펑키 재즈 식의 음악관에 질려버린 리치는 1969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그룹의 일원이자 리더로써 그 자리를 굳게 지켜온 '딥 퍼플' 을 탈퇴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미 그에겐 그만의 음악관이 형성되어 있었고, 딥 퍼플을 떠난다 해도 절대 굴하지 않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죠. 강인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치가 오히려 이 데이빗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를 쫓아내야 할 텐데 쪽수(?)가 안되다 보니 선뜻 힘을 발휘하지 못했나 봅니다. 심지어 제 2의 권력을 가진 키보드 존 로드는 물론 딥 퍼플의 붙박이 드럼 연주가 이언 페이스도 자기네들은 '보류' 상태라며 이 일에 간섭하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리치는 1974년 딥 퍼플 탈퇴를 표명하고 미국 뉴욕으로 날아갑니다. 거기서 그는 무명 록그룹 엘프(Elf)를 흡수하여 Ritchie Blackmore's Rainbow(레인보우의 전신)를 결성하게 됩니다.
하드 록, 펑키 재즈, 소울 등이 적절히 분배된 '크로스오버 앨범'
1번 곡 Stormbringer는 제 2기를 연상시키는 리치 블랙모어의 도발적인 기타 리프로 시작하여 데이빗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의 공격적인 보컬이 서로 교차하면서 경쟁합니다.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기타 리프는 헤비 메탈을 연상시키죠. 그런데 2번 곡 Love Don't Mean A Thing에서부터는 쫄깃쫄깃한 펑키 재즈가 들려옵니다. 이런 식으로 본작 Stormbringer는 딥 퍼플의 주종목인 하드록에서부터 펑키 재즈, 블루스, 소울까지 그 장르가 다양합니다. 일명 크로스오버(cross-over)라고도 불리우는 이러한 방식은, 듣는 이에게 딥 퍼플이 연출하는 다양한 음악으로 하여금 일종의 선택 기회도 갖게 만들고, 음악적 감흥을 더욱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딥 퍼플 불후의 명곡 9번 Soldier Of Fortune 같음 블루스 곡은 이제까지 딥 퍼플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우울하면서도 한스러운 감정을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끝까지 열심히 녹음 작업에 착실했던 리치 블랙모어
누구는 본작에서 들려오는 리치의 기타 연주를 듣고선 "레인보우의 냄새가 난다." 고 하고, 누구는본작에서 몇몇곡은 리치가 참여하지 않았다며 마치 리치가 딥 퍼플을 그냥 손에 놓았다는 듯이 표현합니다. 그러나 본작 Stormbringer의 모든 곡은 다 리치가 리드기타로 참여했었고, 작곡 면에서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이러한 유언(流言)들은 리치의 자존심을 깎아먹는 말일 것입니다. 분명 그는 모든 곡의 작사,작곡 표시에 자신의 이름을 들이밀 정도로 열심히 연주했습니다. 각각 들어보시면 전에 들어보셨던 리치 특유의 기타 연주법(기타를 잘 몰라 어떻게 설명해드릴지 모르지만,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직선적인) 들이 귓속을 사정없이 찌를 것입니다. 약 5년간 활동하면서 깊이 정든 딥 퍼플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Soldier Of Fortune에서의 그의 기타는 정성스럽게 감정을 싣고 연주한 흔적이 선합니다.
난무하는 혹평 끝에 다시 재조명받게 된 '수작'
리치 블랙모어 자신도 '역대 딥 퍼플 앨범 중에서 제일 싫어하는 앨범' 이라고 젊은 날 칭했었고, 딥 퍼플 팬들은 물론 언론에서까지도 미국물이 제대로 든 블루스의 아류작이라며 혹평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국내에서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1994년에서야 정식으로 발매되어 대부분의 팬들은 본작 Stormbringer를 잘 몰랐었습니다. (물론 본작 수록곡 Soldier Of Fortune은 대박을 터트렸지만) 그러나 점점 본작이 국내 팬들에게 재조명되면서 대체로 곡이 좋다는 평을 듣습니다. 세계 각 도처의 딥 퍼플 팬들도 본작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저 또한 딥 퍼플 제 4기의 단 하나의 앨범 Come Taste The Band와 함께 아까운 명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치 블랙모어도 최근에 "레드 제플린의 앨범들과 함께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앨범은 Stormbringer 다." 라고 할만큼 본작의 진가는 뒤늦게 밝혀지죠. 특히 8번 곡 The Gypsy는 애절한 블루스 곡으로써 딥 퍼플 제 3기의 또다른 명곡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mok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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