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ck Review ]
글 수 33
레인보우 2기의 막이 오르다
리치 블랙모어가 이끄는 록그룹 레인보우는 1집 Ritchie Blackmore's Rainbow를 발매하고나서 곧바로 멤버 숙청에 들어갔다. 리치 블랙모어는 리드 보컬인 로니 제임스 디오만 남기고, 다른 포지션의 모든 멤버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시켰다. 한마디로 디오가 주축이 되었던 미국 뉴욕 출신의 블루스 록그룹 엘프 (Elf) 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싹 사라진 셈이다. 사실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리치 블랙모어의 의중에는 로니 제임스 디오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하는 것이었고, 엘프 멤버들은 그 작업에 있어서 하등 도움이 안 되기에 그들을 숙청하는 날만을 기다렸던 것이었다. 엘프 밴드 내에서 멤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로니 제임스 디오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초대하려면, 리치 블랙모어는 어쩔 수 없이 엘프를 흡수한 다음, 시기를 봐서 나머지 멤버들을 숙청할 수 밖에 없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디오만 남겨놓고 나머지 파트에는 유능한 자원들을 속속들이 데려오기 시작했다. 콜로시엄 (Coloseum) 등 여러 록그룹에서 드럼을 맡았던 카리스마 넘치는 영국의 차세대 드러머 코지 파웰 (Cozy Powell) 이 레인보우의 드러머 자리를 꿰찼고, 베이스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미 베인 (Jimmy Bain), 키보드에는 미국 출신의 토니 캐리 (Tony Carey) 를 앉혔다. 코지 파웰은 앞서 말했듯이 여러 록그룹들을 전전하며 드럼 파트를 맡아주었는데,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이름 깨나 날리는 밴드들은 다 한 번씩 코지 파웰과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을 가졌었다. 베이시스트 지미 베인은 레인보우에 가입하기 전 영국의 록그룹 베이비스 (The Babys) 에서 활동한 바 있었으며, 한때는 베이스계의 슈퍼스타 필 리놋 (신 리지) 과도 아트워크를 함께 한 바 있다. 키보디스트 토니 캐리는 레인보우 밴드 가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데뷔에 들어가는 신참 멤버였다.
코지 파웰과 디오는 주지하다시피 레인보우가 키워낸 록의 슈퍼스타들이다. 코지 파웰은 레인보우 4기까지 활동하다가 미하엘 쉥커 그룹 (MSG) 으로 팀을 옮기면서 굵직굵직한 슈퍼 밴드들의 드럼을 맡아 명성을 떨쳤고, 로니 제임스 디오는 레인보우 이후 블랙 새버스, 로니 제임스 디오 밴드 등 영역을 넓혀가며 록계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그만의 아우라를 구축했다. 또한 레인보우 2기 멤버인 지미 베인과 토니 캐리는 레인보우 탈퇴 이후 네임 밸류가 상승, 각 밴드의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리치 블랙모어의 ‘사람 볼 줄 아는 눈’ 이 정확히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다. 평단에서는 “리치 블랙모어의 독단적인 행동이 그가 거쳐 갔던 각 밴드의 불화를 일으켰지만, 신인 자원을 눈여겨 보고 그를 키워낼 줄 아는 능력은 수준급” 이라고 평했으며, 이같은 사실은 록 마니아들이라면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뮌헨 필하모닉과 레인보우의 만남
리치 블랙모어는 독일이라는 나라와 굉장히 관련이 깊다. 그는 1960년대 말, 딥 퍼플이 모습을 갖추기 전에 독일의 각 클럽가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했으며, 심지어 그가 젊은 날의 사고 (?) 로 인해 독일 현지에서 낳은 아들 또한 영국계 독일인 위르겐 블랙모어 (Jurgen Blackmore) 다. (참고로 위르겐 블랙모어는 아티스트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독일에서 하드 록, 헤비메탈 밴드를 이끈 바 있다) 그래서 독일의 록음악 아티스트 및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리치 블랙모어는 2집 Rising을 만들기 위해 앨범의 매니지먼트 수뇌부를 죄다 독일 사람으로 앉혔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앨범을 총지휘하는 매니저는 프리츠 존라이트너 (Fritz Sonleitner), 당시 뮌헨 필하모닉 지휘자였던 라이너 피치 (Rainer Pietsch) 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것인데, 2집 Rising의 야심작 Stargazer를 녹음하기 위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단인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불러들여 완벽한 진용을 갖췄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록 아티스트들은 자기의 음악적 커리어가 어느 정도의 위치까지 끌어올리게 되면, 클래식 음악과의 조우를 꾀할려는 노력을 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미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시절, 오케스트라 악단과의 세션을 통해 클래식과 록의 만남을 꾀했었고, 그것이 딥 퍼플의 라이브 앨범으로도 발매되는 등, 딥 퍼플을 비롯한 많은 록 아티스트들은 클래식과 록의 만남에서 흥미를 느꼈었다. 이번 레인보우의 2집 Rising에서도, Stargazer라는 곡을 통해 리치 블랙모어는 클래식 음악의 도입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탄탄한 스트링 사운드에, 코지 파웰의 천둥 같은 드럼 연주, 토니 캐리의 절묘한 키보드 사운드와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 연주, 거기다가 디오의 보컬이 더해지니 이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의 향연이었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원 덕분에, 리치 블랙모어는 2집 수록곡 Stargazer를 레인보우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들어간, 그리고 최고의 히트곡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1976년 3월 발매한 레인보우의 2집 Rising은 미국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48위에 랭크되었고,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무려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레인보우는 2집 Rising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일본 골든디스크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특히 영국과 유럽, 아시아 지역에서 2집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고,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2기 시절에 이어 레인보우 2기를 통해 자신의 능력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강하게 피력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레인보우의 인기도가 특정 지역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에, 딥 퍼플만큼의 명성을 얻기란 힘들었다.
Rainbow Rising에 대한 이야기들
1번 트랙 Tarot Woman은 토니 캐리의 비장한 키보드 연주가 인트로를 꽤나 길게 장식하며 약 1분 14초간 키보드 사운드가 지속된다. 그 후부터 리치 블랙모어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가 귀를 사정없이 공격하고, 곧바로 스피디한 하드 록의 향연이 시작된다. 이 곡에서는 로니 제임스 디오의 몇 옥타브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고음이 압권이다. 2번 트랙 Run With The Wolf는 리치 블랙모어와 로니 제임스 디오의 공통분모, 바로 중세 유럽 신화, 판타지, 구전 설화 등을 노래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런 류의 음악을 내놓았기도. 곡의 긴박한 멜로디와 상황 등을 코지 파웰의 리드미컬한 드러밍이 잘 표현해주고 있다. 리치 블랙모어의 간결하면서도 스피디한 끊어 치기 기타 연주, 디오가 들려주는 천상의 보컬 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레인보우의 자타공인 히트곡 Starstruck은 레인보우가 라이브 공연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이 기도 하다. 스피디한 멜로디 속에서 완급 조절을 꾀하면서 기타를 놀려대는 리치 블랙모어의 능숙한 플레이, 거기에 블루지하면서도 풍성한 보컬을 들려주는 디오가 만나 하모니를 이룬다. 사정없이 드럼을 후려치는 코지 파웰의 연주도 일품. Do You Close Your Eyes는 1970년대에 나온 기타 리프라고 생각하기 힘든, 상당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기타 리프가 인트로부터 청자의 귀를 사정없이 공격한다. 이 곡의 생명은 바로 리치 블랙모어가 개발한, 정교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인데,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코지 파웰의 파워 드러밍과 맞물려 최상의 결과를 낳는다. 어디가 한계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디오의 보컬이 놀랍기 그지없고, 곡 중간부터 멤버들의 박수 소리가 더해지면서 흥을 더욱 더 돋구는 역할을 한다.
이제 Rainbow Rising 앨범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두 트랙 Stargazer와 A Light In The Black에 대해 언급할 차례이다.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2기 시절에 오케스트라 연주단과 협연을 해서 '록과 오케스트라의 접합' 을 이뤄냈다.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라는 새로운 그룹에서도 그것을 연장, 완성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Stargazer다. 리치 블랙모어는 이 곡을 통해서 1980년대에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할 클래식 메탈 (Classic metal) 의 형태를 만들었으며, 이 곡을 통해서 많은 후배격 밴드들이 클래식 메탈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이 자랑하는 국보급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 (Yngwie Malmsteen) 이 Stargazer를 필두로 하는 레인보우의 클래식 메탈을 이어받았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에, 최상의 멤버로 구성된 레인보우 2기의 록 사운드가 합쳐져서 하나의 거대한 대서사시를 이루어낸다. 코지 파웰이 인트로를 장식하는 리드미컬한 드럼 연주는 어느 평론가의 말에 의해 “하드 록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드럼 인트로” 라고 극찬을 받은 적 있으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레인보우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연주를 멈추고 오직 드럼 소리와 디오의 보컬, 그리고 스트링 사운드만이 등장하는 클라이막스는 가히 예술이다.
A Light In The Black은 Stargazer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된다. 가사의 뜻이나 곡의 전체적인 스타일 등이 Stargazer와 A Light In The Black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 Stargazer에서는 사악한 악마의 제왕의 기운에 의해 인간 세계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관망하며 노래하는 것이라면, A Light In The Black은 사악한 무리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디오는 마치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듯, 허겁지겁 가사를 읊으며 듣는 이의 심장 박동 수를 늘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굉장히 스피디한 기타 연주가 디오의 보컬을 정확하게 쫓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치 멤버들끼리 자신들의 악기로 레이스 경주를 펼치듯 '록의 속도전' 을 구사하며 A Light In The Black의 전체적인 느낌을 스피디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앞선 곡 Stargazer와 마찬가지로 이 곡도 엄청난 러닝 타임을 자랑하며 (8분 11초), 후반부에 가서는 리치 블랙모어의 끝을 알 수 없는 기타 연주와 토니 캐리의 화려한 키보드 사운드가 맞물려서, 듣는 이에게 록의 대서사시가 가져다주는 포만감을 제공하게 한다. 리치 블랙모어가 구상하는, 웅장한 클래식 음악 같은, 거기에 엄청난 러닝 타임을 가진 ‘클래식 메탈의 절정' 이라고 보면 된다.
Rainbow Rising, 레인보우의 클래식
레인보우가 내놓은 앨범 중에서 평단 및 대중들에 의해 가장 후한 점수를 받는 2집 Rising은, 비록 인기를 끌었던 지역이 유럽 및 아시아 등지로 한정되어 있었다지만, 이를 듣고 자라난 수많은 록 키드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앨범을 시초로 해서 이후 클래식 메탈이 본격적으로 록음악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관하다.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에서 끝내 못다 이루지 못한 것들 - 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 클래식 메탈 - 을 2집 앨범을 통해 한없이 다 이뤄냈다. 이것으로 하여 앞서 언급한 잉베이 말름스틴 등의 클래식 메탈 아티스트들이 레인보우가 발판을 깔아놓은 것에 더 심화시킨 음악을 만들 수 있었고, 더불어 2집에서 들려지는 리치 블랙모어의 스피디한 기타 주법은 일명 ‘속주 기타’ 라 불리우는 네오클래식 메탈, 혹은 스피드 메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악의 기운이 깃든 것 같은 검은 하늘의 구름 위로, 거인의 손이 무지개를 잡아채는 인상적인 앨범 재킷은, 이후 레인보우의 라이브 공연장에서 실제로 이 앨범의 표지와 똑같은 구조물이 뒤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만큼 Rainbow Rising 앨범이 레인보우 자신들에게도 레인보우라는 밴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Rising 앨범은 대외적으론 클래식 메탈, 속주 기타에 영향을 주었고, 레인보우에게는 자기네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레인보우가 구사했던 록음악의 절정이자, 끝을 달리는 것이었다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이후에 레인보우는 3집 Long Live Rock 'N' Roll까지 클래식 메탈의 전초전이 되는 작품성 있는 음악을 내놓다가 디오의 탈퇴,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음악적 능력의 저하로 인하여 더 이상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디오 탈퇴 후 그레이엄 보넷의 등장으로 1980년대 초반, 레인보우는 팝 록 (Pop rock) 밴드로 재탄생 되지만 말이다.
- 출처 : http://blog.naver.com/lzmania
리치 블랙모어가 이끄는 록그룹 레인보우는 1집 Ritchie Blackmore's Rainbow를 발매하고나서 곧바로 멤버 숙청에 들어갔다. 리치 블랙모어는 리드 보컬인 로니 제임스 디오만 남기고, 다른 포지션의 모든 멤버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시켰다. 한마디로 디오가 주축이 되었던 미국 뉴욕 출신의 블루스 록그룹 엘프 (Elf) 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싹 사라진 셈이다. 사실 이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리치 블랙모어의 의중에는 로니 제임스 디오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하는 것이었고, 엘프 멤버들은 그 작업에 있어서 하등 도움이 안 되기에 그들을 숙청하는 날만을 기다렸던 것이었다. 엘프 밴드 내에서 멤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로니 제임스 디오를, 자신의 프로젝트에 초대하려면, 리치 블랙모어는 어쩔 수 없이 엘프를 흡수한 다음, 시기를 봐서 나머지 멤버들을 숙청할 수 밖에 없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디오만 남겨놓고 나머지 파트에는 유능한 자원들을 속속들이 데려오기 시작했다. 콜로시엄 (Coloseum) 등 여러 록그룹에서 드럼을 맡았던 카리스마 넘치는 영국의 차세대 드러머 코지 파웰 (Cozy Powell) 이 레인보우의 드러머 자리를 꿰찼고, 베이스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미 베인 (Jimmy Bain), 키보드에는 미국 출신의 토니 캐리 (Tony Carey) 를 앉혔다. 코지 파웰은 앞서 말했듯이 여러 록그룹들을 전전하며 드럼 파트를 맡아주었는데,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이름 깨나 날리는 밴드들은 다 한 번씩 코지 파웰과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을 가졌었다. 베이시스트 지미 베인은 레인보우에 가입하기 전 영국의 록그룹 베이비스 (The Babys) 에서 활동한 바 있었으며, 한때는 베이스계의 슈퍼스타 필 리놋 (신 리지) 과도 아트워크를 함께 한 바 있다. 키보디스트 토니 캐리는 레인보우 밴드 가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데뷔에 들어가는 신참 멤버였다.
코지 파웰과 디오는 주지하다시피 레인보우가 키워낸 록의 슈퍼스타들이다. 코지 파웰은 레인보우 4기까지 활동하다가 미하엘 쉥커 그룹 (MSG) 으로 팀을 옮기면서 굵직굵직한 슈퍼 밴드들의 드럼을 맡아 명성을 떨쳤고, 로니 제임스 디오는 레인보우 이후 블랙 새버스, 로니 제임스 디오 밴드 등 영역을 넓혀가며 록계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그만의 아우라를 구축했다. 또한 레인보우 2기 멤버인 지미 베인과 토니 캐리는 레인보우 탈퇴 이후 네임 밸류가 상승, 각 밴드의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리치 블랙모어의 ‘사람 볼 줄 아는 눈’ 이 정확히 들어맞았음을 알 수 있다. 평단에서는 “리치 블랙모어의 독단적인 행동이 그가 거쳐 갔던 각 밴드의 불화를 일으켰지만, 신인 자원을 눈여겨 보고 그를 키워낼 줄 아는 능력은 수준급” 이라고 평했으며, 이같은 사실은 록 마니아들이라면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뮌헨 필하모닉과 레인보우의 만남
리치 블랙모어는 독일이라는 나라와 굉장히 관련이 깊다. 그는 1960년대 말, 딥 퍼플이 모습을 갖추기 전에 독일의 각 클럽가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했으며, 심지어 그가 젊은 날의 사고 (?) 로 인해 독일 현지에서 낳은 아들 또한 영국계 독일인 위르겐 블랙모어 (Jurgen Blackmore) 다. (참고로 위르겐 블랙모어는 아티스트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독일에서 하드 록, 헤비메탈 밴드를 이끈 바 있다) 그래서 독일의 록음악 아티스트 및 관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리치 블랙모어는 2집 Rising을 만들기 위해 앨범의 매니지먼트 수뇌부를 죄다 독일 사람으로 앉혔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앨범을 총지휘하는 매니저는 프리츠 존라이트너 (Fritz Sonleitner), 당시 뮌헨 필하모닉 지휘자였던 라이너 피치 (Rainer Pietsch) 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것인데, 2집 Rising의 야심작 Stargazer를 녹음하기 위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단인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불러들여 완벽한 진용을 갖췄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록 아티스트들은 자기의 음악적 커리어가 어느 정도의 위치까지 끌어올리게 되면, 클래식 음악과의 조우를 꾀할려는 노력을 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미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시절, 오케스트라 악단과의 세션을 통해 클래식과 록의 만남을 꾀했었고, 그것이 딥 퍼플의 라이브 앨범으로도 발매되는 등, 딥 퍼플을 비롯한 많은 록 아티스트들은 클래식과 록의 만남에서 흥미를 느꼈었다. 이번 레인보우의 2집 Rising에서도, Stargazer라는 곡을 통해 리치 블랙모어는 클래식 음악의 도입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탄탄한 스트링 사운드에, 코지 파웰의 천둥 같은 드럼 연주, 토니 캐리의 절묘한 키보드 사운드와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 연주, 거기다가 디오의 보컬이 더해지니 이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의 향연이었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원 덕분에, 리치 블랙모어는 2집 수록곡 Stargazer를 레인보우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들어간, 그리고 최고의 히트곡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1976년 3월 발매한 레인보우의 2집 Rising은 미국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48위에 랭크되었고,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무려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레인보우는 2집 Rising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일본 골든디스크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특히 영국과 유럽, 아시아 지역에서 2집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고,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2기 시절에 이어 레인보우 2기를 통해 자신의 능력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강하게 피력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레인보우의 인기도가 특정 지역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에, 딥 퍼플만큼의 명성을 얻기란 힘들었다.
Rainbow Rising에 대한 이야기들
1번 트랙 Tarot Woman은 토니 캐리의 비장한 키보드 연주가 인트로를 꽤나 길게 장식하며 약 1분 14초간 키보드 사운드가 지속된다. 그 후부터 리치 블랙모어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가 귀를 사정없이 공격하고, 곧바로 스피디한 하드 록의 향연이 시작된다. 이 곡에서는 로니 제임스 디오의 몇 옥타브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고음이 압권이다. 2번 트랙 Run With The Wolf는 리치 블랙모어와 로니 제임스 디오의 공통분모, 바로 중세 유럽 신화, 판타지, 구전 설화 등을 노래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런 류의 음악을 내놓았기도. 곡의 긴박한 멜로디와 상황 등을 코지 파웰의 리드미컬한 드러밍이 잘 표현해주고 있다. 리치 블랙모어의 간결하면서도 스피디한 끊어 치기 기타 연주, 디오가 들려주는 천상의 보컬 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레인보우의 자타공인 히트곡 Starstruck은 레인보우가 라이브 공연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이 기도 하다. 스피디한 멜로디 속에서 완급 조절을 꾀하면서 기타를 놀려대는 리치 블랙모어의 능숙한 플레이, 거기에 블루지하면서도 풍성한 보컬을 들려주는 디오가 만나 하모니를 이룬다. 사정없이 드럼을 후려치는 코지 파웰의 연주도 일품. Do You Close Your Eyes는 1970년대에 나온 기타 리프라고 생각하기 힘든, 상당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기타 리프가 인트로부터 청자의 귀를 사정없이 공격한다. 이 곡의 생명은 바로 리치 블랙모어가 개발한, 정교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인데,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코지 파웰의 파워 드러밍과 맞물려 최상의 결과를 낳는다. 어디가 한계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디오의 보컬이 놀랍기 그지없고, 곡 중간부터 멤버들의 박수 소리가 더해지면서 흥을 더욱 더 돋구는 역할을 한다.
이제 Rainbow Rising 앨범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두 트랙 Stargazer와 A Light In The Black에 대해 언급할 차례이다.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2기 시절에 오케스트라 연주단과 협연을 해서 '록과 오케스트라의 접합' 을 이뤄냈다.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라는 새로운 그룹에서도 그것을 연장, 완성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Stargazer다. 리치 블랙모어는 이 곡을 통해서 1980년대에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할 클래식 메탈 (Classic metal) 의 형태를 만들었으며, 이 곡을 통해서 많은 후배격 밴드들이 클래식 메탈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이 자랑하는 국보급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 (Yngwie Malmsteen) 이 Stargazer를 필두로 하는 레인보우의 클래식 메탈을 이어받았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에, 최상의 멤버로 구성된 레인보우 2기의 록 사운드가 합쳐져서 하나의 거대한 대서사시를 이루어낸다. 코지 파웰이 인트로를 장식하는 리드미컬한 드럼 연주는 어느 평론가의 말에 의해 “하드 록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드럼 인트로” 라고 극찬을 받은 적 있으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레인보우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연주를 멈추고 오직 드럼 소리와 디오의 보컬, 그리고 스트링 사운드만이 등장하는 클라이막스는 가히 예술이다.
A Light In The Black은 Stargazer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된다. 가사의 뜻이나 곡의 전체적인 스타일 등이 Stargazer와 A Light In The Black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 Stargazer에서는 사악한 악마의 제왕의 기운에 의해 인간 세계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관망하며 노래하는 것이라면, A Light In The Black은 사악한 무리들을 피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디오는 마치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듯, 허겁지겁 가사를 읊으며 듣는 이의 심장 박동 수를 늘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굉장히 스피디한 기타 연주가 디오의 보컬을 정확하게 쫓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치 멤버들끼리 자신들의 악기로 레이스 경주를 펼치듯 '록의 속도전' 을 구사하며 A Light In The Black의 전체적인 느낌을 스피디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앞선 곡 Stargazer와 마찬가지로 이 곡도 엄청난 러닝 타임을 자랑하며 (8분 11초), 후반부에 가서는 리치 블랙모어의 끝을 알 수 없는 기타 연주와 토니 캐리의 화려한 키보드 사운드가 맞물려서, 듣는 이에게 록의 대서사시가 가져다주는 포만감을 제공하게 한다. 리치 블랙모어가 구상하는, 웅장한 클래식 음악 같은, 거기에 엄청난 러닝 타임을 가진 ‘클래식 메탈의 절정' 이라고 보면 된다.
Rainbow Rising, 레인보우의 클래식
레인보우가 내놓은 앨범 중에서 평단 및 대중들에 의해 가장 후한 점수를 받는 2집 Rising은, 비록 인기를 끌었던 지역이 유럽 및 아시아 등지로 한정되어 있었다지만, 이를 듣고 자라난 수많은 록 키드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앨범을 시초로 해서 이후 클래식 메탈이 본격적으로 록음악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관하다.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에서 끝내 못다 이루지 못한 것들 - 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 클래식 메탈 - 을 2집 앨범을 통해 한없이 다 이뤄냈다. 이것으로 하여 앞서 언급한 잉베이 말름스틴 등의 클래식 메탈 아티스트들이 레인보우가 발판을 깔아놓은 것에 더 심화시킨 음악을 만들 수 있었고, 더불어 2집에서 들려지는 리치 블랙모어의 스피디한 기타 주법은 일명 ‘속주 기타’ 라 불리우는 네오클래식 메탈, 혹은 스피드 메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악의 기운이 깃든 것 같은 검은 하늘의 구름 위로, 거인의 손이 무지개를 잡아채는 인상적인 앨범 재킷은, 이후 레인보우의 라이브 공연장에서 실제로 이 앨범의 표지와 똑같은 구조물이 뒤에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만큼 Rainbow Rising 앨범이 레인보우 자신들에게도 레인보우라는 밴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Rising 앨범은 대외적으론 클래식 메탈, 속주 기타에 영향을 주었고, 레인보우에게는 자기네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레인보우가 구사했던 록음악의 절정이자, 끝을 달리는 것이었다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이후에 레인보우는 3집 Long Live Rock 'N' Roll까지 클래식 메탈의 전초전이 되는 작품성 있는 음악을 내놓다가 디오의 탈퇴,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음악적 능력의 저하로 인하여 더 이상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디오 탈퇴 후 그레이엄 보넷의 등장으로 1980년대 초반, 레인보우는 팝 록 (Pop rock) 밴드로 재탄생 되지만 말이다.
- 출처 : http://blog.naver.com/lz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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