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 보컬 그레이엄 보넷의 등장, 레인보우 새 국면

레인보우 (Rainbow) 의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차지하는 보컬 로니 제임스 디오와 팀의 리더 리치 블랙모어의 조합은, 그들의 2집 Rising에서 빛을 발하여 후세에는 헤비메탈을 비롯한 클래식 메탈, 속주 기타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냥 다른 말 필요 없이 디오의 천상을 울리는 웅장한 느낌의 보컬과 리치 블랙모어가 자신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를 마구 혹사시키며 자아내는 속주 기타가 더해져서, 그 안에서 Stargazer, A Light In The Black, 그리고 Gates Of Babylon 등 주옥 같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레인보우 팀 내에서 디오의 영향력이 점점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자기 혼자의 힘으로 팀을 꾸려나가고 싶은 리치 블랙모어로선 하루하루 발전해나가는 디오의 역량에 대해 경계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또 그럴수록 디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거의 레인보우 내에서 디오 - 블랙모어 양강체제로 굳혀지게 되었다. 이런 모습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리치 블랙모어는 결국 1970년대 후반 들어서 디오와의 결별을 시사하였고, 이들은 1978년작 Long Live Rock n Roll을 끝으로 두 번 다시 보지 않게 되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디오는 오지 오스본이 탈퇴한 블랙 새버스 (Black Sabbath) 로 이적하였고, 레인보우는 디오가 없는 1978년이 다 지나가는 기간까지 임시방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의 새로운 보컬을 찾기 위하여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딥 퍼플 2기 시절 자신과 함께 록음악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천재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 로저 글로버 (Roger Glover) 를 레인보우의 새로운 베이시스트로 임명하였다. 사실 리치 블랙모어의 선견지명에 의해, 그의 손에서 자라난 신인 스타들이 여럿 있지만, 또한 로저 글로버의 훌륭한 프로듀싱과 사람 보는 눈이 있었기에 그것 역시 가능했던 일이었다. 로저 글로버라는 천군만마를 얻은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 새로운 보컬을 뽑는 오디션을 개최하였다. 이 오디션에는 많은 참가자들이 지원하였고, 그들은 저마다의 보컬이 담긴 데모테이프를 보내왔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리치 블랙모어의 마음을 사로잡은 보컬은 대체 누구일까. 그렇다. 영국 출신으로서 잠시간 호주 대중음악계에서 마블스 (The Marbles) 에서 블루스 록을 구사하던 젊은이 그레이엄 보넷 (Graham Bonnet) 이었다. 그는 데모테이프와 오디션을 통해 리치 블랙모어와 로저 글로버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고, 리치 블랙모어는 그레이엄 보넷과 함께 레인보우의 새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그레이엄 보넷은 그야말로 록계에서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먼저 짧게 친 다음 포마드를 가득 바른 신사적인 헤어스타일에, 록커 답지 않은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외모도 제임스 딘과 닮아 아주 스마트 했으며, 이런 이쁘장한 외모와 상반된 아주 굵고 우렁찬 팔세토 창법을 지녔으니 과연 물건은 물건이었다. 레인보우는 이런 상품성 다분히 함유된 그레이엄 보넷과 함께 음악적인 새 시대의 국면을 맞게 되었다.


레인보우의 변화 - 우리는 팝 록을 하는 밴드다!

그야말로 외형에서부터 깔끔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잘 생긴 그레이엄 보넷을 보컬로 세워두고, 마침 또 그렇게 레인보우가 새 보컬을 맞이한 만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1980년대로 향하고 있었다. 1980년대 록계에서 가장 큰 화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팝 록 (Pop rock) 의 본격적인 도입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록계에서도 점점 수요층들이 헤비한 음악보다는 좀 더 잘 정리정돈이 된 멜로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달콤한 멜로디, 그리고 비주얼 시대가 도래한만큼 시각적인 효과를 많이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팝 록이 1980년대 들어서 활개를 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오로지 유럽 중세 설화를 기반으로 하는 헤비메탈만 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레인보우마저, 그레이엄 보넷의 영향으로 인해 전체적인 포맷이 팝 록 밴드로 다시 구성되었다. 이것을 방증하는 노래는 바로 이 글에서 소개되는 Down To Earth 앨범의 첫 번째 트랙, All Night Long에서 곧바로 입증된다. All Night Long은 전형적인 팝 록의 형태로서, 한번 들으면 잊혀지기 힘든 강한 후크를 지닌 대중적인 하드 록이다. 그레이엄 보넷은 우렁찬 보컬을 앞세우며 All Night Long의 활기찬 멜로디를 잘 살려내고 있으며,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 연주 역시 이전의 헤비한 모습과는 다르게, 재미있으며 또 한편으론 흥겨운 느낌으로 변했다.

3번 트랙 No Time To Lose 역시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곡 자체가 러닝 타임 내내 흥겨운 느낌이며, 그 뒤를 잇는 4번 트랙 Makin' Love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곡을 전개시키면서 대중들이 쉽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상적인 후크를 많이 심어놓았다. 또한 Down To Earth 앨범의 중추라 할 수 있는 Since You Been Gone도 상당히 잘 짜여진 팝 록 트랙이다. 이렇게 레인보우는 삽시간에 팝 록을 구사하는 밴드로 변하였으며, 앞서 말했듯이 리치 블랙모어는 더 이상 일렉트릭 기타를 혹사시키며 속주 기타를 펼치지 않고, 일반적인 팝 뮤직 형태의 단순한 주법을 들려주게 되었다.

이렇게 그레이엄 보넷이 가지고 있는 상품성이나 그의 도회적인 깔끔한 이미지, 그리고 블루스 혹인 리듬앤블루스에 최적화된 보컬 음색이기에 레인보우 전체적인 음악의 포맷이 바뀐 것이다. 또한 평론가들은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로저 글로버가 리치 블랙모어와의 상의 끝에 좀 더 레인보우라는 밴드가 수익적으로 많은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팝 록으로 선회하는 것을 택했다라고 말을 한다. 이미 레인보우 가입 전부터 팝 록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고, 팝 록 밴드들을 양성한 바 있는 로저 글로버의 입김이, 리치 블랙모어에게 강하게 작용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레인보우는 주로 인기를 끌던 영국, 유럽 지역, 일본에서 더욱 확장되어 팝 록 노래들로 미국 시장까지 진출, 빌보드 차트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레인보우 특유의 ‘록 대서사시’ 에 현대적 감각을 입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 블랙모어는 레인보우의 음악적 변질에 대해, 최소한의 레인보우 고유의 색깔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레인보우가 늘상 해오던 음악 스타일인 ‘록 대서사시’ 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이것을 증명하는 트랙은 각각 2번 트랙 Eyes Of The World, 7번 트랙 Danger Zone, 그리고 마지막 트랙 Lost In Hollywood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레인보우 스타일의, 러닝 타임을 길게 잡아서 듣는 이로 하여금 한바탕 록 대서사시의 향연으로 빠지게 하는 장치들로서, 현악기 세션 외에 신시사이저 연주나 그 외의 스트링 사운드로 길게 뽑아낸 러닝 타임을 밑에 깔고 끝 모를 레이스 경주를 벌이고 있다.

Eyes Of The World는 제목 자체의 뉘앙스로도 심오한 뜻을 담고 있으니 레인보우가 표방하고 있는 노래 주제에 대한 심각성이 이전작들 Stargazer나 A Light In The Black에 못잖으며, 신입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 (Don Airey) 가 뽑아내는 웅장한 신시사이저 연주에 리치 블랙모어의 폭발적인 기타 연주가 더해져서 듣는 이에게 크나큰 감동을 선사한다. 이 곡을 더욱 더 스펙터클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레이엄 보넷의 우렁찬 창법으로서, 게다가 러닝 타임까지 기니까 Eyes Of The World라는 노래는 팝적인 Down To Earth의 전체적 이미지와 상반된 느낌이다.

마치 엄청나게 속도전을 벌이는 장면을 카메라 무빙으로 잡아내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7번 트랙 Danger Zone은, 그런 스피디하면서도 스케일 자체가 큰 전체적인 이미지답게 그레이엄 보넷의 보컬 파트에 컴퓨터 특수장치가 발휘, 듣는 이의 귀를 크게 울리는 울림현상이 재미난 상황을 연출한다. 또한 레인보우 2집 앨범 Rising의 스피드 메탈 교과서 A Light In The Black의 1980년대 버전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속도전의 하드 록 넘버 Lost In Hollywood는, 그레이엄 보넷의 시원시원한 보컬에다가 점점 속도를 좁히며 쫓아오는 돈 에어리의 키보드 연주, 더해서 스피드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코지 파웰의 드러밍 이렇게 삼박자가 조화롭게 딱딱 들어맞는다.

스펙터클함과 세련된 멜로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Lost In Hollywood를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 레인보우 이들은 팝 록을 적극 수용한만큼 레인보우 고유의 록 대서사시에 이런 식으로 현대적 감각을 입혀 트렌드를 따랐다.


레인보우의 음악적 선회가 낳은 최대의 수혜 - Since You Been Gone

사실 Down To Earth는 레인보우라는 네임 밸류에 비해 수록곡들이 그 당시 출현하였던 일반적인 팝 록 장르들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앨범 자체로 보았을 때에는 평범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평범함을 벗게 해준 곡은 다름 아닌 레인보우가 팝 록으로 선회한 다음에 리메이크하여 내놓은 노래 Since You Been Gone이다. 그러니까 레인보우는 천편일률적인 팝 록으로 돌아선 후에 레인보우 자기네들만의 색깔을 잃었지만, 오히려 팝 록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 노래는 알다시피 아전트 (Argent) 출신의 멤버 러스 발라드 (Russ Ballard) 1976년 솔로앨범 Winning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곡으로서, 레인보우가 리메이크하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다시 돌풍을 일으켰다.

레인보우는 원작자 러스 발라드의 Since You Been Gone보다 더 훌륭하게 곡을 포장하여 Down To Earth 앨범으로서 특선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테고, 또한 보컬 그레이엄 보넷이 Since You Been Gone 노래의 중요한 음절이나 감정의 발상 등을 제대로 이해하며 그것을 레코딩으로 훌륭하게 소화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 대중들은 러스 발라드의 원곡보다 레인보우 버전의 것에 더욱 환호성을 지른 것이었고, 이 곡 덕택에 레인보우는 서두에 밝혔듯 미국 대중음악 시장을 본격적으로 겨냥할 수 있었다.

우렁찬 보컬로 1절, 2절 가사를 내뿜은 다음에 후렴구에서 배킹 보컬 군단과 함께 Since You Been Gone의 주요 가사를 크게 내지르며 이런 식으로 당찬 모습을 보였다가, 후반부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리치 블랙모어의 낭만적인 기타 솔로 나와주시고, 그레이엄 보넷이 그 드라마틱한 기분을 한껏 살려서 보컬로서 후반부에 빵 터트리는 이런 식은, 정말 레인보우라는 밴드가 유럽 중세설화를 바탕으로 하드 록, 헤비메탈을 하였던 밴드였는지 그 전작들에 대한 의구심이 갈 정도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헤비한 기타 연주를 바라는 리치 블랙모어 팬들이, 팝적으로 변한 리치 블랙모어의 ‘변절’ 에 대해 불만을 가지곤 한다.

후일에 그레이엄 보넷은 Since You Been Gone의 대성공과 함께 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미디어의 관심, 그리고 그 노래가 자신의 음악적 방향과 잘 맞아떨어졌던지 그레이엄 보넷이 레인보우 탈퇴 후에 계속 어떤 록밴드를 가던 Since You Been Gone은 주 레퍼토리로 지정하고 항상 불러댔다. 잉베이 말름스틴의 알카트라즈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으며, 예를 들자면 1979년작 레인보우 버전의 Since You Been Gone에서, 그로부터 10여년 뒤인 1988년 그레이엄 보넷이 거쳐간 록밴드 임펠리테리 (Impellitteri) 가 Since You've Been Gone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것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아직까지도 그레이엄 보넷은 Since You Been Gone을 자신의 18번으로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팝 록 밴드 레인보우의 첫 번째 출사표 - Down To Earth

레인보우는 이렇게 됨으로서 Since You Been Gone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미국 대중음악 시장까지 진출, 이전의 독단적인 음악적 모습과는 다르게 대중들을 포용할 수 있는 팝 음악 특유의 친화력으로 팬층을 더욱 더 넓고 깊게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크나큰 공을 세운 한 사람인 그레이엄 보넷이 또한 존재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레이엄 보넷의 스타성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다. 록계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굉장히 신사적인 이미지를 지닌 록커이고, 또한 전설적인 배우 제임스 딘을 똑 빼닮았기에, 레인보우는 Down To Earth 앨범 월드 투어에서 엄청난 인기와 수익을 챙겨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레이엄 보넷이라는 사람 자체가 어느 한 밴드에 정착을 하지 못할 정도로 변덕이 심하고, 멤버들간의 조화가 잘 이루지 못하여 리치 블랙모어와 1~2년 작업하다가 결국 레인보우를 탈퇴하였다. 또 때마침 레인보우에서 나머지 멤버들에 비해 꽤나 오랫동안 (?) 드럼을 맡던 천재 드러머 코지 파웰도 그레이엄 보넷과 손잡고 탈퇴, 독일의 명 기타리스트 미하엘 쉥커 (Michael Schenker) 가 이끄는 MSG 밴드에 각각 보컬과 드러머로 신임된다.

이렇게 Down To Earth라는 앨범을 통해 대중적인 밴드로 급부상하였지만, 여전히 리치 블랙모어의 독단적인 행동과 레인보우 팀 내에서의 불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 블랙모어 - 로저 글로버 라인은 멤버가 바뀌어도 계속 해오던대로 팝 록은 버리지 않기로 하였으며, 바로 레인보우가 찾으려던 팝 록의 새로운 최적화 보컬이 그레이엄 보넷의 후임 조 린 터너 (Joe Lynn Turner) 이다. 레인보우는 조 린 터너 영입 이후 완전히 팝 록으로 장르를 바꿔서 꽤 오랫동안 록계를 항해하였고, 레인보우 팝 록의 또 다른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는 노래 I Surrender (Difficult To Cure 앨범 수록곡) 의 그 전초전이 바로 Down To Earth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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