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날의 초상 ]
[조선비즈] 한국 기업들이여! 이것만은 고쳐라.
①생산성 깎아먹는 습관성 야근
②프로세스는 없이 근성만 요구
③다 함께 크는 정보 공유 인색 - 최원석 기자 (2013.04.27)
6년간 한국 살며 삼성·LG 등 35개 업체 컨설팅한 가쓰키 요시쓰구씨
절반 인력으로도 기존 일을 할 수 있거나 같은 인원으로 두 배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한국 기업이 아주 많다고 봅니다."
6년간 한국에 살며 한국 기업을 컨설팅한 일본인 컨설턴트 가쓰키 요시쓰구(香月義嗣) 부장이 내놓은 한국 기업 진단은 칼날처럼 매서웠다. 일본의 컨설팅 회사인 LiB컨설팅 한국 지사에서 한국 기업을 담당하는 그는 "한국은 커피 타임, 담배 타임이 많고, 저녁 먹고 퇴근하지 않고 다시 들어와 일한다든지, 부장이 퇴근하지 않으면 부하 직원이 전부 남는 등 낭비 요인이 아직 많다"면서 "평균 생산성도 떨어지고, 개인 생활도 제약 받게 되니 결국 회사·개인 양쪽 모두가 손해"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예를 들어 처음엔 일이 잘 진척되지 않다가 전체 업무 시간 10시간 중 마지막 3시간에 급피치를 올려 끝내는 식입니다. 마지막 3시간 이전에는 충분히 일하지 않았거나 전체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낮다는 얘기이죠. 물론 압축적으로 일할 때 강도는 한국이 더 세지만, 업무 시간 전체의 평균 생산성을 따지면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높아요."
◇"일본에선 업무 시간에 개인 용무를 보지 않는다"
그는 삼성그룹 계열사 2개, LG그룹 3개사, SK하이닉스를 포함해 35개 한국 기업을 컨설팅했고, 지난 2월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을 이기는 네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그는 "한국인에게는 일본 회사 업무가 느리고 융통성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업무 시간에는 개인 용무로 휴대전화를 받거나, 다른 개인적 일을 하지 않는다"면서 "일본은 회사에서 8시간 일한다면 8시간만큼은 철저하게 회사에 속해 있다는 의식이 강한 반면에 한국에서는 그런 의식이 좀 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책은 왜 썼고, 어떤 내용을 담았나.
"삼성전자에 일본 가전 기업들이 한 방에 무너지는 사태는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2~3년 전부터 일본에서 한국 기업을 배우자는 열풍이 불었는데, 당시 한국에 있던 나는 '한국 기업 전체를 배우는 것은 답이 아니다. 한국 기업이 모든 면에서 일본 기업보다 뛰어난 건 아니다'는 얘기를 일본 쪽에 계속 전달했다. 즉 일본 기업이 한국의 장점만 배우고 한국의 약점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충분히 한국 기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석 포인트를 책으로 요약했다."
◇"한국 기업은 임기응변으로 일하고 프로세스가 없다"
― 한국 기업은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것 같다고 썼다. 그게 왜 문제인가.
"한국 기업은 현재 상태와 목표 딱 두 가지만 중시하는 것 같다. '이것과 이것을 분해해서 그다음은 이것, 그다음은 이것'이라는 식의 과정이 있는데, 한국은 그런 프로세스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게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예를 들어보자. 능력 있는 사람은 그런 프로세스를 회사가 굳이 안 만들어도 일을 잘한다. 문제는 회사 내에 절대다수인 '능력이 출중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다. 한국 방식이라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계단'이 없는 셈이다.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프로세스를 잘 만들어 놓으면 처음 하는 사람이나 잘 못하는 사람도 일정 수준 업무가 가능해진다. 한국은 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에게 이 정도 해야 한다고 말로만 한다. 또 못하는 사람에게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 당신 근성(根性)이 모자라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도 선진국인데 항상 근성으로만 일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정보 공유가 잘 안 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일본에서 컨설팅할 때는 기업의 톱 영업맨이 있으면 가능한 한 그 사람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널리 알려 본받게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컨설팅 방법을 쓰기 어렵다. 톱 영업맨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숨기려고 하고, 다른 영업맨들 실적이 올라가면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일본의 강점이 이런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육성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 이런 것들을 통해 조직력을 키우는 것 말이다."
― 지금까지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로 오너 경영을 꼽았는데, 앞으로는 어떨까?
"앞으로는 좀 다른 상황이 될 것이라고 본다.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앞으로는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끌어나가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오너 경영의 강점은 돈이 될 만한 것을 잘 들여다보다가 강력한 의사 결정과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제로에서 시작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는 유리하지 않다. 한국 대학에 있는 일본인 교수들에게 '일본 대학과 한국 대학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하고 물어보면 '한국에선 당장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 말고는 연구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온다.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대학은 그 정도로 심하게 요구받지 않는다. IPS 세포로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교수의 연구도 처음에는 전혀 주목받는 연구가 아니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중간에 연구를 접었을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당장 돈 벌 수 있는 사업에 집중 투자해 성공을 거뒀지만, 그런 모델이 앞으로도 유지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직원 스스로 생각하는 조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많아
― 컨설팅할 때 한국 기업으로부터 많이 요청받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 회사는 상사가 지시하면 하지만, 직원 스스로 찾아서 일하는 분위기가 없다. 직원들이 전향적으로 일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해 달라'는 요청이 많다. 일본에 '우각(牛角)'이라는 야키니쿠(불고기)집을 1600개 정도 낸 레인즈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는 1년에 두 번 전 점포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모여 울면서 '저는 이런 일을 해서 업무를 개선했습니다' 하는 식으로 발표하는 행사를 연다. 보통 아르바이트라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조직 풍토라고 할까,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조직을 만들자'는 부분에서 한국 기업들로부터 많은 요구가 있었다. 또 하나는 영업 스킬을 레벨업하는 것이다. 한국의 한 패션업체는 직원들이 고객을 생각하지 않고 우선 상품부터 설명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객 기분을 최대한 생각해서 접객(接客)하는 방법 등을 다뤘다."
― 한국 기업이 강한 이유 중 하나로 일본 기업이 겪는 높은 법인세와 같은 6중고(6重苦)를 한국이 덜 겪고 있다는 것을 꼽았는데, 한국 기업의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로 보나.
"환경 요소와 기업의 내부 요소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법인세·전기요금·인건비가 싸고,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수출 비용이 낮아지는 등의 환경적 요소는 한국 기업이 실제 실력보다 득 보는 부분이다. 내부 요소를 보면 오너 경영이라 의사 결정이 빠르고 실행도 빠르다. 특히 어디에 돈을 쓸 것이냐는 문제에 관해서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빠르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일할 인재가 많다는 것, 어느 나라에 가서도 현지에 적응해 필사적으로 일하는 경향은 한국이 훨씬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