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의 폴 길버트와의 인터뷰는 도움이 좀 되셨는가들?

오늘은 평소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려한다. 기타를 대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와 관련된 것이라고나 할까.

열분도 잘 알다시피 바이얼린이나 피아노 같은 클래식 악기 연주자들, 혹은 재즈 뮤지션들 중에는 6,70이 넘은 나이임에도 열정적이고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거장들이 많다.

그러나 록 기타의 경우는 좀 느낌이 다르다. 왠지 이십대에 음악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결판을 내야 할 것 같고, 그러지 못하면 이미 때를 놓친 것 같은 느낌.. 머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과연 그런가? 록 기타리스트로서의 삶은 20대에 이미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에 실패하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기타를 버려야 할까.

어차피 잉베이나 스티브 바이만큼 할 턱도 없고, 이미 나이가 들면 기타를 연습해 봤자 더 이상 늘지도 않을테니 다 집어치우고 먹고 사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우리의 꿈은 허망하게 사라져버려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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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기타리스트들도 20대 초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적인 유명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바이, 누노 베텐코트, 폴 길버트 등은 물론 과거의 제프 벡이나 지미 페이지, 리치 블랙모어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천재적인 재능과 어려서부터의 자발적이고 집착적인 노력, 그리고 그 결과로서 20대 초반에 이미 완성된 연주력, 그리고 거대한 성공... 이 모든 모습들은 범인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다른 경지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열살때부터 자발적으로 하루 9시간씩 기타를 친다는 것이 우리의 어린시절로 미루어 볼때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뒤늦게라도 그런 연습의 필요성을 느꼈을때는 이미 우리 자신은 십대 중후반으로 넘어온 다음이지 않았는가. 그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연주씬에 등장했던 그 또래 말이다.

그들이 이런 젊은 나이에 우리에게 보여준 것들은 단순히 뛰어난 테크닉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완성된 자신의 스타일, 톤, 그리고 음악적인 우수함등... 기타연주자로서의 확립된 모습 전체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어린 시절을 어쩌면 낭비하고 만 우리들로서는 '이제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패기는 사라지고, 이런 자괴감과 삶의 피곤함이  우리들로 하여금 기타를 놓게 만든다.  

그렇다. 이 글을 보는 열분들의 나이또래는 다양하겠지만서두, 우리는 결코 그 나이에 그들 위대한 연주자들의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었고,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끝일까?

다시 위에 열거한 기타리스트들로 돌아가 찬찬히 생각해보자.

이들은 지금도 명성을 유지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잉베이의 최고 걸작은 1985년, 22세에 발표한 라이징 포스 1집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고, 스티브 바이 역시 90년, 30세때의 'Passion and warfare' 앨범 이후 그를 능가하는 작품은 나오지 않고 있다. 폴과 누노 역시 최근의 솔로 앨범들이 예전 작품들보다 낫다는 평가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경우 테크닉은 더욱 늘고 속도도 빨라지지만, 총체적인 음악적 성과물을 놓고 볼때는 분명 어느정도 답보상태인 듯 하다.

제프 벡의 최고 걸작도 75년, 20대 중반 시절의 'Blow by Blow' 에서 멈춰 있고, 리치 블랙모어도 70년대 중반의 'Made in Japan' 시절의 연주를 최고로 친다. 지미 페이지는 80년 레드 제플린 해산 이후 괄목할 만한 활동도, 음악적 창의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에 첼로의 로스트로포비치, 바이얼린의 기돈 크레머 등 현역 클래식 연주자들의 경우 젊어서는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뛰어난 기량과 해석력을 선보이며 연주가로서의 끊없는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그들의 전성기가 25세 때였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는 분명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들과는 뭔가 다른 모습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하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지존'에 등극해 버린 그들의 큰 성공이 오히려 자기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전음악계, 그리고 기본적으로 바하나 파가니니, 모차르트 등의 같은 곡으로 수천명이 경쟁해야 하는 클래식 음악계의 끝없는 긴장은, 아직 역사가 짧은 데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중시하고 스스로 만든 곡만을 연주하는 대중음악 연주계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연주자로서 성공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고 인정받고 난 후에는 어느정도 그 자리에 안주해버리는 경향이 대중음악계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런 것을 흔히 '매너리즘'이라고 한다.

이 정도까지 도달한 연주자는 실력이 현저히 퇴보하지 않는 한 계속 '대가'로서 존경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과거 전성기의 후광에 크게 의존하게 되고, 현재 발표되는 곡들은 계속 전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게 되는 것이다. 30대의 젊디 젊은 나이에 말이다.

이들은 콘서트에서 연주 자체는 많이 하지만, 자기 혁신을 위한 연습과 공부는 별로 하지 않는다. 새로운 테크닉이나 표현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에도 큰 관심이 없으며, 자신의 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하는 적극적인 창의력도 발휘하지 않는다. 인생 전체에서 보자면 이제 막 무르익어 가는 나이임에도 자신의 삶을 보다 창조적으로 음악에 반영하려 하지 않는, 십대나 이십대의 밑천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만 하는 좀 이상한 상태에 놓이기 십상인 것이다.

이점이 바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성공과 명성을 능가할 기회라기 보다는 연주 자체로 그들과 경쟁할 기회 말이다.

어려서 하지 못한 연습과 공부들... 나이가 든 만큼 더욱 깊이있게 이해해가면서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열한살때 무작정 기타 열시간씩 잡고 있는 것보다 스물 일곱살에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두시간 잡고 있는 것이 더 큰 것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남들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그렇게 하루 한두시간씩만 열심히 20년을 한다면... 47세가 된 우리들이 오랫동안 연습과 공부를 멈춰버린 수퍼 기타리스트들을 능가할 실력을 갖게 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은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 나이에 무슨 음악가로 활동하냐는 의심을 품을지도 모르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2021년... 적어도 그때쯤이라면 울나라에도 어느정도 로컬 씬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고 클럽 씬도 활성화 되어 있을 것이다.

국력도 강해져 있고 경제력도 향상되었으며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공한 울나라 뮤지션들도 나타났을지 모른다. 압도적인 실력만 갖고 있다면, 그 나이에도 분명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머 특별히 대단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또 어떠냐. 이미 음악과 함께 그만큼 살아오면서, 일상적인 삶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많은 색다른 기쁨을 얻었을 것이다. 게다가 언제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열정과 노력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평생에 걸쳐 매일 조금씩 발전해가는 자신을 지켜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로도 사실 족하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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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마흔살 전에 은퇴해야 하는 축구나 권투가 결코 아니다. 20대 초반에 성공해서 오빠~ 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되는 댄스 가수의 길도 아니다. 악기 연주와 그 완성은 평생에 걸친 마라톤인 것이다.

필자는 기타스토리 1편에서, 수만명의 관객과 수퍼모델 출신의 아내, 그리고 페라리 승용차의 꿈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그것은 현실의 벽이다.

그러나 그런 꿈이 아닌, 언젠가 최고의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은 결코 버릴 필요가 없다. 금전적인 성공 따위와는 상관없이 어디가서도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그런 꿈 말이다. 이 목표에 현실적인 벽은 없다.

먹고 살기 바쁘더라도 포기하지는 말자. 생업은 음악이 아니어도 상관없는거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진지하게 기타를 잡고 있으면 된다. 앞으로 적어도 40년의, 꿈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우리에겐 남아 있다.

필자는 그 세월을 그냥 낭비해 버리고 싶진 않다. 일흔살때의 내 연주가 어떤 것이 될지 상상해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열분들은 어떤가?


                               - 딴따라딴지 전임 오부리 파토 (pato@ddanzi.com) -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3-28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