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바이올린 협주곡 (Beethoven, Violin Concerto OP. 61)

 

1806년 12월 23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프란츠 클레멘트(Franz Clement)의 독주 바이올린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초연되었다. 연주 당일 오전까지도 작품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허설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레멘트는 악보를 보자마자 연주하게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훌륭하게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초연은 열화에 같은 박수를 얻어냈지만, 작품 자체를 두고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어떤 비평가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모두 한결 같았다. 그들은 이 곡에 뭔가 좋은 점이 담겨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종종 지속성이 완전히 깨지는 듯하고 상투적인 패시지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피곤하게 만든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어서 “대체로 청중들은 이 협주곡과 클레멘트의 즉흥 연주에 상당히 즐거워했다”고 전한다.


 

교향곡풍의 장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협주곡
베토벤이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에로이카’]를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연주했던 1805년 4월 7일에 클레멘트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도 초연되었다. 여기에 감동 받은 베토벤이 새로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라는 설이 작곡의 배경으로 유력하다. 출판은 1808년에 이루어졌는데, 그 사이에 클레멘트가 베토벤에게 많은 조언을 주었다.

 

사실 클레멘트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 1840년대에 이 협주곡을 연주하기 전까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거의 유일한 음악가였다. 클레멘트의 연주 스타일이 베토벤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따라서 출판본에서 베토벤이 이 작품을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슈테판 폰 브로이닝에게 헌정한 것은 조금 의아한 일이다. 사실 베토벤의 자필악보에는 ‘클레멘트에게 헌정’한다는 문구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이 작품을 작곡하던 당시에는 [피아노 협주곡 4번]과 [교향곡 5번] 그리고 [현악 사중주 ‘라주모프스키’] 등을 쓰고 있던 창작의 절정기였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의 이 작품에 의해 차원이 다른 장르로 올라설 수 있었으며,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은 비르투오조들이 점령한 동시대의 음악적 기류를 바꿔놓을 협주곡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선택했다.


기존에는 독주자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오케스트라는 단순히 반주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바이올린 독주가 포함된 교향곡’이라는 명칭은 그런 점에서 베토벤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본질적인 특징을 지적한 것이다.

 


첫 네개의 음 ‘운명의 동기’
팀파니의 D음을 시작으로 통통거리는 리듬이 독특하게 시작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1악장은 카덴차가 지정되어 있지 않다.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경우처럼 카덴차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무엇보다도 동시대 기교파 연주자들이 카덴차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을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네 음은 소위 ‘운명의 동기’로도 보여지는데, 이 네 개의 음은 [교향곡 5번] ‘운명의 동기’의 경우와도 유사하다. 곡의 인트로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주제가 목관에 의해 연주되고, 독주 바이올린은 온화하게 이 주제를 다시 연주한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던 당시에 베토벤은 미망인 요제피네 폰 다임 백작 부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감정 상태가 1악장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느낌의 음악을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연주자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온화한 느낌과 장중한 드라마처럼 서로 상반되는 느낌을 모두 표현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연주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거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어버렸으며, 파가니니 스페셜리스트들을 단순한 기교파 연주자들로 전락시켰다.
 
그리하여 베토벤의 이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새로운 기준으로서 하나의 시험대처럼 작용하고 있다. 베토벤은 카덴차를 남기지 않았으나 연주자들이 직접 붙인 카덴차는 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특별한 요인이다. 대부분은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이나 크라이슬러의 카덴차를 쓰지만 나탄 밀스타인, 막심 벤게로프, 조슈아 벨 같은 이들은 스스로 작곡해 붙이기도 했다. 베토벤 자신이 무치오 클레멘티의 요청에 의해 1807년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피아노 협주곡 버전’으로 편곡하면서 작곡한 카덴차는 ‘뜨거운 감자’였다.

 

                                                                                                                 - 글 김효진 / 월간 <라 뮤지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