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 로엔그린 (Richard Wagner, Lohengrin)

 

원하는 일을 이룰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조건이 동화나 신화에는 자주 등장하지요. 그리고 주인공이 이 금지사항을 깨트리면서 이야기는 대개 비극으로 발전해갑니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한 오페라 [로엔그린]도 이런 ‘금지와 위반’을 기본 틀로 삼은 이야기입니다. 

 


위기의 순간 백조를 타고 나타난 정체모를 기사
10세기 초 안트베르펜. 텔라문트 백작 프리드리히와 그의 아내 오르트루트는 죽은 브라반트 공작의 딸 엘자가 남동생 고트프리트를 죽였다고 고소합니다. 엘자가 스스로 상속인이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엘자 다음으로 상속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바로 텔라문트 백작이고, 엘자의 남동생은 마법을 쓰는 오르트루트가 백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의 재판관이 된 국왕 하인리히는 당사자들의 결투로 하늘의 뜻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결투에 이긴 사람이 곧 정의로운 사람인 셈이죠. 아무도 엘자 편을 들어 프리드리히와 싸우려고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엘자는 꿈에 본 기사에게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결투를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홀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며 Einsam in trueben Tagen’). 엘자의 부름을 듣고 미지의 기사가 백조를 탄 채 이들 앞에 나타납니다. 기사는 엘자의 청을 기꺼이 승낙하지만 자신의 출신과 이름과 신분을 결코 물어서는 안 된다고 엘자에게 당부하지요. 기사는 결투에서 승리해 엘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결투에서 패배한 프리드리히와 아내 오르트루트는 수치심에 치를 떨며 서로를 비난하다가, 함께 복수의 계략을 꾸밉니다(‘굴욕을 당한 신들이여, 복수를 도우소서 Entweihte Goetter! Helft jetzt meiner Rache!’). 오르트루트는 엘자의 발밑에 엎드려 선처를 호소하고, 마음 여린 엘자는 오르트루트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결혼식 날이 되자 오르트루트는 ‘신분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엘자를 내가 왜 섬겨야 하느냐’며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오르트루트와 프리드리히가 엘자에게 끊임없이 백조의 기사에 대한 의혹을 불어넣는 것을 보고 기사는 불같이 화를 내며 둘을 쫓아버립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말아라
혼례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엘자와 기사는 신방으로 들어갑니다(‘사랑과 축복이 기다리는 곳으로 Treulich gefuehrt ziehet dahin’ - 혼례의 합창). 백조의 기사는 두 사람이 나눌 사랑에 기뻐하지만, 기사에 대한 의혹과 버림 받는 데 대한 불안으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던 엘자는 결국 금지된 질문을 던지지요. 기사에게 출신, 이름, 신분을 물은 것입니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기사를 죽이러 달려 들어오지만, 기사는 재빨리 칼로 그를 죽입니다. 기사는 백성들에게 출정을 약속했지만, 아침이 되자 하인리히 왕 앞에 나아가 ‘출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프리드리히가 자신을 죽이려 했고 엘자가 약속을 깼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는 자신이 몬살바트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죠(‘여러분이 갈 수 없는 먼 나라에 In fernem Land, unnahbar euren Schritten’ - 성배의 노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자신은 몬살바트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백조로 변했던 엘자의 남동생 고트프리트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주고 떠나지만, 엘자는 동생의 품에서 정신을 잃고 죽고 맙니다.


중세문학에 등장하는 ‘백조의 기사’를 소재로 삼았다
바그너는 중세 기사문학 작품인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지팔], 콘라트 폰 뷔르츠부르크의 [백조의 기사], 작자 미상의 서사시 [로엔그린] 그리고 그림형제의 [독일 설화집] 등을 참고해서 자신의 [로엔그린]을 창작했습니다. 바그너는 언제나 이처럼 고대신화 또는 중세문학 작품에서 소재를 가져다가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을 뽑아내고 각색해 ‘현대적인 심리극’을 만들었지요. 신화나 설화가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나 공감할 수 있는 ‘원형’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바그너가 참고했던 중세의 서사시 [로엔그린]에는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원전에는 엘자의 동생 고트프리트도 마법사 오르트루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엘자에게 기사의 비밀을 캐내라고 유혹하는 사람은 자기 남편이 마상 시합에서 로엔그린에게 진 다른 백작부인이죠. 기사가 엘자를 떠나는 시점 역시 결혼식 직후가 아니라 아들을 둘이나 낳은 다음입니다.

 

바그너는 ‘통일된 강력한 민족국가’인 독일을 열망하며 오페라 [로엔그린] 속의 남성상들을 창조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은 심리적 상처를 고쳐주는 치료사(엘자의 억울함을 풀어줌)인 동시에 순수한 ‘독일정신’을 제시하는 예언자(남동생 고트프리트를 되돌려주어 공작 가문의 혈통을 계승하게 함)이며, 다신교를 몰아내고 기독교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사제(다신교 사제인 오르트루트의 흑마술을 이겨냄)로 그려졌습니다.
 
바그너의 반유태주의 및 독일 통일주의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하인리히 왕 역시 역사 속의 인물 그대로가 아니라 바그너의 의도에 맞게 바뀌었습니다. 특히 영웅의 민족적 사명을 무조건 지지하고 신뢰하는 여성에 대한 열망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호기심과 불안 때문에 로엔그린과의 약속을 어긴 엘자에게 벌을 준 것이죠.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혼례의 합창’이 흘러 나오는 오페라
비극 오페라 [마지막 호민관 리엔치](1842)가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초 ‘낭만적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뒤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극장의 지휘자가 되었고, 이후로 작곡과 지휘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소년 시절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던 그는 베버가 섰던 바로 그 지휘대에 서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지요. 베토벤을 존경했고 베토벤 음악의 영향을 받았던 바그너는 1846년에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1850년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초연된 [로엔그린]의 주제를 바그너가 찾아낸 것은 이미 1841년 겨울, 파리에서였지만 본격적으로 작곡에 임한 것은 1846~48년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리엔치]의 성공으로 기대에 찼던 바그너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해 경제적 곤경을 겪으며 유태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가는 과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태인의 상업주의가 당대 예술을 망치고 있다며 분개한 바그너는 유태인들이 만들고 지원하는 예술을 ‘타락의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로엔그린]은 [탄호이저]에 이어 바그너가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여 작곡한 마지막 작품입니다. 요즈음도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 때 피아노로 연주되는 ‘결혼 행진곡’이 바로 3막 ‘혼례의 합창’인데요, 이 곡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선율이 강세를 보이며 음악적 형식이 보수적인 편입니다.

 

전주곡부터 상당히 전통적인 형식에 충실하며, A장조를 기조로 삼아 성배의 종교적인 상징과 로엔그린의 환상적 출현 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바그너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교차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인 형식을 떨쳐버리고,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유도동기)와 무한선율이 강조되는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로엔그린 이후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같은 작품들은 완결된 아리아로 안정감을 주지 않고, 끝없이 계속되는 선율로 청중에게 불안감이나 도취감을 선사합니다. 불협화음의 정도가 훨씬 강해진 이 작품들은 현대 오페라의 길을 열어주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 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