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 소나타 K.331 -  모짜르트 ]

 

“아이가 치기에는 너무 쉽고, 어른이 치기에는 너무 어렵다.”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아르투르 슈나벨이 남긴 이 말은 모차르트가 남긴 피아노 소나타 전곡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다. [소녀의 기도]나 [엘리제를 위하여]와 같은 피아노 소품과 더불어 어느 정도 피아노에 숙달된 어린이들이 많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소위 ‘대가’라는 이름이 붙은 어른 연주자들도 쩔쩔 맨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왜 그럴까?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물 흐르듯 무리없이 전개되는 모차르트 소나타의 흐름 속에는 수많은 희로애락의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다. 나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그 희로애락의 수수께끼를 투명하게 제시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즉,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속에는 피아니스트가 쉬어갈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걸어온 인생과 그 철학 속에서 아픔을 넉넉히 포용하는 연주자의 관용이 청중에게는 적나라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미소 띤 얼굴로 차가운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모순을 인생을 ‘살아낸’ 경륜으로 맞설 때 드물게 성공적인 연주가 이뤄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건반악기 음악은 모차르트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가 친숙했던 악기는 쳄발로와 클라비코드였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현재 피아노의 전신이랄 수 있는 포르테피아노를 알게 되고 이 새로운 악기의 성능이나 특성을 염두에 둔 여러 피아노 곡들을 쓰게 된다. 장르도 다양했다. 소나타 이외에 변주곡, 환상곡, 론도, 푸가 등 여러 종류의 소규모 곡들이 있었다. 그래도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곡은 소나타였다. 알레그로, 안단테 같은 소곡을 작곡한 모차르트는 이들을 조합해 소나타를 구성해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는 유럽 여행 중의 일이었다. 이후 1775년 뮌헨에 머물며 쓴 연작을 비롯해 만하임, 파리 여행 때의 작품, 빈 시기의 작품은 피아노란 악기의 표현력을 충분히 파악한 작품들이었다. 문헌에 의하면 모차르트의 피아노 연주솜씨는 어려서부터 대단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볼 때 모차르트는 스스로 표현하길 원했던 많은 요소들을 확실하게 건반 위에 남겨 놓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터키 군악대의 음악을 모방한 ‘터키 행진곡’
이 곡은 모차르트가 22세인 1778년 5~7월 사이에 여행지인 파리에서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빈이나 잘츠부르크에서 1783년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터키풍의 론도로 되어 있는 마지막 악장 ‘터키 풍으로 Alla Turca’는 모차르트 모든 피아노 작품 가운데 ‘터키 행진곡’이라는 제목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터키 행진곡’이라는 타이틀은 3악장의 리듬이 터키 군악대 리듬과 같다고 후대에 붙여진 별명이다. 본래 ‘터키 행진곡’이란 이름이 붙은 곡으로는 베토벤의 작품이 있다. 베토벤의 ‘터키 행진곡’은 그가 1811년에 작곡한 극음악 [아테네의 폐허] op.113라는 작품의 4번째 곡인 오케스트라 작품이다. 터키의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면서 지나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모차르트 역시 3악장에서 당대에 유행했던 터키풍의 취미를 반영했으며 터키 군악대의 음악 양식을 모방했다. 당시 터키 군악대의 음악은 유럽에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은 세계 최초로 군악대를 정규병과로 개설한 국가였다. 오스만 군대의 군악대를 메흐테르(mehter)라고 부르는데, 메흐테르 군악대는 위풍당당한 모습과 위협적인 음악으로 오스만 터키의 유럽 침공시 유럽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터키 군악대의 음악이 18세기 후반~19세기 초에 걸쳐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유럽에 퍼져 폭넓게 유행했고,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터키 스타일을 모방하는 붐이 일어났다.

 

터키 군악대의 음악은 리듬, 형식, 악기 편성이 유럽의 음악과는 많이 달랐으며, 팀파니와 비슷하게 생긴 큰북과 같은 타악기를 적극적으로 쓰면서 다이내믹하고 힘찬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 특징적인 면이 유럽인들에게 강하게 어필했으며 당시 하이든, 모차르트와 같은 유명 작곡가들에게 음악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피아노 소나타 K.331]에 앞서 [바이올린 협주곡 5번] 3악장에도 터키 스타일의 행진곡 리듬을 사용한 적이 있으며,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에서도 터키의 이국적인 매력과 풍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구성
이 곡은 소나타지만 소나타 형식으로 씌어진 악장이 없다. 당시 전형적인 악장 구성의 관례를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은 변주곡 형식, 2악장은 미뉴에트, 마지막 3악장은 론도 형식이다. 각 악장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악장 Andante grazioso 느리고 우아하게
독일 민요에서 멜로디를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주제와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주제 멜로디는 귀에 익고 거기에 딸린 6개의 변주곡 어느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매력적이다. 뒤로 갈수록 차츰 연주자에게 요구되는 기교의 수준이 높아진다. 1악장의 제1주제는 훗날 막스 레거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변주와 푸가](1914)에 사용되기도 했다.

 

2악장 Menuetto e Trio  미뉴에트와 트리오
1악장은 조용하게 시작되더니 2악장의 미뉴에트는 힘차게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나타의 특징과 사뭇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악장 Alla Turca - Allegretto 터키 풍으로 - 조금 빠르게
모차르트 최고의 인기 선율 중의 하나다. 장식음을 아낌없이 이용하고 있으며 A단조와 A장조를  훌륭하게 대비시켰다. 마지막 코다 부분은 적절한 때에 소나타를 마무리짓는 느낌을 준다. 모차르트 당대에는 특히 이 곡의 3악장을 연주할 때 ‘터키시 스톱 Turksh stop’ 혹은 ‘터키 병사의 페달 Janissary Pedal’이라고 불리는 특수 페달이 탑재된 피아노를 사용했다. 이 특수 페달은 드럼, 종, 심벌즈 등 타악기의 음색 효과를 표현하는 장치였다. 3악장의 선율은 베니 굿맨, 보도 워트케의 작품 등 수많은 대중음악에 사용되며 그 대중성을 확고히 했다.

                                                                                                         - 글 류태형 / 전 <객석> 편집장,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