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 화성의 영감 (조화의 영감)
Vivaldi, L'Estro Armonico Op.3

 

[화성의 영감]이라 불리는 비발디의 협주곡 모음집 작품3에 감탄한 이는 비단 요한 세바스찬 바흐뿐만이 아니다. 바흐가 청랑한 음향이 돋보이는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 중 몇 곡을 편곡해 비발디에게 경의를 표했다면,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어린 음악도들은 생애 최초의 협주곡으로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 중 제6번을 연주하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신고식을 치르고, 음악애호가들은 [화성의 영감]을 이루는 다채로운 협주곡들을 들으며 이탈리아 바로크 협주곡의 상큼 발랄한 매력에 빠져든다.

 

비발디 자신에게도 [화성의 영감] 작품3은 특별하다. 그가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출판한 작품집이기 때문이다. 비발디는 협주곡으로서는 처녀 출판인 작품3에 다양한 양식과 개성을 담은 12곡의 협주곡들을 넣어 협주곡 작곡가로서의 그의 비범한 재능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1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담긴 비범한 작품집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나 그 역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비발디가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사제로서의 의무에 묶여 있었다면 이처럼 다양한 영감으로 가득한 협주곡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비발디는 평생 건강 문제로 고생해야 했지만 그 덕에 사제의 의무에서 벗어나 베니스의 고아원 ‘피에타’에의 음악책임자로서 작곡과 교육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가 평생 작곡한 40여곡의 오페라와 500여 곡의 협주곡들은 비발디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으나 무엇보다도 비발디는 ‘협주곡 작곡가’였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500여 곡의 협주곡들 중 절반을 바이올린을 위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작곡했고, 100여 곡의 첼로 협주곡 외에, 오보, 플루트 독주를 위한 협주곡과 독주 그룹을 위한 150곡의 협주곡을 작곡하며 이탈리아 바로크 협주곡 특유의 화창한 음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비발디의 수많은 협주곡들 가운데서도 [화성의 영감] 작품3은 발랄한 주제와 생동감 넘치는 리듬, 명쾌한 형식미를 갖춘 전형적인 이탈리아 바로크 협주곡의 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모음집이다.

 

이 작품집에 붙어있는 ‘L’estro armonico’라는 부제는 번역하기 다소 어려운 말이지만, 'estro'는 ‘충동, 욕구, 영감’의 뜻을 지니고 있고 'armonico'는 ‘조화의, 화성의’ 또는 ‘음악의’라는 뜻이 있기에 "L'estro armonico"는 흔히 ‘화성의 영감’이나 ‘조화의 영감’으로 번역된다. 이 말은 명쾌하고 산뜻한 이 협주곡집의 작품 경향과 딱 들어맞는다.


 

강렬하게 울려퍼지는 독주와 합주의 드라마틱한 대비
본래 협주곡 즉 콘체르토(concerto)는 ‘경쟁하다, 겨루다’의 의미를 지닌 라틴어 ‘concertare’를 그 어원으로 하고 있는 만큼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에서도 독주와 합주 사이의 드라마틱한 대비 효과가 탁월하다. 이 작품에서 독주를 담당하는 작은 그룹은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담당하는 큰 그룹과 극적으로 대비되는데, 여기서 작은 규모의 독주 그룹을 ‘콘체르티노’라 하고 큰 규모의 합주 그룹을 ‘리피에노’라 한다.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 작품3의 12곡은 ‘콘체르티노’의 악기 편성에 따라 4대의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하는 협주곡과, 2대의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하는 협주곡, 그리고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협주곡의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의 협주곡들 중 4대의 바이올린만이 독주악기로 나서는 작품은 제4번뿐이고, 제1번, 제7번, 제10번에선 독주 그룹에 4대의 바이올린과 함께 첼로가 함께 들어간다. 이처럼 독주자들이 많다보니 한 연주자의 기교보다는 앙상블이 더 중요하고 전체적인 조화가 중시된다. 이 협주곡들 중 제10번은 기교가 그리 까다롭지 않으면서도 상쾌한 리듬감이 돋보여 전문 실내악단의 단골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으며, 영화 [위험한 관계]에서 바람둥이 발몽 자작이 두 여자를 동시에 유혹하는 동안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화성의 영감’ 작품3 중 2대의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하는 유형에 속하는 협주곡으로는 제2번과, 제11번이 있다. 이들 작품은 이탈리아 협주곡 양식을 확립한 코렐리의 전통에 따라 2대의 바이올린에 첼로가 더해진 독주 그룹을 형성하고 있어 고음역과 저음역의 균형이 잘 맞고 특히 제2번의 경우 옛 교회 협주곡의 양식에 따라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 구조를 택하고 있어 고풍스럽다.

 

 

불꽃이 일듯 음향을 뿜어내는 바이올린의 마력
그러나 ‘화성의 영감’ 중 특히 돋보이는 작품들은 이런 전통적인 작품보다는 기존의 전통에서 벗어나 비발디 본연의 개성을 더 확실하게 표현한 협주곡들로, 그 중 첼로 없이 두 대의 바이올린만이 독주자로 나서는 협주곡 8번은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재치 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명곡이다. 특히 3악장에서 바이올린 활의 탄력을 이용해 빠른 아르페지오(펼친 화음)를 만들어내는 연주법은 마치 불꽃이 일듯 화려한 음향을 뿜어내며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오로지 한 대의 독주 바이올린만이 협연자로 나서는 협주곡 제3번, 제6번, 제9번, 제12번 역시 비발디의 개성이 드러난 협주곡들로, 한 명의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고전주의 협주곡을 예시한 진보적인 작품들이다. 바흐 역시 그 점을 인식했던 탓인지 비발디의 작품3 중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에 주목하고 그 중 제3번과 제9번을 쳄발로 협주곡으로 편곡했으며,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표현력을 자랑하는 제8번을 오르간 협주곡으로 편곡했다.

 

바흐가 편곡한 세 곡의 협주곡들은 ‘화성의 영감’ 중에서도 특히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들로, 기존의 전통에서 벗어나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의 구성과 대범하고 발랄한 악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현학적인 대위법적 양식보다는 귀에 쏙 들어오는 화성적인 양식을 채택하고 있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친근한 매력이 있다.


                                                                         -  글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