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러쎌과 더불어 현존하는 기타리스트 중 또 한명의 최일급의 주자인 Manuel Barrueco는 쿠바 태생의 기타리스트로서 1967년 미국으로 이주, 현재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서 그 웅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야말로 현대의 거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워낙 유명한 연주자라 많은 부분 설명이 필요없겠습니다만 간략히 그의 biography를 살펴보면 8살 무렵 쿠바에 살고 있을 적부터 기타를 시작했고 첫 기타수업은 쿠바의 Esteban Salas Conservatory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경이적인 테크닉의 근간은 먼저 그의 스승인 합리적인 교육자 아론 쉬어러의 교육 때문이라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항간에는 바루에코가 마치 깔레바로의 수제자인양 오도되는 면이 없지 않은데, 그것은 아마 바루에코라는 이름이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무렵과 깔레바로 주법의 보급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져 좁은 정보의 와중에 일어난 오해인 것 같습니다.

아론 쉬어러의 교육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연주는 결국 좋은 연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 깔레바로와 기본적인 모토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바루에코 역시 깔레바로의 연주법을 연구하지 않은 바 아니구요...

주법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아뫃든 훌륭한 스승에 보답이라도 하듯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새로운 기타의 어법을 선보이며 1974년의 카네기홀 데뷔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치뤄 냄으로써 기타계의 전면에 부각하기 시작한 그는 기량면에서 뿐 아니라 타고난 음악에 대한 "구조적인 감각"으로 당시 기타리스트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물샐 틈 없는 악곡의 해석"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초창기 앨범인 VOX 레이블의 몇장의 음반은 마치 건반악기로 기타곡을 연주하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존의 난곡들을 요리하여 엄청난 반향을 불러 모았습니다만 마이너레이블에서의 녹음이라 아직은 범세계적으로 그의 명성이 퍼져 나가지는 못했었죠.

콘써트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이 반열에 올라서자 메이저 레이블인 EMI/Angel과 전속계약이 이루어졌고, 이후 내놓는 음반들은 애호가들에게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하며 베스트셀러의 입지를 굳힙니다.
또한 이와 함께 전세계 순회연주에 나선 그는 음반에서 들려준 내용을 그대로 무대에서 선보이며 많은 기타애호가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첫 일본공연 당시 한 평론가는 그의 연주회를 아래와 같이 평가하였는데, 이 평가는 제가 생각할 때 아주 시의적절하고 멋진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뉴엘 바루에코의 연주회를 처음 접하는 기타리스트에게 다음의 두가지 반응을 읽을 수 있다....아마츄어 연주가에게는 기타 연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프로 기타리스트에겐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대한 절망을 안겨주었다..."

독주 기타 뿐 아니라 협연 능력도 탁월한 그는 여러 유명 협주곡의 연주도 두루 섭렵하였으며 많은 현대 작곡가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곡을 헌정하고 있습니다.

단 하나...그에 대한 호불호가 나누어지는 면은 너무나 테크닉이 깔끔하여 무미건조한 느낌을 준다는 평이 있다는 점인데 그것은 마치 전설적인 바이올린의 거장 야샤 하이페츠가 전성기의 연주에서 받은 평가와도 유사합니다.

저도 이미 수차례 이루어진 그의 내한연주를 두루 관람하였지만 스테이지에서의 그의 연주와 집에서 음반으로 듣는 그의 연주는 놀랍게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연주가의 연주회는 좀 익사이팅한 맛이 이제는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솔직이 고백합니다-그러나 또다시 관람하게 되는 것은 볼때마다 배울 점이 그만큼 많고 자극이 되는 연주회도 드물기 때문이죠).

최근 국내 연주가 중에도 미주지역으로의 유학이 늘면서 그의 클래스나 마스터클래스를 받는 연주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는 아론 쉬어러에서 교육을 받은 미국 볼티모어의 피바디 음악원에서 현재 교편을 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인 마스터클래스도 정력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