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브림은 1933년 7월 15일 런던태생의 기타리스트다. 특히 르네상스시대 류트음악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그는 기타와 류트의 양면에 걸쳐 대가의 솜씨를 보여준다.

어려서는 그의 아마추어 재즈기타리스트 인 아버지에게 배웠고 11세 때부터 러시아 기타리스트였던 알렉시스 체스나코프로 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하여 12세에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최하는 연주 무대에 참가할 정도 로 기량이 향상되었다. 그 뒤 그는 기타리스트 협회장인 페롯에게 러시아식 겸 이탈리아식 기타 연주법을 사사받게 된다.

1947년 세고비아는 런던 공연을 위해 영국에 와 있었고, 브림은 페롯의 소개로 세고비아를 만나게 되었는데, 세고비아는 그의 연주를 듣고 즉석에서 그에게 적극적인 후원을 할 것을 약속하였고, 브림에게 레슨을 해주게 된다. 브림의 정식데뷔는 세고비아를 만난 해인 1947년 영국 첼튼햄에서 이루어 졌으며, 그의 데뷔는 매우 성공적 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14세 였던 브림은 1948년 영국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기타리스트로서의 피아노와 기타 작곡을 공부했으나, 당시 기타는 천대 받고 있는 악기였기에 그는 거의 독학으로 기타를 배울 수 밖에 없었다. 1950년에는 런던에서 데뷔했는데 이후 전 영국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클래식기타의 연주는 대중적이지 않아 브림의 성공적 데뷔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1950년 데뷔 직후 브림은 르네상스 시대의 류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곧 그분야의 권위가 된 그는 연주회 프로그램에 덜 알려진 옛 음악을 적지않게 삽입시키곤 했다. 엘리자베드 시대 음악에 관한 테너 피터 피어스와의 공동연구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는데 버클리, 므리튼, 헨체, 티페트 등 주요 작곡가들이 그 영향을 받아 류트와 성악을 위한 작품을 썼다.

브림은 1954년 스위스에서의 연주회를 시발로 유럽전역의 연주여행을 시작했 다.1956년 브림은 빌라 로보스를 만나는데 이를 계기로 그의 기타 협주곡을 영국에 서 처음 연주하기도 했다. 1958년 이후 브림의 시야는 미국 뿐만 아니라 극동 지역까지 크게 넓혀졌다. 줄리안 브림 콘소트(Julian Bream Consort)가 결성된 것은 1959년의 일이었다. 처음 에는 (Moriey)의 콘소트 레슨교본 1권을 연주하기 위해서 였는데 이 그룹의 성공은 르네상스 시대 콘소트 음악의 대중적 인기를 끌어모으는 부수적 효과까지 거두었다. 이를 지켜본 몇몇 작곡가들은 기타음악의 효용성을 깨닫고 작품을 썼으며 베네트의 쳄버 앙상블을 위한 협주곡, 브리튼의 녹턴, 윌튼의 다섯개의 바기텔 등이 그렇게 해 서 만들어졌다. 브림은 기타의 모든 레퍼토리에 대해서 풍부한 지식과 이해를 갖고 있고 그의 화려 한 스타일, 밀도 깊은 음색은 그의 연주를 듣는 일을 하나의 감동적인 경험으로 승화 시킨다.

1964년 브림은 OBE(Officer of the British Empire서훈의 일종)로 임명되었고, 1968년 서 레이 대학로 부터 박사학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명성은 1976년 BBC TV에서 방송한 'A Life in the Country'의 방영으로 더욱 높아지게 되었고 1976년에는 빌라로보스 골드 메달을 1982년 가을에는 그의 연주생애에 대한 책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스포츠카 광이었던 브림은 84년 여름 티스버그에서 오크가에 있던 자신의 스포츠카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하던 중 급 커브길에서 그만 핸들을 돌릴 틈도 없이 석조 건물을 들이 받고 목숨보다도 소중한 오른팔을 못쓰게 되었다. 수술 후 그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연주자로서의 절정기에 그는 생애에서 가장 큰 시련을 맛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기교의 많은 퇴보를 가져왔고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여 기타를 기피하기도 했지만 성공적인 재기로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주하기도 하고 음악적 해석은 더욱 탁월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