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는 1778년 2월 바르셀로나에서 Jose Fernando Macarurio Sor 이란 이름으로 로 카탈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기타를 처음 아버지부터 접했는데, 8살때까지 완성된 연주자가 되었다.군대경력을 쌓을 의향으로 그는 Moteserrat에 있는 수도원 수업을 받았다.18살때 그는 오페라 칼립소섬의 텔레마코를썼고  1797년 바르셀로나에서 출간되었다.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바로셀로나에 돌아가지 않을수없게 되었고 군사학교에서 대위의 계급까지올라갔다. 그 세기가 끝날무렵 소르는 A lba의 공작부인의 후원아래 음악가로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게된다.

1808년 프랑스군대가 스페인을 침략했을때 소르는 그의 민족주의적인 애국심을 보여주었으나 스페인이 패배하자 프랑스정부의 관직을 스스로 받아들였다.스페인이 결국 프랑스를 자기나라에서 몰아냈을때 소르는 다른 많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1818년에 그는 파리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그는 1820년에는 독일과 러시아에 갔고 모스코바에서 세개의 발레를 출간했다.1823년에 그의 아내인 Fench ballerina Madame Hullin Sor는 그의 남편이 쓴 음악에 발레를 공연하러 모스크바로 갔다.소르 자신이 러시아에 초대되었고 이를 기념해서 Souvenir de Russie라는 기타 2 중주곡을 작곡했다.

1825년 Czar Alexander일세가 사망하자 소르는 Czar Nicholas 일세의 요청으로 장례행진곡을 작곡했다.유럽전역과 러시아를돌아다니며 연주자로서 많은 요청가 있었으나 작곡에 몰두하기위해 여행을 그만두었다.그는 1815년 런던에서 데뷰를 했는데 런던 필하모닉과 연주를 하도록 초대받은 처음이자 유일한 기타리스트였다.

소르의 기타작품은  기타의 많은 현대의 레파토리를 이룬다. 그 시대의 많은 작곡자들과는 달리 기술적인 가치뿐만아니라 음악적인 효과를 위해 작곡했다.그의 작품은 모두 복잡한 대위법적인 멜로디 선율을가지고 있는 베토벤 하이든 슈베르트 와 같은 대가들의 풍부한 선율적방식들을 포함하고있고 종종 대담한 키 변화와 화음 양식을 보여주고있다. 솔로기타를위한 그의 작품은 오케스트라를위한 거대한 심포니에 비유된다.소르는 기타를위한 거의 100개의 연습곡과 DIVERTIMENTI 의 여러작품을 썼다.아마도 그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은 Theme and Variations on Mozart's The Magic ulute(opus 9)이다. 이는 생동감이  가득하지만  연주자에게 많은 기술적인 요구를 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