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은 드보르자크의 생애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해였다. 그는 이 해에 프라하 음악원의 작곡과 교수에 임명되었으며, 그 뒤 얼마 되지도 않아 미국에서 음악원 원장 자리를 제의받았던 것이다. 작곡과 교수 월급의 세 배가 넘는 거액의 급료는 물론이고 4개월에 걸친 휴가와 연주회를 한 해에 10회 지휘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덧붙여서. 음악가라면 누구라도 뿌리치기 힘들 이런 조건을 내세워 드보르자크를 유혹한 사람은 자넷 서버(Jeanette Thurber)라는 여성이었다. 열렬한 음악 애호가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부유한 사업가와 결혼한 뒤, 당시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미국의 음악계를 개혁할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뉴욕에 음악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그 원장 자리를 맡을 적임자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까지 명성이 퍼져 있었던 드보르자크를 낙점했던 것이다. 

 

사실 드보르자크가 이 자리를 덥석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조국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는 프라하 음악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후한 조건 덕에 생활도 풍족해지고 창작 및 연주 활동의 자유도 보장된다는 판단에 결국 제의를 수락하게 되었다. 이 수락에는 미국의 기차와 방대한 철도 시스템을 눈으로 직접 보고자 했던 욕심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덧붙이는 사람도 있다(드보르자크는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 마니아이기도 했다).

 

◆ 이역만리 타국에서 작곡한 망향의 노래
드보르자크가 가족과 함께 뉴욕을 향해 출발한 것은 1892년 9월 15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열렬한 환영 속에 뉴욕에 도착한 9월 27일부터, 이른바 그의 ‘미국 시기’가 펼쳐진다. 원래 2년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1895년 4월까지 연장된 이 시기는, [현악 사중주 F장조 ‘아메리카’]와 [현악 오중주 E플랫장조], [첼로 협주곡](체코 귀국 후에 완성되었다) 등의 대작이 나온 풍요로운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세계 교향곡]은 이 시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1893년 1월 10에 착수되어 5월에 24일에 완성된 이 교향곡은, 같은 해 12월 15일에 카네기 홀에서 공연되었다. 초연은 작곡가의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만큼 대성공이었으며, 이듬해에 유럽에서 악보가 출판될 때는 드보르자크와 절친한 사이였던 브람스가 교정을 도와주기도 했다.

 

드보르자크는 “미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교향곡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인디언이나 흑인 음악을 차용했다는 것은 무의미한 소문일 뿐이며, 나는 다만 미국의 민요 정신을 넣어 작곡했을 뿐”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선율이나 음계에서 인디언 음악이나 흑인 영가의 영향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드보르자크가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을 붙일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오히려 미국의 광활한 자연과 대도시의 활기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이었다(특히 1악장과 4악장에 이런 인상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 1악장 - 아다지오-알레그로 몰토 ]
E단조 4/8박자 서주는 첼로 선율로 조용히 시작한 뒤 점차 악상이 고조돼 알레그로 주부로 넘어간다. 주부에서는 호른이 당김음을 사용한 1주제(상승했다가 곧바로 하강하는 단순한 선율이다)를 제시하고, G단조의 2주제는 목관악기로 부드럽게 제시된다. 코데타(‘작은 코다’라는 뜻으로, 코다가 아닌 곡 중간에서 코다처럼 종결감을 주는 악구)는 플루트가 제시하는 G장조 선율이 주축을 이루며, 발전부는 이 코데타의 선율을 활용한 뒤 1주제로 나아간다. 재현부는 제시부와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G단조 주제를 경과구 주제로, G장조 선율을 2주제로 보기도 한다).

 

[ 2악장 - 라르고 ]
D플랫장조 4/4박자. 짧은 서주에 이어 잉글리시 호른이 유명한 주제를 노래한다. 이 주제는 ‘Going Home’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초연 당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이 선율을 듣고 많은 여성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중간부는 C샤프단조로, 클라리넷이 사랑스런 선율을 연주한다. 1악장의 1주제와 코데타 주제, 2악장 1부 주제가 한데 어울려 클라이맥스를 이룬 뒤 3부에서는 1부 주제가 자유로운 형태로 반복된다.

 

[ 3악장 -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 ]
E단조, 3/4박자. 짧고 활기찬 서주에 이어 목관이 탐색하는 느낌의 주제를 제시한다. 1악장 2주제를 소재로 한 경과구를 지나 등장하는 트리오에서는 목관을 주축으로 해 밝고 낙천적인 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스케르초 섹션으로 되돌아가 코다로 이어지며, 코다에서는 1악장 1주제가 호른으로 연주되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코데타 주제가 트럼펫으로 울려 퍼진다. 강렬한 총주와 함께 끝난다.

 

[ 4악장 - 알레그로 콘 포코 ]
E단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저음현이 연주하는 육중한 서주(영화 [죠스]에서 상어가 등장할 때 나오는 선율과 비슷하다)에 이어 1주제가 힘차게 연주된다. 이 주제의 앞쪽 절반은 응원전 같은 데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어 클라리넷이 2주제를 아름답게 연주하며, 3악장 스케르초 주제도 등장한다. 발전부는 1주제 및 1악장 1주제, 2악장의 주요주제, 3악장 스케르초 주제 등이 어우러져 화려하게 전개되며, 재현부 다음의 코다에서도 각 악장의 주요 주제가 골고루 회상된다. 여운을 남기는 관악기의 긴 화음으로 곡이 마무리된다.

 


◆ 체코적이면서 동시에 미국적인, 교향악 예술의 걸작
이 곡은 작곡된 뒤 지금까지 인기를 잃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이방인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음악적 이디엄으로 여겨지고 있다. 2년 전에 로린 마젤이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평양에서 연주회를 열었을 때 프로그램에 이 곡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비록 다분히 국제적(달리 말하자면 절충적)이고 보편적인 성격 때문에 드보르자크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해도(이런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하며, 그 이유 때문에 작곡가의 교향곡 가운데서는 8번을 더 좋아한다.) 형식과 내용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교향곡의 역사를 통틀어 대단한 걸작임은 부인할 수 없다.

 

시대가 다르고 유럽인과 아시아인의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또 ‘신세계’라는 명칭에, 그리고 그러한 명칭이 생겨난 역사적 연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 듣는다 해도 이 곡의 아름다움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신세계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스위스의 희곡작가 막스 프리쉬가 [만리장성]이라는 희곡에서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한 말이다. 이 교향곡이,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세계’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글 황진규 /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