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록 스타일 보컬, 조 린 터너 레인보우 입단

주지하다시피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레인보우 (Rainbow) 는 1970년대 후반 영입한 영국 출신의 미남 보컬 그레이엄 보넷 (Graham Bonnet) 의 보컬 스타일이나 전반적인 대중음악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나서, 자기네들이 줄곧 해오던 하드 록이나 헤비메탈의 모습을 버리고는 급작스럽게 팝 록으로 장르를 바꾸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 레인보우 4기의 앨범은 헤비메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100퍼센트 팝 록으로 치장이 되었고, 바로 그 작품이 Down To Earth이다. 이렇게 레인보우는 리더 리치 블랙모어의 색다른 표방 때문에, Down To Earth 다음 작품도 역시 이렇게 팝 록으로 나아갈 것을 우리들에게 알렸다.

그렇지만 익히 알다시피 패션 스타일의 문제나 아니면 팀 내부의 불화로 인해서 그레이엄 보넷과 리치 블랙모어는 말싸움을 펼치며 점점 두 사람의 사이가 갈라졌고, 결국 그렇게 해서 그레이엄 보넷은 역대 레인보우 보컬 중 가장 짧은 시기인 1~2년만에 레인보우를 탈퇴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와 비슷하게 희대의 드러머 코지 파웰도 그레이엄 보넷과 함께 손을 잡고 레인보우를 빠져나왔는데, 이들은 독일의 슈퍼스타 기타리스트 미하엘 쉥커 (Michael Schenker) 의 록밴드 MSG로 새 둥지를 틀었다. 리치 블랙모어에겐 어서 빨리 레인보우의 공백을 막아내는 것이 급선무였고, 레인보우의 베이시스트이자 유능한 프로듀서인 로저 글로버와 함께 차기 레인보우 보컬, 드러머를 선정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인물이 미국 출신의 보컬 조 린 터너 (Joe Lynn Turner) 였다. 잠시 조 린 터너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다. 조 린 터너의 본명은 조셉 아더 마크 린퀴토 (Joseph Arthur Mark Linquito) 이고, 1951년 8월 2일 미국 뉴저지 주의 하켄사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씨에서 뉘앙스가 나타나듯 미국 뉴저지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Italian American)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눈망울이 크고 스마트한 외모와 매끈한 몸매가 딱 이탈리아 혈통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 린 터너는 이렇게 리치 블랙모어의 눈에 들어와서, 1980년 레인보우에 입단하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레인보우 멤버들과 함께 차기작 Difficult To Cure (1981) 작업에 착수하였다.


레인보우, Difficult To Cure로 완전히 팝 록에 매진하다

신입 보컬 조 린 터너는, 이전에 그레이엄 보넷이 부르다 만 노래인 I Surrender를 마저 부르면서 앨범 작업의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사실 I Surrender라는 곡도 레인보우가 만든 노래가 아니라, 인기 록가수 러스 발라드 (Russ Ballard) 의 노래에서 착안한 것으로서, 이는 Down To Earth 앨범의 최고 히트곡 Since You Been Gone 역시 러스 발라드 원작이라는 점과 일맥상통 한다. I Surrender는 그렇게 Since You Been Gone과 맥락을 같이 하는 팝 록이라고 보면 될 것이고, 레인보우가 이 노래를 차기 앨범의 첫 번째 트랙으로 선정한 것을 예로 들어서, 레인보우가 이제는 완벽하게 팝 록으로 장르를 바꾸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점은 조 린 터너가 레인보우에 입단한 이유, 그리고 조 린 터너의 보컬 성향에 따라 레인보우의 ‘변절’ 을 방증할수 있는 조건들이 여럿 있다. 먼저 조 린 터너의 보컬 성향에 대해 현지 팝 칼럼니스트들은 “힘 있는 (powerful)" 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조 린 터너는 엄청난 성량의 소유자라는 점을 캐치할 수 있다. 이것은 전임 보컬 그레이엄 보넷과 동일하게, 엄청난 성량을 쏟아내며 록음악을 한다는 것일텐데, 이런 스타일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 으레 등장하였던 팝 록밴드의 전형적인 보컬들의 포맷이다.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대중들의 인식에 쉽게 각인할 수 있는 멜로디로 록음악을 하는 이런 대중적인 보컬들은, 대개 평단으로부터 ”힘 있는“ 보컬 능력을 지녔다라고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조 린 터너는 1980년대부터 슬슬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흑인음악 리듬앤블루스의 그 애절한 곡조에서 착안한 팝 록에도 적합한 보컬이니, 그만큼 다양한 보컬 능력을 내뿜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실례로 1980년대부터 슬슬 등장하기 시작한, 리듬앤블루스의 애절한 곡조와 팝 록이 합쳐진 이러한 모습들은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하드 록밴드 화이트스네이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런 밴드들의 노래는 리듬앤블루스 보컬들이 애절한 곡조에서 훑어주는 간드러지는 그루브와, 보컬들이 뮤직비디오 영상을 통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손동작이나 뮤직비디오 스토리 등의 조건으로 보았을 때, 1980년대에는 유난히도 리듬앤블루스에서 착안한 변형적인 팝 록들이 줄을 이었다. 바로 이것을 모두 대변해주는 노래가 Difficult To Cure의 1번 트랙 I Surrender인데, 조 린 터너는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후렴구에서 시원하게 쏟아 붓다가, 1절이나 2절 가사를 노래할 때에는 그루브를 최대한 살려서 애절하게 가사를 내뿜는다. 마치 일렉트릭 기타가 다량 함유된 록 비트가 강한 리듬앤블루스를 듣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이외에도 레인보우는 Difficult To Cure 앨범에서 대중들에게 쉽게 각인될 수 있는 대중적인 멜로디를 지닌 팝 록으로 완전히 앨범을 도배해놨다. I Surrender 다음으로 등장하는 2번 타자 Spotlight Kid는 상당히 마초적인 강인한 멜로디를 가지면서, 인상적인 후렴구를 발산하는 전형적인 헤비한 팝 록이다. 3번 트랙 No Release 역시 I Surrender처럼 그루브를 타면서 펑키 (funky) 한 느낌으로 노래를 훑고 있으며, 낭만적인 멜로디가 일품인 노래 Magic은 그저 레인보우가 완전히 팝 록으로 선회해서 사랑스러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6번 트랙 Can't Happen Here, 7번 트랙 Freedom Fighter, 그리고 8번 트랙 Midtown Tunnel 모두 죄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팝 록에 입각한 노래들이다.


리치 블랙모어의 쓸쓸한 기타 자화상 - Vielleicht Das Nachste Mal

사실 Difficult To Cure 앨범 자체로만 놓고 보았을 때엔, 레인보우가 너무 지나치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팝 록으로 치장한 것으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영리한 리치 블랙모어는 어떻게 해서든지 절반 이상은 성공하려고 진지한 노래 몇 가지는 트랙에다가 숨겨놓았다. 바로 그 중 하나가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에 대한 자화상, Vielleicht Das Nachte Mal이다. 독일어로 이뤄진 이 제목은, 영어로 ‘아마도 다음에 (Maybe Next Time)' 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꽤나 서정적으로 다가오는 이 제목과 마찬가지로, 기타 인스트루먼틀 트랙인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절하다.

잘 알다시피 리치 블랙모어의 음악적 원천도 역시 블루스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그가 딥 퍼플을 결성하기 이전까지는 독일 함부르크의 언더그라운드 클럽가에서 기타를 쳤다는 사실은 모든 록 마니아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그런 리치 블랙모어에게 있어서 블루스란 자기가 음악을 멋지게 할 수 있는 원천이며, 리치 블랙모어에게 독일이란 아마추어 시절 힘든 일을 겪으며 노래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하나 가지고 살았던 응고의 장소였다. 바로 이런 리치 블랙모어의 음악적 원천이 담겨진 노래가 바로 Vielleicht Das Nachte Mal이다. 향후 이 노래는 리치 블랙모어가 레인보우 재직 시절에 라이브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하던 노래로 사랑 받았으며, 리치 블랙모어 개인으로 보았을 때 대표적인 인스트루먼틀 트랙으로 불려지게 된다.


리치 블랙모어가 재탄생한 베토벤 9번 교향곡 - Difficult To Cure

레인보우의 앨범 Difficult To Cure는 명반이 아니다. 완전한 팝 록의 변절 작품으로서, 평단으로부터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그냥 그 자체로만 보았을 때 우리들에게 느껴지는 일종의 위압감이나, 명성, 영예 등의 단어 등이 떠오르는 이유를 찾자면, 아무래도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자 Difficult To Cure가 진정으로 우리들에게 들려주고자 하였던 노래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증명할 수 있는 멋진 작품 하나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리치 블랙모어가 천재적인 편곡 능력으로 재탄생한, 그 유명한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 의 록 버전 Difficult To Cure이다.

리치 블랙모어는 딥 퍼플 시절 Highway Star를 만들 때, 클래식 음악에서 비롯되는 폭발적인 선율을 모태로 해서 기타 반주를 통해 일주일 이상을 툭툭 건드려보면서 만든 것이 바로 그 Highway Star의 중요 기타 리프이고, 이밖에도 리치 블랙모어는 웅장한 헤비메탈 노래를 만들 때 클래식 메탈에서의 스트링 사운드나 아니면 웅장한 면모 등을 차용하여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그렇게 리치 블랙모어는 클래식 음악에도 꽤나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는데, Difficult To Cure는 바로 그런 리치 블랙모어의 클래식 뮤직 조예가 빚어낸 그의 마지막 창작물이자,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출해낸 역작 중의 역작이다.

리치 블랙모어는 이 노래에서 모든 록 세션의 마에스트로이다. 그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서부터 인트로를 끊으며, 그가 간드러지는 피킹을 때리며 미리 예열을 해놓아야 그 후의 연주자들이 뒤를 이어서 리치 블랙모어를 따라오게 된다. 그러면서 시작되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 는, 일렉트릭 기타로 구현되는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짜릿하고 재미난 작업인지 우리들에게 다 까발려놓고 보여주고 있다. 흔히 우리가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를 통해서 웅장하게 쓸어 담았다가 쓸어 내리는 클래식 뮤직을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리치 블랙모어가 일렉트릭 기타로 표출해내는 <환희의 송가> 는 참으로 이색적으로 들리기 그지없다. 리치 블랙모어는 여기에다가, 원곡의 짜릿함, 혹은 일종의 신성함에 변질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피킹한다. 어떻게 보면 Difficult To Cure는 스웨덴 천재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이 그렇게 구현하고자 하였던 클래식 메탈의 전형적인 포맷이 아닌가 싶다.

리치 블랙모어는 마에스트로가 되어서 잠시 세션의 휴식기를 일렉트릭 기타의 충돌 소리로 하여금 알려주고, 그 휴식기 동안 레인보우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 (Don Airey) 가 환상적으로 훑어내는 키보드 연주로 연주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도록 이음새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다시 드러머 밥 론디넬리의 리드미컬한 드러밍이 추가가 되면서 클래식 음악을 록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레인보우 세션은 생기를 되찾으며 <환희의 송가> 를 리바이벌 한다. 마지막으로 향해가는 가운데 리치 블랙모어가 전율을 느끼며 최후의 비브라토를 비비면, “탁탁!” 하는 스타카토와 함께 Difficult To Cure가 구현하고자 하였던 <환희의 송가> 는 막을 내리게 되고, 리치 블랙모어가 사악한 웃음으로 “흐하하하” 를 연발하며 마치 내가 이런 위대한 클래식 뮤직을 록으로 완벽하게 구사하였다고 자축하는 듯 하는 거만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것이 독단적인 우리들의 리더, 리치 블랙모어가 Difficult To Cure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던 ‘정상의 챔피언의 여유로운 웃음소리’ 였다.

                                           - 출처 : http://blog.naver.com/lzma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