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Deep Purple

       [Machine head] (72)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이언 길런, 이언 페이스, 로버 글로버로 구성된 딥 퍼플 최고의 라인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2기의 대표작으로 통산 7번째 앨범. 재론의 여지가 없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교각으로 자리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들 최고의 히트곡(전미 싱글 차트 4위)으로 기록된 〈Smoke On The Water〉는 록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명기타 리프를 낳았고 〈Highway Star〉역시 기타 속주의 초기 교과서로 남아있는 하드 록의 명곡이다. 이외에도 〈Space Trucking〉,〈Lazy〉등, 이들은 5분 내외의 단시간에 교향악적인 코드 변환과 관현악과 같은 다이내믹한 사운드로 '드라마틱하면서도 짧은 하드 록'을 창조했다. 하드 록의 명반이면서 동시에 록 역사에 '기타명반'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의 에너지와 연주기량은 동시대 록계를 양분했던 레드 제플린의 그것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72년 1월 발매와 동시에 영국 앨범 차트를 석권했고, 미국에서도 빌보드 앨범 차트 7위에 오르는 상업적 성공마저 거머 쥐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앨범의 주도권은 존 로드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로 완전히 이양된다.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클래시컬 악곡들이 주를 이뤘던 초기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하드 록의 기념비적인 역작들,「Burn」(74),「Made In Japan」(76)의 출현은 예고된 것이었다.(박신천)


27. AC/AC

       [Back in black] (80)

그냥 재미 삼아서 록의 역사에 스탬프처럼 남아 있는 기타 리프를 세 개만 뽑아보자. 먼저 기억나는 것은 롤링 스톤즈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다. 그 다음은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조금 더 발전된 느낌이다. 여기까지는 영국인데, 세 번째는 어찌된 일인지 호주 출신 AC/CD의 〈Back In Black〉이 떠오른다.
  인기 면에서나, 밴드가 갖고 있는 무게로 보나 반바지 차림의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이 록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앞의 두 선배에 비해서 턱없이 가벼운 것이 사실인데, 이 앨범 타이틀곡의 리프는 너무도 인상적이다. 잘 기억이 안나시는 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Rock & Roll Dance〉라는 노래의 인트로를 떠올려 보시라. 그렇다...바로 그 리프가 그 리프이다.
  기타라는 악기는 록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새로운 유형의 록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기타 리프가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AC/CD가 '80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팬들의 뇌리에 확실히 남을 만한 리프 하나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앨범이다.
  본 스코트의 죽음 이후 새 보컬리스트인 브라이언 존슨과 만든 첫 작품인데, 이 앨범의 성공으로 인하여 그들은 비로소 장수 그룹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You Shook Me All Night Long〉, 〈Hell's Bells〉등 대중적인 곡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부담없이 신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다.(김우석)


28. Ramones

       [Ramones] (76)

얼핏 봐도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담벼락 앞에 삐딱하게 서 있는, 헐렁한 차림의 꽤나 반항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는 네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의 앨범 커버만으로도 여기에 어떤 음악이 담겨 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라는 공동체를 강조한 듯 마치 형제처럼 라몬(Ramone)이라는 가명을 이름에 사용한 이들 네 명이 이루는 사운드는 록 음악사에 기록된 어떤 음악보다도 단순하고 또 직선적이다. 아이들의 시처럼 직설적이고 간결한 가사, 불명확하게 대충 훑어 내리는 듯한 발음, 게다가 모든 곡이 2분 안팎의 짧은 수록 시간을 가진다.
  록이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제 완전한 성숙의 단계로 들어선 무렵 이런 '얼토당토 않은' 파격적인 내용물을 담은 데뷔작을 발표하여 음악계를 놀라게 한 이들은 가장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펑크를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들이다. 물론 이전의 이기 팝이나 이후의 섹스 피스톨스, 클래시 등에 의한 펑크 록의 걸작으로 인정되는 앨범들이 록의 역사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할 수 있지만, 본작이 말 그대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90년대 이후 다시 록의 거대한 흐름으로서 등장하게 된 모던 펑크 밴드들의 기본적인 사운드 구조는 본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유달리 눈에 띄는 곡 하나 없이, 단순한 코드 반복으로 이루어진 열네 곡의 단편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냥 즐거운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다.(정원석)


29. Roxy music

       [Siren](75)

'아트 록과 글램 록의 사생아'라는 또 하나의 세평을 만들어낸 이 밴드가 와해되기 직전(물론 뒤에 재결합했지만) 발표한 이 앨범은 그들 특유의 복잡 미묘한 분위기를 대폭 간소화했다. 브라이언 페리(Brian ferry)는 이전의 그 미래주의적이고 데카당스한 지향을 거두고 그 대신 상큼하고 유쾌한 크루닝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당시의 빅 히트작인 디스코풍의 〈Love Is Drug〉,이완된 컨트리 풍의 〈End Of The Line〉만 들어도 충분하다.
  그 점에서 이 앨범은 당시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과 더불어 지극히 '1970년대적'이다. 때는 '60년대의 낭만적인 잔치가 끝나고 잔칫상에는 날이 갈수록 파리만 들끓고 있을 때다.
  물론 아트 록과 헤비 메탈로 가득찬 잔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록시 뮤직은 이 복잡 미묘한 시기를 한편으로 경배하고 한편으로 비웃었고, 이제 드디어 맥이 빠졌다. 기타, 드럼, 베이스 뿐만 아니라 신서사이저, 바이올린, 색소폰, 오보에 등이 줄지어 등장하는 이들의 마지막 '지성적 키치'가 그 맥빠짐의 증거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70년대 록의 고전'으로 꼽는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된다.(신현준)


30. Fleetwood Mac

       [Rumours](77)

오리지널 플리트우드 맥은 '60년대 후반 브리티시 블루스 리바이벌이 낳은 최고의 블루스 록 밴드였다. 존 메이올과 블루스브레이커스를 모체로 삼아 탄생한 플리트우드 맥 초기의 음악적인 주도권은 기타리스트 피터 그린이 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사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1969년 피터 그린이 그룹을 탈퇴하기 전까지의 앨범에 더 애착이 간다.)
  도표를 그려가며 따져보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가는 복잡한 멤버 교체를 반복하면서, 셀프 타이틀 앨범 「Fleetwood Mac」에 이르러 그룹의 상업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문제는 다음 앨범이었다. 다음 앨범이 성공하면 이번의 히트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뿐만 아니라 수퍼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실패할 경우 다시 멤버 교체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발표된 본 앨범 「Rumours」는,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큰 성공을 가져왔다.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싱글 커트된 〈Go Your Own Way〉,〈Don't Stop〉등 3개의 싱글이 톱 10에 랭크되는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앨범에는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그룹만이 만들 수 있었던 노래가 대히트를 했는데, 떠나가는 밴드 멤버를 아쉬워하는 내용의 곡이었다.
  "또 떠나가는 건가요? 자유를 원한다구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뭐예요? 당신의 짐만 되나요. 잘 들어보세요 당신의 사운드는 외로워요, 밴드의 멤버 모두들 연주하고 있을 때의 당신을 가장 좋아해요..."-〈Dreams〉의 가사이다.(신용현)


31. Led Zeppelin

       [Led Zeppelin] (69)

레드 제플린의 위대한 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하나를 들자면 첫 앨범부터 이렇게 훌륭하고 이렇게 완벽해도 되냐는 거다. 자기 손으로 멤버들을 끌어모아 이 앨범을 자기 돈을 들여 직접 프로듀스한 지미 페이지에게 큰 절을 하번 올림직하다.
  여기에 담긴 제플린의 음악은 100% 새로운 건 아니다. 수록곡의 절반은 블루스와 포크의 리바이벌이며 강한 드라이브가 걸린 기타 사운드에 관해서라면 이미 핸드릭스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후인데다, 샤우트 창법은 당시에 유행이었고 화려한 드럼 연주는 후의 키스 문이 보여줄 거 다 보여주고 난 다음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들 네 명이 함께 내는 사운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다는 것이다. 혼연일치란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굴 보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제플린을 봤다면 역시 같은 말을 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첫 곡 〈Good Times Bad Times〉나 〈Communication Breakdown〉, 처절한 마이너 곡 〈 Babe, I'm Gonna Leave You〉도 좋지만 진정한 앨범의 백미이자 앞으로 제플린이 '크게 될 분들'임을 알려주는 건 바로 〈Dazed And Confused〉일 것이다. 최고의 감독(지미 페이지)에 당대 최강의 선수들. 결국 그들은 10년간 리그를 평정했다.(윤병주)


32. Boston

       [Boston] (76)

미국 메사추세츠 공대(MIT) 출신의 공학도 탐 슐츠를 주축으로 브래드 델프, 배리 구드로, 프랜 시핸, 시브 해시언으로 구성된 5인조 밴드 보스톤의 데뷔앨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싱글차트 5위로 뛰어오른 첫 싱글 커트곡 〈More Than A Feeling〉을 시작으로 〈Long Time〉, 〈Peace Of Mind〉등 후속 싱글들이 줄줄이 히트를 치며 9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의 가장 매력적인 구매 요인은 록 음악이면서도, 완벽하리 만치 탄탄한 곡 구조와 사운드 그리고 그 섬세한 멜로디 라인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기획은 사전에 철저히 조율되고 계산된 프레이즈에 한음 한음 쌓아올려간 탐 슐츠의 공학도로서의 꼼꼼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데뷔 앨범의 그 더없이 아름다운 코러스 하모니와 깔끔한 트윈 기타의 앙상블은 "지나치게 계산되었다."는 비판의 소지를 안고 있다. 실상 록의 커다란 미덕인 '살아 숨쉬는 즉흥 연주가 실종'되었던 때문이다.
  이 음반이 화제가 됐던 또 하나의 이유는 기타 톤 때문이었는데, 건조하면서도 묘하게 기름진 그 디스토션이 걸린 매력적인 음색은 그 때가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색이었다. 물론 그 픽업은 공학도였던 탐 슐츠가 제작하여 기타에 장착한 자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기타 음색은 보스톤과 탐 슐츠의 트레이드 마크로 뮤지션과 일선 기타 제작사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탐 슐츠는 그 픽업 제작 기술의 비밀을 공개하는 대신, 직접 기타 픽업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의 이런 학구적인 자세는 그와 보스톤의 음악에도 짙게 투영되어 있으며, 그는 '록 역사를 통틀어 가장 계산적이고 빈틈없는 프레이즈를 들려준 스튜디오 뮤지션 중의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박신천)


33. The Stone Roses

       [The Stone Roses] (89)

영국 북부의 억양과 발음은 언제나 낯설다. 아마도 가장 이질적인 영어 발음중 하나일 게 틀림 없다. 오아시스 두 형제가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코카서스 지방 설인들의 대화처럼 여겨질 때가 대부분이다. 스톤 로지즈의 음악은 이토록 영국 북부처럼 지독하고 낯설게 다가섰다.
  '89년 오랜 무명 시절의 마감을 의미하는 스톤 로지즈의 데뷔 앨범은 한창 확산 붐을 이루던 맨체스터 사운드의 특징을 누구보다도 잘 정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이키델릭에서 기초한 맨체스터 전통의 흡입력과 충실한 그루브감을 앞세웠던 맨체스터 사운드는 당시 큰 주류로 각광 받던 런던의 펑큰롤에 비견할 인기 장르로 수 년간 군림했다.
  맨체스터 사운드는 비교적 뿌리가 깊은 편이다. 런던과 리버풀 등에 비해 주목받게 된 시기가 늦은(80년대 전후)감은 있지만 수퍼 밴드들의 발굴을 통해 나름의 연대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조이 디비전, 스미스, 뉴 오더.
  맨체스터 사운드는 펑크, 뉴 웨이브, 모던 록을 이어주는 프론트 라인이었지만 언제나 그 성향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오버 그라운드화되지 못했다. 현재영국에서 오버 그라운드와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지는 인디 씬. 맨체스터 사운드가 인디의 모토가 되었다면 스톤 로지즈는 인디의 의미를 크게 부각시킨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매스컴의 인디 앨범 걸작 선정엔 스톤 로지즈의 본작이 여지 없이 정상에 올라있고, '80년대의 가장 큰 뉴스로 스미스의 해산과 스톤 로지즈의 데뷔를 꼽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나른한 몽상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으로 의미가 있다.
  해피 먼데이스가 '매드체스터'란 오명에 약물과 오욕의 역사를 가져온 뉴스 메이커였다면 스톤 로지즈는 사운드의 혁신을 가져온 파이오니아였다. 이제는 영국 수퍼 밴드의 계보를 확산(밴드 해체후 멤버들은 시호시스 등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다)하는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 스톤 로지즈. 〈I Wanna Be Adored〉의 뮤직 비디오에 담겨 있던 어설픈 춤 사위는 '80년말 변화 없는 팝 음악계를 조롱한, 혹은 '90년대 모돈 록을 예언한 징표였던 것이다.(이종현)


34. Van Halen

       [Van Halen] (78)

밴드로서의 밴 헤일런의 '업적'은 로큰롤에 기반한 어메리칸 하드 록 시대의 본격 개막에 남긴 혁혁한 전과와(데이비드 리 로스라는 상징적 카리스마로 대표되는) '유희'로서의 록에 대한 원초적 요구에의 군더더기 없는 접근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밴 헤일런은 창조적 리더이자 혁신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보유하고 있었다.
  피킹을 하지 않고서도 기타를 연주할 수 있다는 혁명적 발상을 구체화시킨 라이트 핸드 탭핑의 충격적 '분출'. 〈Eruption〉이 록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스트루멘틀의 하나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따뜻하고 넉넉한 느낌의 브라운 톤(Brown Tone)을 만들어낸 사운드 메이킹 아이디어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차원의 코드 보이싱 패턴 역사도, 록 기타가 에드워도 밴 헤일런에 빚지고 있는 값진 유산이다.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연주는 '계단을 소란스럽게 굴러 내려오다 현관에 이르러 똑바로 착지하는' 것과 같다고 한 어느 평론가의 얘기는, 그의(나이답지 않게) 천진하고 장난스러운 시도가 록의 역사에 혁명을 가져 온 결정적 모티브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그러나 정확하게)설명하는 명징한 사례이다.(박은석)


35. Ozzy Osbourne

       [Blizzard of Ozz] (81)

Never Say Die」(78)에서의 실망스러운 사운드를 뒤로 한 채 블랙 사바스를 떠난 오지는 새 날개를 달았다. 토니 아이오미나 기저 버틀러의 음습하고 육중한 리프가 아니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오지 오스본은, 밴드가 새로운 프론트맨 로니 제임스 디오를 맞이하여 성공적인 재기를 이룬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자신의 밴드를 거느리고 발표한 본작을 통해 그 자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제 마치 전설처럼 되어 버린 랜디 로즈의 이름 하나만으로 본작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클래식에 바탕을 둔 그의 프레이즈는 오지의 음울한 목소리에(이상하게도)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며 곡을 이끌어 나간다. 특히 〈Mr. Crowley〉와 〈Revelation(Mother Earth)〉에서의 클래시컬한 리프와 서사적인 아름다운 멜로디의 조화-〈Revelation〉의 완벽한 사운드 미학적 구조은 흡사 '70년대 아트 록 그룹들이 행했던 곡 전개를 연상케 한다-는 이후의 「Diary Of A Madman」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된다.
  유라이어 힙을 탈퇴한 리 커슬레이크와 레인 보우 출신의 밥 데이즐리의 탄탄한 리듬 파트를 바탕으로 콜로시엄Ⅱ, 레인보우 등에서 활동했던 돈 에이리의 건반이 빛을 발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웅장하게 만들고 있다.(김경진)


36. Bruce springsteen

       [The River] (80)

아직 CD라는 오디오 포맷이 일반화되기 전인 1980년데 LP 2장 짜리로 발표된 「The River」는 미국의 중산계층의 삶, 그중에서도 외롭고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애환과 약간 삐뚤어진 10대의 방황과 사랑을 가사에 담아 스트레이트한 록 비트에 실어 들려주는 시원한 로큰롤 앨범이다. 내용적으로는 '75년도에 발표한 「Born To Run」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느낌을 주지만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에 있어 한 단계 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CD시대인 지금과 달리 LP시절에는 앨범 한 장에서도, 사이드 A와 B로 나누어져 있어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앨범 구성에 지금보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물며 2장 짜리에서는 음악이 4번 단절됨으로 음반 한 면마다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 곡 순서를 정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The River」는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첫 곡 시작부터 미디움 템포의 〈The Ties That Bind〉로 시작해 라이브 녹음의 곡인 〈Sherry Darling〉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질주하는 듯한 로큰롤을 이어나가다가 발라드 곡으로 끝을 맺는 패턴을 몇 번 반복하는데, 2장 짜리라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아직 '메이저'해지기 전의, 그리고 그의 E 스트리트 밴드가 가장 기름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을 때의 작품이다.(신용현)


37. Bob Dylan

       [Blood on the Tracks] (75)

'트랙 위의 피'란 제목처럼 당시 딜런은 피를 흘리는 고통에 처해 있었다. 월플라워스의 제이콥을 낳은 아내 사라 노운즈와 파경을 맞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60년대의 딜런의 명작 「Bonde On Blonde」가 사라와의 '웨딩앨범'이라면 '75년의 이 음반은 '이혼음반'이다. 그래서일까? 〈Tangled Up In Blue〉나 7분 40초짜리의 대곡 〈Idiot Wind〉등 처절하게 목청을 높이는 곡들이 많다. 아니면 〈Simple Twist Of Fate〉처럼 구슬픈 노래들이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60년대의 어쿠스틱 포크 풍으로 되돌아갔다.
  직전의 경향이었던 컨트리 록이나 회고조의 노래에서도 벗어났다. 당연히 '70년대 딜런의 앨범 가운데 '가장 포크적'이다. 딜런 스스로도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일종의 '귀거래사'다. '롤링 스톤'지는 '60년대의 고전 「Blonde On Blonde」에서 보여준 '시적(詩的) 감화력'을 회복한 작품으로 평하고 있다.
  이 앨범으로 딜런과 함께 격동의 시대를 치달아간 베이비붐 세대의 지성들이 다시 딜런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때마침 그들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허탈감에 젖어 있었던 상황. 이 앨범이 그들을 달래주었다. 환희가 걸작을 낳기도 하지만 역시 명작은 슬픔의 소산인 듯. 비평가 폴 넬슨의 리뷰가 인상적이다. "결혼이 깨져가고 공연과 앨범은 언론의 관심 밖이었다. 딜런은 다시 쫓기는 심정에 불안정했다. 그것은 아마도 희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청취자의 심저를 흔드는 앨범. 그가 '20세기의 지성'임을 웅변하는 문제작이다.(임진모)


38. Led Zeppelin

       [Physical Grafitti] (75)

레드 제플린이 헤비 메탈/하드 록 이라는 장르로 인해 단순무식 단세포적 리프 메탈 밴드들과 같이 묶이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그들의 음악을 자세히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대가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인 여러 장르의 수용과 융화가 잘 어우러져 있다. 1, 2집에서의 헤비 블루스 록, 3집에서의 브리티쉬 포크 탐구, 4집에서의 정통 로큰롤 구사, 5집에서의 메탈/포크 퓨젼과 레게에의 접근 등 실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행해졌었다.
  「Physical Graffiti」는 '75년 발표된 통산 6집으로서 정규 앨범중 유일한 더블 LP발매의 대작이다. 제플린의 사운드가 실험성과 웅대함이 실린 헤비 사운드로 정의된다면 이 앨범을 가장 레드 제플린적인 앨범이다. 〈Stairway To Heaven〉이나 〈Rock & Roll〉과 같이 라디오 전파를 잘 타는 인기곡은 없지만 앨범 전체 구성력이 뛰어나고 초기의 헤비 블루스로의 회귀가 느껴지는 작품으로 많은 제플린 팬으로부터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여기에 수록된, 제플린의 실험 정신을 대표하는 곡 〈Kashmir〉는 중동 풍의 선율을 시도하여 그들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또한 11분의 대곡 〈In My Time Of Dying〉, 〈Trampled Under Foot〉등이 대표곡으로 꼽힌다.
  제플린의 정신은 헤비 메탈의 최전성기인 '80년대 밴드들보다 오리려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밴드들에게서 더욱 진한 감이 있다. 사운드 가든은 대표적 예로서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제플린적 체취가 역력하다. 최근 등장한 신인 중에서는 토닉(Tonic)이 대표적으로 역시 제플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것은 2장의 트리뷰트 앨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80년대 메탈맨들이 참가한 최근의 「Stairway To Heaven」보다 얼터/모던 록계가 대거 참여한 '96년의 「Encomium」이 훨씬 음악적으로 뛰어난 감이 있다. 아마도 제플린의 정신은 단순한 스타일의 답습보다는 오리지넬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Physical Graffitti」는 이런 점에서 가장 '90년대적인 레드 제플린 앨범이다.(정원석)


39. The Rolling Stones

       [Sticky Fingers] (71)

지구상에서 록을 듣는 수많은 사람들을 딱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한 쪽은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는 사람들, 나머지 안 쪽은 이해 못하는 사람들, 이 두 종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록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롤링 스톤즈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 우리 나라의 록팬들이라면 〈Angie〉나 〈As Tears Go By〉 정도는 금방 그들의 대표곡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롤링 스톤스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게 되려면 블루스, R&B, 컨추리 음악 등의 폭넓은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록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서 얻어진 록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한 방향으로 모아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Stoclu Fomgers」라는 앨범은 '60년대를 지나 혼돈의  '70년대, 비틀즈 분열의 틈을 타서 록계를 제패하려는 야망에 가득찬 앨범이라는 발매 당시의 평가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앨범이고, 불후의 명곡 〈Wild Horses〉을 세상에 내보낸 작품이라서 롤링 스톤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앨범이다.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롤링 스톤즈가 록의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스톤즈 속에는 록의 모든 것이다 있다!(신용현)


40. Neil Young

       [Rust Never Sleeps] (79)

'A면은 어쿠스틱, B면은 앨렉트릭'이라는 2원 구조를 갖고 있는 그런지의 대부 닐 영의 LP시절 명반이다. 음반의 시작 〈My My, Hey Hey(Out Of The Blue)〉와 끝〈Hey Hey My My(Into The Black)〉이 절묘한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는 이 음반은 섹스 피스톨스의 해산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한 펑크 시대에 대한 고참으로서의 경의를 담고 있는 앨범이다. 환언하면 펑크가 음악계에 몰고 온 그 거센 소용돌이에 대한 고참의 해석판이요, 'Punk Will Never Die'의 정신을 일깨우는 경의의 헌사품인 셈이다. 그리고 그의 미래에 대한 이 혜안은 작금에 이르러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비록 그 시대 정신은 벗어버리고, 그 외피만을 뒤집어 썼으나 네오 펑크가 일대 돌풍을 몰고 왔고, 그 보다 더 큰 물결, 얼터너티브가 90년대를 뒤흔들었다.
  얼터너티브를 견인한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사망했을 때, 그가 남긴 지상 최후의 말은 그의 아내 코트니 러브에 대한 사랑의 맹세도, 잘먹고 잘살아라의 'Fuck You'도 아니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단지 이 앨범의 싱글 〈My My Hey Hey〉의 가사 중 한 구절 - "서서히 시드느니 차라리 불타 없어지는 게 낫다." - 만이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닐 영의 아픔은 아는지 모르는지, 뒤늦게 이 앨범이 품귀 현상을 맞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의 행로와 음악여정은 철저한 자기중심이었다. 그는 대중과 타협하지도 않았으며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음악으로 대중을 유혹한 일은 더더욱 없으며, 음반사에 값싼 미소를 던지는 추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앨범들은 언제고 일정한 상업적 성과를 거둔다. 늘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그의 고뇌를 사랑하고 잊지 않는 열렬 팬들의 수가 결코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비록 그의 변신의 과정을 놓고 평자들의 분분한 평이 양극단을 달리긴 하지만, 그가 음악계에 짙게 드리운, 그리고 아직도 그 끝을 놓지 않고 있는 치열한 시대정신의 노력은 결코 평하될 수 없다. 그는 록계의 'Die Hard'다. 이 앨범을 그것을 백마디의 웅변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박신천)


41. Black Sabbath

       [Paranoid] (71)

'1970년에 화제의 데뷔를 했던 블랙 새버스의 두 번째 앨범이자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8비트의 힘찬 배킹으로 시작하는 타이틀곡은 지금 들어봐도 역시 충격적이다. 밴드의 최소 단위인 기타, 베이스, 드럼만 가지고 이렇게 공격적인 사운드를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블랙 새버스가 온전한 헤비 메탈 그룹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을 기계적으로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하드 록 중에서 훨씬 공격적이면서 빠른 템포로 정형화된 것을 헤비 메탈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영국의 다른 그룹들이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록 음악을 연주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거의 최초의 브리티시 헤비 메탈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지 오스본의 음산한 목소리와 기괴한 쇼맨쉽, 그리고 종말, 죽음, 파괴 등을 주제로 다룬 가사로 인해서 보수적인 평론가들과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플래티넘을 기록했던 것을 보면 당시 이들의 음악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던지 알 수 있다. 당연한 결과로 이들의 싱글 히트곡은 이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Paranoid〉 하나 밖에 없지만, 〈Iron Man〉 같은 대곡은 기념비적인 헤비 메탈 넘버이다. 정상적인 템포로 노래가 이어지다가 토니 아이오미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면서 더블타임으로 빨라지는 구성은 이후에 등장하는 헤비 메탈 곡들의 전형처럼 되어버렸다. 〈War Pig〉 역시 마찬가지.(김우석)


42. Green day

       [Dookie] (94)

'펑크로부터 플래티넘으로'였던가...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이렇게 평했던 듯하다. '파티 펑크'(Party Punk)였던가... A.P지는 이들을 이렇게 비아냥거렸던 듯하다. 어떤 통신 문구에서는 '정박아 펑크'라는 말도 나왔다. 어쨌든 1,000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 펑크 레코드'라는 영예는 버클리 출신의 펑크 트리오 그린 데이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시대를 빛낸 명반' 축에는 못 낄 듯하다. '펑크 록'이라는 비교적 영예스러운 칭호도 못받고 겨우 '펑크 팝'이라고 불렸으니까. 게다가 이 앨범은 그런지 폭발이 '스멀스멀 사라지기 보다는 불타 없어지는 것을 선택한' 뒤(실제로는 그 반대 아니었을까) 무주공산 같이 되어버린 자리에 무혈입성한 상황의 산물이었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펑크라는 무정형의 운동을 팝 음악의 한 장르로 정착시켰다. "내 푸념소리를 들어줄 시간이 있겠어"라는 빌리 조 암스트롱(Billi Joe Amstrong)의 하소연이 던진 「Basket Case」에 열광한 건 개러지 펑크족들만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었다.
  그런데 '시대를 빛낸 명반'이 아닐지라도 그 시대가 어수선하고 하수상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빛이 나지는' 못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앨범이야말로 비판가들에게 '그럼 니가 한 번 해봐'를 외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우에 속한다. '90년대 중반, 그리고 그 시대는 미국이 요즘처럼 다시 '쿨'해지기 전의 과도기였고 이들은 과도기의 적나라한 초상이었다. 그 점에서 이들은 망나니이기는 해도 얼간이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레코드는 '60년대 이후 수많은 개러지 펑크 밴드들의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신현준)


43. Television

       [Marquee Moon] (77)

뉴욕의 펑크 록계에는 라몬스와 같은 전형적인 3 코드 펑크와 함께 아트 스쿨(Art-School)이라 불리는 좀 더 실험적인 스타일의 밴드들이 공존했다. 이중 대표적인 그룹으로 토킹 헤즈와 텔레비전을 들 수 있다. 텔레비전은 전설적 펑크 록 클럽 CBGB가 배출한 최초의 스타 그룹으로서 록 역사상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팀으로, 단명했던 것이 무척 아쉬운 밴드다. 이들은 펑크 록이 갖고 있는 특유의 스피드감이나 파괴 충동을 표출하기 보다는 그것보다 한 차원 놓은 수준의 예술적 감흥을 던져준다. 지적인(Intelligent) 테러리스트라고나 할까?
  이들 음악의 핵심은 톰 벌레인과 리처드 로이드, 2명의 기타리스트에 의한 도취적인 듀얼 기타 사운드에 있다. 마치 서서히 약물에 의해 취해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타 사운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그 위를 흐르는 초현실적 가사의 보컬은 그만큼 히스테리컬하다. 요약하자면 텔레비전의 음악은 에로틱하고 퇴폐적이며 동시에 폭력적이다. 이들은 '60년대의 사이키델릭·드럭 컬쳐의 계승자이며 음악적으로 도어스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직접적 영향하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그들의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된 작품이 바로 이 앨범이다.
  「Marquee Moon」은 결코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후의 수많은 모던 록 밴드들(특히 기타 위주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뉴욕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면 벨벳 언더그라운드-텔레비전-소닉 유스의 흐름을 떠올리게 된다. 텔레비전은 이후 한 장의 앨범을 더 발표하고 해산한다. 그리고     각자의 길을 걷다가 '90년대 초 잠깐 재결성 됐으나 역시 앨범 한 장으로 끝나게 된다. 톰 벌레인과 리처드 로이드(매튜 스위트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했었다)는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텔레비전 시대만큼의 작품을 발표하기는 힘들 것 같다.(정원석)


44. Metallica

       [Metallica] (91)

일명 블랙 앨범으로 불리는 이 동명 타이틀 이전의 메탈리카 앨범은 전부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를 지닌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앨범들은 고수 메탈 팬 이외의 일반 대중이 즐기기에는 너무 헤비하고 격하다. 이 앨범에 와서야 드디어 메탈리카는 본격적으로 라디오 전파를 타기 시작했고 제도권의 오버그라운드 매체를 장식하게 된다. 메탈리카의 이런 변화에 대해 골수 헤드 뱅어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예상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보다 많은 멜로디가 부여되고 발라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앨범은 역시 스래쉬 메탈임에 틀림없다.
  '90년대에 들어 많은 헤비 메탈 밴드들이 몰락해버린 상황에서 메탈리카 마저 구태 의연하게 '80년대식 죽여라(?) 사운드를 구사했다면 메탈계는 아예 씨가 말라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답습을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창조적 뮤지션 집단인 이들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 쏟아진 비난의 대부분은 스래쉬 메탈 순수주의자들의 폐쇄성을 드러낸 이기심의 발로로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 앨범의 사운드 프로덕션은 헤비 메탈이 갖고 있는 미학을 최대한도로 극대화시켰다. 드럼 소리가 이처럼 웅장하고 강력한 음반은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각각의 곡들도 드라마틱함의 진수를 들려준다. 앨범 전체를 듣고 나면 마치 격한 운동 후의 기분 놓은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8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인 그들의 위치는 이 작품으로 보다 견고해졌다. 이 앨범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천만장 가까이 판매되었다. 이런 종류의 헤비 사운드로서 가능한 최고의 판매고가 아닌가 싶다. 메탈리카는 영리하다.(정원석)


45. Dire straits

       [Dire straits] (78)

때는 디스코의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1978년이었다. '7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록 넘버들이 펑크와 뉴 웨이브에게 조차 밀리며 설 자리를 잃어갈 무렵, 마크 노플러는 일렉트릭 기타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낮은 음의 스토리 송을 읊어댔다. 그의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은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올라 갔다. 이제 F.M. 록을 지킬 사람들은 롤링 스톤즈나 로드 스튜어트가 아니었다. 모든 노장 가수들도 디스코 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상황에서 다이어 스트레이츠 같은 그룹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들은 블루스와 컨트리의 영향을 받은 은근한 맛의 음악을 연주했고, 노랫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 밥 딜런풍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온통 춤곡 일색인 차트에 깔끔한 연주와 희망적인 노랫말이 등장한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결국 이들의 데뷔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랐다. 단 하나의 싱글 히트곡으로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이 앨범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좋은 곡들을 많이 담고 있다. 우리 나라의 팬들은 〈Sultans Of Swing〉만을 기억하겠지만,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전형적인 앨범 아티스트이다. 이건 정말인데... 그들의 모든 앨범에는 버릴 곡이 단 한 곡도 없다.(김우석)


46. Jefferson Airplane

       [Surrealistic pillow] (67)

'67년 6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의 시작을 알리게 된 계기를 이룬 대규모 록 공연인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어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두 번째 앨범 「Surrealistic Pillow」가 록의 역사에서 가지는 의의는 일반적인 평가 이상이다.
  반전과 평화, 사랑과 자유가 최상의 가치일 수 있었던 시대, 젊음의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그 때에 개인 또는 집단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 방식으로서 록 음악이 지닌 가능성을 알아 본 선각자들은 하나의 커다란 음악적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데, 미국 샌프랜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선 인물들에 마티 볼린, 폴 캔트너, 그리고 그레이스 슬릭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포크 록 성향의 평범한 데뷔작 이후 그레이트 소사이어티(Great Society) 출신의 여성 보컬리스트 그레이스 슬릭의 가입이 제퍼슨 에어플레인에게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닥치게 될 싸이키델릭 시대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본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역시 몬트레이 페스티발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았던 샌 프랜시스코 사운드의 걸작 〈Somebody To Love〉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환각 상태에 관한 〈White Rabbit〉-영화 〈플래툰〉에서도 들을 수 있는-등 그레이스의 그레이트 소사이어티 시절의 두 곡이지만, 그 외에 마티 몰린의 나른한 보컬로 펼쳐지는 몽롱한 〈Comin' Back To Me〉와 포크적인 바탕 위에서 꿈결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짧은 기타 연주곡 〈Embryonic Journey〉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이다.(김경진)


47. Elvis presley

       [Golden records Vol. 1] (58)

'56년부터 '58년까지 엘비스가 광풍을 일으키던 시절의 주요 히트곡을 망라한 앨범. 그의 '로큰롤 황제'로의 등극을 만방에 고한 앨범인 동시에 '로큰롤의 위대한 승전보'이기도 하다. 엘비스의 로큰롤은 결코 안전 운행이 아닌, 엄청난 기존 제도권의 공세를 딛고 일어선 전리품이다. 또한 당시의 대중음악인 프랭크 시나트라의 스탠다드 팝과 샅바 싸움에서도 이겼다.
  스탠다스 팝과의 타이틀 매치를 승리로 이끈 첫 번째 요인은 격정적인 음악을 열망하는 젊은층의 욕구였다. 아버지와 함께 스탠다드를 들어야 했던 '몰개성'의 청춘들은 〈Heartbread Hotel〉, 〈Hound Dog〉,〈Jailhouse Rock〉으로 마침내 자신들만의 음악을 소유하게 되었다.
  두 번째 요인은 무엇인가? 전적으로 엘비스의 자질이었다. 스탠다드 진영에선 로큰롤 가수들이 노래를 못한다고 힐난했지만 전혀 그게 아니었다. 엘비스는 스탠다드의 '음정'보다 더 가치있는 '음색'을 타고났다.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탤런트 스카우트 담당자들은 고유의 음색을 지닌 가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Hound Dog>, <Don't Be Cruel>을 듣고 눈을 흘기던 기성 세대들은 <Love Me>, <Love Me Tender>,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에서 발휘된 음색에 감탄했다. 그리고 백인이 흑인의 감정을 소화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것이 록큰롤이었다. 시로 엘비스는 목소리로 흑인 블루스와 백인 컨트리의 융합인 로큰롤의 정체를 밝혔다. '50년대의 사운드 트랙. 이 앨범이 없으면 로큰롤의 진화 과정을 알도리가 없다.(임진모)


48. M. S. G.

       [The Michael Schenker Group]

마이클 셴커의 앨범이 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유력한 단서 중 하나이다.
  신의 경지로까지 추앙되고 있는 이웃 일본에서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마이클 셴커의 연주가 정중동의 미학에 길들여진 우리의 취향에 정확히 합치된다는 점에 있다. 특히, 경쾌한 리프 패턴과 서정적인 멜로디의 드라마틱한 배치에 있어서 마이클 셴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심미안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Into The Arena>와 <Lost Horizons>를 보라!) 크라이베이비를 사용한 독특한 사운드 메이킹과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리듬감 역시 마이클 셴커의 장점이다.
  사실, 이 앨범은 록 역사에 가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기에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겸손한 마이스터의 힘있는 작품'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의 매니어들에게는 여전히 존경받을 만한 작픔으로 유효하다.(박은석)


49. Talking heads

       [Remain in light] (80)

토킹 헤즈의 네 번째 앨범 「Remain In Light」의 위대함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리더 데이빗 번의 호기심과 창의력에 있다. 항상 지적인 밴드로 불리우는데 싫증난 번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앨범은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과 여러 부족들의 전설에 바탕을 둔 아프리카적 정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또 하나의 인물은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며 토킹 헤즈의 초창기부터 번과 호흡을 맞춰 온 브라이언 이노이다. 그는 작곡과 편곡, 기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 연주에서 특유의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Remain In Light」의 전체적 사운드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에 근거해 멜로디에 의한 코드 체인지에 의존치 않고 대담한 반복 리듬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된 사운드는 대단히 펑키(Funky)하고 댄스적이다.
  대부분의 실험적 음반이 상업적 성공과 연결되지 않는데 반해 이 앨범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 19위까지 진입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히트곡 <Once In A Lifetime>을 비롯, 수록곡 대부분의 가사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한 마디로 「Remain In Light」은 '제3세계 음악'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워준 기념비적 앨범이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나 스팅의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등이 모두 이 앨범에 큰빚을 지고 있다.(이무영)


50. Led Zeppelin

       [Led Zeppelin Ⅱ] (69)

'헤비 메탈의 형식미를 완성시켰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레드 제플린의 2번째 앨범. '예술지상주의'가 레드 제플린의 음악 행로를 초지일관 관통하고 있는 예술적 모토-동시에 록 음악이 중요한 문화적 실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이긴 했지만, 그 지칠 줄 모르는 탐미주의는 사실상, 이 음반으로부터 출발한다.
  블루스에 기반을 두었던 데뷔 앨범과는 달리,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레드 제플린의 하드 사운드, 헤비 블루스가 본격화 되었다. 특히 이 앨범이 구현하고 있는 각 포지션의 연주 기법과 구성, 그리고 그 기재들은 헤비 메탈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남게 된다. 때문에 '70년대의 하드 록 역사의 정중앙을 관통한 가장 중요한 앨범 가운데 한 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록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으로 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이 앨범은 그러나 펑크 진영으로부터 '부르조아, 엘리트 록'으로 비판을 받으며, 이른바 그 '처단대상'에 오르는 명암이 교차하기도 했다.
  로큰롤의 가장 전형적 리프와 구성미를 보여주고 있는 <Whole Lotta Love>와 어쿠스틱 분위기 물씬한 <The Lemon Song>, <Thank You>, 지미 페이지의 파워코드의 리프가 멋진 <Heartbreaker>, 존 보냄의 파워 드러밍이 일품인 <Moby Dick>은 이 앨범의 빛나는 트랙들이다. 로큰롤과 블루스, 어쿠스틱 사운드가 뒤섞인 하드 록의 역동적 감각이 가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견고함은 많은 부분, 천재적인 편곡자로서 밴드의 숨은 구심점 역할을 했던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의 몫이다.(박신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