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imjohnny.egloos.com/813608


1. Nirvana, [Nevermind]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리스트 집계 방식에서의 시행착오를 감안한다고 해도 이것은 다소간 의외의 결과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여기 100장의 앨범 리스트의 맨 윗자리에 올라 있는 이 앨범은 곧 우리 음악 듣기 관습의 영양 실조 상태에 대한 진단서이며, 단절된 역사 속의 생명 없는 화석으로만 남겨진 펑크의 기억에 보내는 청구서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자격 미달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그 영향력이 미미하나마 지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검증 절차 부재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논의를 통하여 납득할 만한 보상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섹스 피스톨스와 라몬스가 재조명받고, 헤비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가치에 대한 이론이 제기되는 상황이 모두 다 -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 '너바나 열풍'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지 열풍을 주도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얼터너티브의 가능성을 실현시킨 이 앨범은 '90년대의 개막과 함께 터져 나온 앤티 록 스타 시너지 효과의 중심축인 동시에, 그로부터 결정적인 지지를 받은 대세론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94년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너바나의 위상이 가공되고 과장된 신화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반영으로서의 록 본질을 담은 현실적 텍스트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은석)


2. Jimi hendrix Experence, [Are you Experienced?] (69)

  1967년에 나온 이 앨범은 아마 찬사 말고는 받아 본 적이 없을 듯 싶다. 록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느니, 일렉트릭 기타를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다느니, 그 당시 사람들이 <Purple Haze>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는 등..... 그렇다면 록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이상, 지금 1997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30년 전의 이 앨범을 들으면서 단지 '좋은 앨범' 이상의 의의를 찾는다는  게 가능할까? 특히, 아직까지 이 앨범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힘들 것이다.
  "그저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아는 정도..." 지금 당신은 <Purple Haze>의 인트로와 <Foxy Lady>의 솔로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는가? "뭐 잘치긴 하지만 '충격'이랄 거 까지야..." 그럴만도 하다.
  벌써 30년 전의 '새로운 사운드' 아닌가. 그럼 당신은 그 당시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67년 이전에 나온 음악들만 듣다가 이 앨범을 들어 보도록. 그 당시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의 약 100분의 1 정도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꼭 이렇게 무식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록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 '역사적 의의'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윤병주)


3. Velvet Underground, [Velvet underground & Nico] (67)

  1967년 많은 사람들은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urrealistic Pillow』등을 그해의 음반이라고 꼽을 것이다. 아니면 지미 헨드릭스나 도어스의 데뷔 앨범을 꼽던가... 그렇지만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히피들의 낭만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이들이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록 음악의 로제타 스톤이라면,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모든 얼터너티브한 것의 시초이다."라는 외국 평론가의 말을 직접 발견하려는 것은 헛수고다. 존 케일의 비올라 사운드가 드런 사운드의 시조라고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앤디 워홀이 프로듀스했다는 사실도 상술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 루 리드의 가사를 하나하나 음미하는 일도 소수의 전유물일 뿐이다.
  단지 <Femme Fatal>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European Son>의 강렬한 불협화음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표현양식들을 음미하자는 권장 사항이 있다. 이들은 분명 실험적이지만 형식적 제한을 쉽게 무시하는 어설픈 자들은 아니었다. 엄격한 제한 속에서 무한히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 앨범은 잘 보여준다. 그리고 <Heroine>에서 이들은 드디어 형식마저 무너뜨린다. 드럼 비트는 흐트러지고 템포는 수시로 변하고 여러 악기가 상이한 템포로 나온다. 마지막에 비올라의 피드백. "대중적이지 않지만 영향력 있는'이라는 수식어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듯하다. (신현준)


4. The Beatles, [The Beatles] (1968)

아티스트 설립 레이블 제 1호인 애플 레코드사의 제 1호 앨범. 표면적으로는 비틀즈의 새출발이지만 이미 멤버 넷이 갈기갈기 찢겨져 눈에 띄게 그룹의 응집력이 떨어진 '한지붕 네가족' 음반이다. 존과 폴이 만들어준 곡만 노래하던 링고 스타마저 자기 곡 <Don't Pass Me By>를 불렀으니 실로 '옴니버스 앨범'이라 해도 무방하다.
  폴이 <Ob-la-di Ob-la-da>를 녹음했을 때 나머지 존, 조지, 링고는 밴드 동료가 아니라 '외주 세션맨'이나 다름 없었다고 한다. 흰색 앨범 재킷과는 달리 그룹의 내부 기류는 검은 색이 감돌고 있던 셈이다. 이 앨범이 평자들간에 『Pevolver』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비해 점수가 박약한 이유도 이같은 '팀플레이 부재'에서 비롯한다.
  그런데도 수록각 각각의 창작성은 가히 비틀즈의 전 앨범을 통틀어 최고의 수준. 동시대 경쟁 그룹과 비교하더라도 무적이었다.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뺀다면 이후 폴이 이 앨범의 곡들보다 우수한 선율의 작품을 쓴 적이 없었다. 「Martha my dear」, 「Blackbird」, 「Rocky racccoon」, 「I will」, 「Mother nature's son」 등에서 과시한 폴의 선율 제조 능력은 천재란 찬사가 어색하지 않다. 그는 빠른 곡 「Back in the USSR」, 헤비 메탈 「Helter skelter」에서도 기량을 뽐냈다.
  존은 「Dear Prudence」, 「Happiness is a warm gun」, 「Julia」, 「I'm so tired」에서 솜씨를 과시. 그의 '삐딱끼'는 여전해 「Let it be」와 「Abbey Road」앨범에 비해 아직까지는 폴과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타팬들은 조지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에릭 클랩튼을 맛보기 위해서인지 이 곡을 선호했다. 싱글은 없었지만 영국팬들에겐 수록곡 거의 곡이 인기를 누렸다. 창작성과 고나련, 금세기 최고의 록 앨범. (임진모)


5. Led Zeppelin, [Led Zeppelin] (71)

   신비주의로 채색된 레드 제플린의 걸작 앨범. 밴드명은 물론 앨범 타이틀마저도 기재되지 않은 이 네 번째 작품은 하드록을 지향했던 수 많은 밴드들의 텍스트였다. 이 앨범으로 말미암아 기타리스트로서의 지미 페이지와 보컬리스트로서의 로버트 플랜트, 베이시스트 존 폴 존스, 그리고 드러머 존 보냄은 뮤지션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상형으로, 레드 제플린은 아마츄어 밴드들의 준거 집단으로 격상하게 된다. 그리고 <Black dog>은 단선을 기타 리프의 교과서로, <Rock and roll>은 로큰롤 리프의 전형으로, <Stairway to heaven>은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가 종횡으로 엮이며 기승전결의 견고한 축조미를 보여준 록의 클래식으로 남았다. 특히 도입부의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절정부에서 일렉기타의 속주 애드립으로 인계하는 '<Stairway to heaven>式 어레인지'와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꼭지점에서 폭발하고 다시 완만히 하강하는 '포물선 곡 전개방식'은 이후 수 많은 록 밴드가 답습하게 되는 록 발라드의 상투적 도식이 되었다.
  <The Battle of enermore>와 <Going to California>에서의 본격적인 어쿠스틱 기타의 도입 역시 팬들의 허를 찌르는 기획이었다. 등짐을 진 고단한 나그네가 지팡이로 땅을 딛고 있는 고답미 넘치는 재킷, 의미를 알 수 없는 4개의 심볼, 그리고 음반 표지에 기재된 <Stairway to heaven>의 가사와 타이틀의 보재는 이 앨범의 신비주의 색채를 더하는데 일조했다.
  만일 예술적인 양식미를 하드 록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상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서정과 록의 포효가 함께 휘감기고 있는 이 앨범은 그 정점에 자리할 만하다.(박신천)


6. The Doors, [The Doors] (67)

'There are things that are knowm and things that are unknown in between the doors.' 도어스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이 자주 암송하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도어스라는 그룹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1965년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짐 모리슨은 키보드 연주자였던 레이 만자렉과 만나 그룹을 결성하고 클럽이나 라이브 하우스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오던 중 차츰 그들의 혁신적인 음악 스타일과 짐 모리슨의 독특한 카리스마성이 구두로 전해지면서 클럽 주변에서는 떠오르는 새로운 밴드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클럽 밴드 1년 만에 메이저 레이블 데뷔라는 감격스런 영예를 쟁취한다.
  도어스의 데뷔 앨범에는 자만, 용기, 지적 모험적, 자극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있다. 그러므로 로큰롤 앨범으로는 최고 수준의 록 스피릿이 넘치는 명반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기억에서 멀어질 만하면 한 번식 도어스에게 유리한 바람 -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란 영화에 <The end>가 삽입되는가 하면, 독일 출신의 여성 듀오 바카라가 <Light my fire>를 불러 화제가 되었고, 지금의 록세대들이 도어스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도어스>였을 것이다 - 이 불었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브리티시 록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60년대 중반, 도어스는 미국 록의 자존심이었다.


7. Sex Pistols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77)

"재수없는 황실을 없애라! 종교도 싫다. 비틀즈도 싫고, 핑크 플로이드는 더 싫다. 우리도 싫다."
  요즘의 데스 메탈이나 네오 펑크, 하드 코어 테크노에 비교해도 전혀 난폭함에서 뒤지지 않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에 실린 섹스 피스톨스의 정신이다. 이 앨범이 무려 20년 전에 발매됐으니 앞서갔어도 한참 앞서간 것이다.
  히피의 정신이 무너져도 대중 음악계가 디스코와 캔디 팝의 안일함에 젖어 있을 때, 이 한 장의 명반이 던진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X같으니 다 때려 부수어야 한다"고 외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록 정신의 실천자들이었으며 아나키스트드링었다. 만약 이들이 90년대 밴드였다면 분명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대해 곱지 않은 X소리들을 늘어놨을 것이다.
  보컬리스트 쟈니 로튼을 비롯한 멤버 대부분이 저소득층 백수이며 음맹(Musical Illiterate)인 섹스 피스톨스는 영국이 실업난으로 허덕이던 70년대 중반 대중 음악계에 등장했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지배 계층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냈다.
  "하느님, 여왕을 구해 줘. 그녀는 인간이 아냐. 영국엔 미래가 없어." 섬뜩한 가사가 담긴 이 곡은 영국 황실에 대한 서민들의 지독한 반감을 드러낸 <God Save The Queen>이다. 이외에도 반기독교적이며 반체제적 독설을 내뿜은 <Anarchy in the UK>와 'Fuck'이 난무하는 <Bodies>, <Pretty vacant>, <Holiday in the sun>, <No feelings> 등이 위대하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한 생리적 반감을 미친 듯이 표출했던 이들이 오래 활동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면 말이 되겠는가? 섹스 피스톨스는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종말을 맺고 말았다. (이무영)


8. Derek & The Dominos

     [Layla &Other Assorted        Love Songs] (77)

크림과 블라인드 페이스라는 수퍼 밴드들의 기타리스트로서의 활동을 마감한 에릭 클랩튼은 부부 듀오인 델라니 앤 보니(Delaney & Bonnie)의 백 밴드의 일원으로 잠깐 동안 활약하게 되는데, 이 짤막한 경험이 이후 그의 음악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이 가장 많은 싱글 히트곡을 발표했던 70년대의 작품 경향은 다분히 이 듀오의 음악과 유사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이 밴드에서 만나게 된 무명의 연주자들과의 인연이 그의 밴드 시절 중 가장 영롱히 빛나는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게 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당시의 멤버들 - 드럼의 짐 고든, 베이스의 칼 래들, 키보드이 바비 위트락 - 과 함께 결성한 데릭 앤 도미노스는 각각 단 한 세트의 스튜디오 앨범과 라이브 앨범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 앨범 발표 직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듀언 올맨이 게스트로 참가해서 불꽃튀는 협연을 보여 준 그들의 유일한 스튜디오 녹음인 본작은 록 역사상 가장 블루스 / 록 앨범이자 사랑 노래들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이 앨범 이전까지의 화이트 보이 블루스가 흑인들이 고안해 낸 블루스의 모사품에 불과하다면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 는 최초의 진짜 백인들의 블루스라고 할 수 있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명연주들로만 가득찬 이 앨범은 록 음악의 역사상 정점을 이루는 몇 안되는 필청 음반 중의 하나이다. (김우석)


9. Metallica

     [Master of Puppets] (86)

메탈리카의 가장 큰 공로는 스래쉬 메탈을 보편적으로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앨범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영국 헤비 메탈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메탈리카는 다분히 싱글 히트 지향적인 밴 헤일런이나 본 조비같은 여타의 미국 밴드들과는 달리, 마땅히 내세울 만한 프론트맨 하나 없이, 다만 심각하게 연주된 작품만으로써 대중적인 인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음악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교하게 설계된 건축물과도 같다. 8분이 넘는 대작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의 늒ㄹ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계산해서 구성해 놓기 때문에 지루함보다는 오히려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 정도이다.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팔뚝의 근육보다 냉철한 두뇌가 더욱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 같다.
  파워로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이틀 트랙의 절도 있는 폭발도 일푸미지만, 이 앨범의 진가는 조금 더 세공과 치장에 신경을 쓴 듯한 <Welcome Home(Sanitarium)>과 처음 시작하는 인트로만 들어서는 도저히 연주곡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Orion>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각 멤버의 연주를 하나씩 분리해 들어 보아도 대단한 연주력에 감탄하게 되지만, 모든 파트가 어울려서 명확한 기승전결을 이루면서 전개되어가는 방식을 보면 이들이 보통 밴드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메탈리카를 다른 밴드와 다르게 만드는 요체이다. (김우석)


10. David Bowie

      [The rise & fall of Ziggy  strardust        & spiders from mays] (71) 

거의 모두가 데이빗 보위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지만 필자는 단연코 전작인 <Hunky dory>를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Hunky dory>엔 <Andy Warhol>과 <Bob Dylan>이란 제목의 노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빼문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도 <hunky dory>에 준할 만한 걸작임에 틀림없다.
  중성적 이미지의 글램 로커와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외계인(Ziggy stardust)과의 만남이 바로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을 열심히 듣는다고 Ziggy가 누구인지 앙ㄹ게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스파이더의 존재는 더더욱 풀 수 없는 문제이다. 보위만이 알고 있는 이런 존재들에 대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이런 존재들은 보위의 상상 속에 한 때 존재했었다고만 생각해 두자.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가 양성적 서향과 공상 과학, 영화나 연극의 시각적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때 모트 더 후플에 몸담았던 기타리스트 믹 론손의 지원과 <Suffragerre City>와 <Rock and roll suicide>등의 명곡들이 이 앨범에 담겨있는 점이다.
  <Rock and roll suicide>의 예언과 달리 로큰롤은 아직도 왕성한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모두가 꿈꾸는, 도저히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존재이다. 루 리드(Satellite of love)도 그랬고 도이 디비전(Disorder), 너바나(The man who sold the world;보위 원곡)도 그랬다. (이무영)


11. The Beatles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67)

수 십 년에 걸쳐 음악 팬들의 귀에서 귀로 검증된 록 음악사상 최고의 명반. '컨셉트 앨범의 효시', '반기성과 사이키델릭의 온전한 시대상황이 담긴'...등등, 지금까지도 이 앨범을 놓고 쏟아지는 수 없는 담론은 역설적으로 이 앨범의 시대를 초월하는 지위를 말해준다.
  타임지는 이 앨범에 대해 '유럽과 미국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화시키는 데 기여한 온화한 무정부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 비틀즈는 좀더 예술적 지평으로 올라갔다'고 평했다.
  비틀즈는 이 작품을 통해서 팝의 예술성이란 최고의 수확을 거두었다. 음반 기술적인 면에서도 획기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팝의 일반 틀을 과감히 부수어 교차리듬(Cross Rhythms)을 믹스했고, 바하에서 스톡하우젠에 이르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사용한 클래식 연주 악기를 활용, 마치 관현악 연주와 같은 웅장함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지휘아래 비틀즈는 전자 음향 효과를 극대화 시켰고, 테잎의 역회전과 속도 조절 등 믹싱의 갖가지 신기술을 총 동원했다.
  사랑의 찬가가 된 〈She's Leaving Home〉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극찬한 곡이기도 하며, 〈When I'm Sixty four〉, 〈Lovely Rita〉, 〈Fixing A Hole〉같은 곡으로 예술성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앨범 속에는 고독과 현실 세계의 탈출, 동양의 종교 등에 고양된 젊은이들이 심취했던 LSD, 마리화나의 환각 세계와 그 필연적 결과물이랄 수 있는 '60년대의 사이키델릭 시대 정서가 담겨 있다. 또한 당시를 대표하던 인물들로 채워진 앨범 재킷에서 세대간의 긴장과 '60년대의 고독감을 읽을 수 있다.(박신천)


12. Pearl Jam

       [Ten] (91)

'90년대 미국 젊은이의 대변인은 누구인가? 도어스, 브루스 스프링스틴으로 이어진 미국 록 음악은 얼터너티브 시대에 이르며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복합적인 장르 혼합, 지역적인 스타일 분화, 주류와 비주류의 편가르기. 이 모두가 '90년대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표 현상들이다. 그런지는 얼터너티브란 단어가 매체에 파생될 즈음 거의 동질의 의미로 알려졌다. 메탈이 아닌 록, R.E.M.이나 스미스와는 기본 골격이 다른 느낌. 얼터너티브는 새로운 주류 그런지를 탄생시켰고, 그런지는 시애틀을 록의 메카로 세상에 알렸으며, 시애틀은 펄 잼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뤘다.
  사실 데뷔 당시 펄 잼은 정체가 모호한 밴드였다. 보컬 에디 베더는 시애틀이 아닌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 멤버들 모두 긴 활동을 예상하고 밴드를 결성했다기 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운드가든 친구들과 프로젝트 템플 오브 더 독을 결성하기 전후로 해서 펄 잼은 급조됐고, 그런 까닭에 맴버 모두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스톤 고사드의 브래드, 제프 에이먼트의 쓰리 피쉬가 그 중 대표적-을 운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현재도 물론 운영 중이다). 다년 간의 마이너 시절을 통해 실력배양에 바빴던 너바나와 비교하자면 펄 잼은 시작부터 올스타 팀으로의 면모가 강했던 셈이다.
  이들은 앨범 발매전부터 영상 매체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언플러그드' 라이브를 펼쳤고 시애틀의 보고서 영화 〈싱글스〉에 투입됐다. 결국「Ten」은 데뷔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히트와 시회적 파문을 몰고 왔다. 펄 잼의 넉장 앨범 중 유일하게 넘버 원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나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하는 미국인의 염원을 풀어주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대중 스타로 거듭난 펄 잼은 '93년 MTV 비디오 어워드의 화두로 등장한 〈Jeremy〉(최근 본 조비 주연의 영화「Destination Anywhere」를 선보인 마크펠링턴 감독)를 끝으로 더 이상 뮤직 비디오 만들기를 포기했다. 이것은 음악적 본질을 흐리게하는 영상 매체에 대한 양심이기 이전에 음악 자체에만 전념하겠다는 팬들에 대한 맹세의 의미였을 것이다.
  펄 잼의 데뷔 앨범은 시애틀 그런지 올스타의 상징이자, 오버 그라운드 밴드의 인디적인 고민을 담은 초라한 앨범이다. 최악의 앨범 재킷, 최상의 원초적 울부짖음과 더불어.(이종현)


13. Jeff Beck

       [Blow by blow] (75)

우리나라 뮤지션들과 제프 벡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 장르에 손을 댄다는 것. 그렇다면 그 둘의 다른 점은? 전자가 한 앨범에 모든 장르를 쑤셔넣는 반면 후자는 일생 동안 여러 장르를 탐구한다는 것. 전자가 어정쩡하게 수많은 장르의 겉을 핥는 반면, 후자는 하나를 할 때마다 확실하게 한다는 것. 전자는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자기 색깔도 바뀌지만 후자는 어떤 스타일에서건 누가 들어도 제프 벡임을 알 수 있다는 것 등등...
  각설하고 「Blow By Blow」는 제프 벡이 1975년데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손잡고 만들어 낸, 거의 최초의 본격적인 록 기타 연주곡 앨범이다. 인스트루멘틀임에도 차트 성적 및 판매고에서 호조를 보이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80년대에 시작된 잉베이나 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등 기타 인스트루멘틀 붐의 효시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그가 해 오던 로큰롤내지는 블루스 록 스타일에서 과감히 변화를 시도, 록과 재즈의 크로스오버를 완성도 높게 실현해 낸 앨범. 그 유명한〈Cause We've Ended As Lovers〉도 바로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이 좋다면 이어지는 같은 성향의 두 앨범, 「Wired」와「There & Back」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후로 제프 벡은 하드 록을 필두로 각종 전자 사운드의 도입, 그리고 컨트리/로커빌리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거듭해 오고 있지만 그의 곡, 그리고 그의 연주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제프 벡'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명인과 평민의 차이점인 것이다.(윤병주)


14. John Lennon

       [Plastic Ono band] (70)

이 앨범보다 훌륭한 '그룹 출신 뮤지션의 솔로 데뷔작'은 없을 것이다. 비틀즈 시절과는 전혀 질감이 다른 존 레논의 자기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비틀즈의 잔영을 담고가 그룹의 대표성을 견인하려 했던 폴 메카트니와는 이 점에서 다르다. 나중 요코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 앨범은 폴의 「Band On The Tun」이나 「McCartney」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우린 가능성을 획득했다. 그 가능성은 또한 '계산된' 것이 아니다. 존은 그런 사람이 못되었다."
  앨범은 사운드의 파노라마로 〈Mother〉의 최소주의, 〈Love〉의 멜로디 취향, 〈Well Well Well〉의 소음 등이  '정갈하게' 교차된다. 〈Well Well Well〉은 당시의 '인더스트리얼 뮤직'이라 해도될 만큼 진보적이다. 수록곡 중 더러 강렬한 사운드가 담긴 이유는 그무렵 존이 체험했던 아더 야노프 박사의 '원시적 외침(primal scream)' 요법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앨범을 만든 주 목적이 이것이다.
  본인의 체험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솔직히 묘사한 측면이야말로 이 앨범의 백미. '신은 고통을 재는 컨셉트일 뿐'이라고 입을 떼는 〈God〉이나 '노동 계급의 영웅이 되고 싶으면 나를 따르라'는 〈Working Class Hero〉와 같은 강성(强性)의 이데올로기 송은 어떤 아티스트에게서도 목격하기 어렵다.
  〈Mother〉에서 시작해서 〈My Mummy's Dead〉로 끝나는 수미상관 등 앨범의 구성력도 뛰어나다. 존의 영혼과 그것의 표현력이 번뜩이는 수작. 이것은 '육필수기'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들어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명반이다.(임진모)


15. Cream

       [Wheels of fire] (68)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 음악이 귀에 와 닿을 때의 느낌이다. 흔히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는 그 느낌의 질과 양에 의해 개인적인 음악에의 경험과 판단은 이루어진다. 형식과 테크닉에 관해서라면, 그것은 음악(音樂) 외적인 요소이다. 곡의 진행 방식과 조(調)의 편성, 화성(和聲)의 배치 등에 있어 형식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감동도 얻지 못하는, 오히려 짜증스런 소리의 조합처럼 여겨지는 까닭은 명백하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클래식 록'이라 부르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등장한 숱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기까지, 대부분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그들이 음악을 쓸 때 그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아티스트들의 영감(靈感)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말로 표현 못할 벅찬 기쁨을 느낀다. 물론 이 또한 개인적인 성향과 기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때의 음악에서 지금과의 유사점을 찾아내고는 놀라는 경우가 있음은 인정할 것이다.
  록의 거장들 세 명이 이루어 놓은 이 성과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에릭 클랩튼이 주는 감동을 능가하는 연주는 찾아보기 힘들고, 각각의 곡들 특히 〈Toad〉에서 들을 수 있는 진저 베이커의 드럼 솔로는 하나의 교본과도 같다. 물론 다재다능한 잭 브루스의 역량이 없었다면 이 앨범은 탄생될 수 없었을 것이다. 3인 편성의 밴드 구성이라는 외형적인 요소 외에 블루스 록, 하드 록, 싸이키델릭, 그리고 아트 록에 이르기까지 브리티쉬 록에 있어 하나의 '원류(源流)'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작품이다.(김경진)


16. Jimi hendrix experience

       [Electric ladyland] (68)

'록 기타의 혁명아' 지미 헨드릭스의 세 번째 공식앨범. 아주 가끔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경지에 도달한 인간들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들을 일컬어 '혁명아' 또는 '천재'라고 한다.
  이 앨범은 지미 헨드릭스와 그 기타 혁명의 편린들이 때로는 예리한 바늘처럼, 때로는 스모그처럼 몽롱하게 청각을 자극한다.
  「Electric Ladyland 1」과 「Electric Ladyland 2」의 더블 LP로 발매된 이 기타 실험의 집대성판에는 시대를 앞선 첨단과 원시, '60년대 중반의 반전 시위과 LSD의 환각이 사이키델릭의 소음과 매캐하게 얽혀있다. 하울링을 기타 픽업으로 잡아내고 다시 스피커로 되돌려 음이 끊기지 않고 순환하게 만드는 피드백의 '정교한 하드웨어의 메카니즘' 위로 헨드릭스의 보컬이 흐느적거리며 떠다니고, 퍼즈와 와우 와우, 트레몰로 암을 이용한 음의 왜곡이 인도하는 사이키델릭의 환각은 그 혼돈의 시절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포함해 생전에 그가 남긴 3장의 앨범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애증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헨드릭스는 기타 혁명의 장(場)을 열었지만, 동시에 향후 기타로 새로운 것을 탐구해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놓지 않았다. 그는 기타로 실험가능한 거의 모든 것을 해내고 떠나버린 것이다. 헨드릭스의 경배자들의 찬가가 되어버린 〈Voodoo Chile〉,〈Have You Ever Been〉,〈Gypsy Eyes〉와 함께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록의 고전으로 연주되고 있다.
  이펙터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틀로 바뀌었을뿐, 아직도 많은 록 기타리스트들은 이미 30년전에 그가 끝낸 실험의 결과물을 답습, 확대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지존'으로서의 지미 헨드릭스의 지위는 여전히 유효하다.(박신천)  


17. Yngwie malmsten

       [Yngwie malmsten's rising          force] (84)

이 앨범이 여기 이 리스트에 한 자리를 -그것도 상위에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그 엄청난 파급력에 있다. '8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한 국내 헤비 메탈씬에 있어서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기타리스트의 상징이었고, (결과론이긴 하지만) 그것은 내적 성숙을 위한 통과제례의 의미와 다름 아니었다.
  물론 잉베이 맘스틴이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다. 6연음, 8연음의 고전적인 속주 패턴을 비웃는듯한 -그야말로 무한 질주의 핑거링 스피드와 클래식에 기초한 새로운 스케일/모드 패턴은 기타 플레이의 새로운 가능성임에 분명했다. 파급력 또한 그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스피디해서, 한동안은 전세계의 기타리스트들이 잉베이 신드롬의 노예를 자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바하와 지미 헨드릭스의 결합'이라는 잉베이의 원대한 목표에 있어서 이 앨범은 분명 최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발표된 작품들이 수가 보이는 뻔한 한계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감성과 정신의 부재가 록의 이념에 위배된다'거나 '자기 잘난 줄만 아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라는 평가가 잉베이를 고립시키기도 했지만, 그의 그 신앙같은 자기 확신과 외곬의 행로는 '90년대의 펑크 키드들이 그토록 목놓아 역설하는 인디 정신의 본질에 다름 아니다.(박은석)


18. Pink floyd

       [The wall] (79)

핑크 플로이드라는 한 밴드의 역사와 사운드의 변천 과정을 놓고 볼 때 본작은 분명 기존의 작품들과 커다란 차별성을 가지는 '이질적'인 앨범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 -우주적인 꿈-은 간데없이, 「Animals」(77)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보다 직설적이고 냉소적인 가사와 사운드가 이 작품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즉, 로저 워터스라는 개인의 경험과 유년 시절의 콤플렉스가 그 자신의 가치관에 실려 음악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향력은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용됨으로써 다른 멤버들과의 돌이킬 수 없는 감정 불화로 이어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릭 라이트의 탈퇴와 로저의 솔로 앨범과 다름없는「The Final Cut」(83)의 발표, 그리고 밴드의 해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불러오게 된다.
  하지만 앨범 자체는 여러 요소들과 맞물려 많은 이들로부터 핑크 플로이드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뜬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사회가 가진 치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린 그 방식이 사람들에게 더욱 와 닿았던 듯 싶다). 기승전결식의 구조와 일정한 이야기 전개를 가진 내용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컨셉트 앨범으로, 그 당시 밴드의 대규모 투어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로저 워터스 개인의 이름으로 행했던 공연에서도 볼수 있듯, 작품은 하나의 록 오페라 또는 록 뮤지컬의 형식을 가진다. 아마도 앨런 파커가 작품의 영화화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별다른 '손질'없이도 그 자체로 각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김경진)


19. The clash

       [London calling] (79)

런던 펑크 씬이 배출한 최고의 걸작 앨범으로 '79년말에 발표되어 '70년대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작품이다. 그리고 순수한 의미에서의 펑크 밴드 클래쉬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앨범 이전의 클래쉬는 과격한 가사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를 구사하기는 했지만 아직 음악적으로 발전 단계에 있었고, 이 이후의 클래쉬는 덥(Dub)과 레게에의 집착이 심해진 만큼 평크로서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말하자면 가장 위대한 펑크 밴드가 음악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크에 있었을때의 위대한 작품이다.
  타이틀 트랙인 명곡 〈London Calling〉에서부터 시작해서 이후 곡이 진행됨에 따라 레게, 록, R&B, 재즈, 로커빌리 등이 절묘하게 배합된 곡들이 계속 이어진다. 가사는 역시 클래쉬의 전매 특허인 정치적인 이슈들을 토해낸다. 대도시의 환경문제(London Calling), 스페인 내전 관련(Spanish Bombs), 빈부 격차(Brand New Cadillac, Lost In The Supermarket)등 당시 피끓는 젊은이들이었던 이들로서는 참을 수 없는 문제들을 그러나 데뷔 당시보다는 객관적이고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당시 오랜 노동당 집권을 종식하고 새로 들어선 마가렛 대처 보수당 정권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이들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해내고 있다.
  사운드 적인 면에서는 이들의 공격 대상이었던 전 세대 로커들의 거창함과 복잡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쾌하면서 심플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모하기만 했던 섹스 피스톨스와 달리 전략, 전술의 개념이 확실한 클래쉬의 영민함이 번득인다. 앨범의 재킷은 기타를 무대에 내리 치고 있는 사진으로 되어 있어 역시 다분히 의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직도 이들에 대해 팬들이 갖고 있는 향수는 대단해서 항상 재결성 희망 밴드 부문에서 1위를 하고 있다. 〈London Calling〉은 '90년에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80년대 최고 앨범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리더인 조 스트러머는 이 앨범이 '79년 12월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정원석)


20. Prince

       [Purple rain] (84)

프린스는 음악적 능력을 검증 받기도 전부터 상스러운 뮤지션으로 평가절하됐고, 적어도 대중들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가수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섹스 중독증에 걸리지 않았으면 십중팔구 성적 결핍이 분명하다'란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정신 병원 진찰 요망'이란 외지 평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린스를 얕잡아본 매스컴과 음해 세력들은 모두 '84년을 기점으로 살며시 프린스의 지지 세력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바로 '84년을 대변하는 앨범 「Purple Rain」때문이었다.
  「Purple Rain」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 장의 영화 음악 이전에, 고만고만한 음악이 판을 치는 '80년대 초반을 평정하는 의미를 담은 중량감있는 앨범이 됐다. 마이클 잭슨이 상업적 파급력을 가지고 시대의 영웅 자리를 꿰찼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실력있는 뮤지션의 품귀 현상이 이어지던 팝 음악계의 공황기였다. 프린스는 프로듀서, 송라이팅, 노래, 연주는 물론 영화의 주연까지 맡은「Purple Rain」를 통해 완벽한 천재성을 피력했고, 대규모 사단(레볼루션, 더 타인, 실라 이, 시나 이스턴)을 지휘하며 팝 음악계에 많은 볼거리와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음악적인 혁신과 파급 효과는 상업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져 앨범이 24주가 차트 정상에 올랐고, 〈Let's Go Crazy〉가 2주간, 〈When Doves Cry〉가 5주간 싱글 차트 정상에, 타이틀곡〈Purple Rain〉2위, 〈I Would Die 4 U〉8위, 〈Take Me With You〉25위에 오르는 등 5곡의 싱글 히트곡을 쏟아냈다. 「Purple Rain」의 열기가 아직 수그러들기 전인 '86년 6월, 프린스는 1년만에 새로운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를 발표했고, 또 다시 차트 정상에 올랐다. '80년대 중반 프린스는 주체할 수 없는 창작열에 불탔고, 세상은 능력있는 그를 원하고 있었다.(이종현)


21. Queen

       [A night at the opera] (75)

이 앨범을 더 이상 팝의 범주에 묶어 놓을 수 있을까?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 퀸의 역작은 이제 글자 그대로 고전(Classic)이 되었다.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가 이미 레코딩한 바 있지만, 머지않아 모든 성악가들이 〈Bohemian Rhapsody〉를 부르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록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앨범 중의 하나인 본작은 수록곡들의 다양함으로 인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트랙을 하나 씩은 발견할 수 있는 매우 보편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Love Of My Life〉외에도 경쾌한 스탠다드 넘버인 〈You're My Best Friend〉, 비틀스를 연상케하는 록 넘버 〈I'M In Love With My Car〉, 유랑 극단의 노래극 분위기를 담은 〈Seaside Rendezvous〉등 각양각색의 곡들이 물결치듯 파노라마를 이룬다. 퀸의 작품치고는 가장 특이한 성격을 드러내는 〈'39〉은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의 보컬에 귀 기울여 볼 만한 곡인데, 단순한 리듬에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마치 뱃사람들의 노래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흔히 대중성과 음악적 성취는 양립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지만, 퀸은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당시의 펑크 뮤지션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김우석)


22. Pink floyd

       [The dark side of the moon]         (73)

'70년대 초반 영국을 위시한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는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쓸만한 아트 록/프로그레시브 록이 꽤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력은 대부분 사운드의 비법에서 기인됐고, 그 대표작은 두말할 나위 없이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다. 음향학을 이용한 공간감과 신서사이저의 실용화 등 핑크 플로이드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현한 연주는 마술과도 같이 모두 새롭고 신비했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는 독특한 음반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핑크 플로이드의 모든 특징이 함축된 앨범이며 제작에 있어서도 가장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을 받는 것은 멤버들의 능력이 고루 반영됐다는 점에 있다. 초기 핑크 플로이드는 시드 배릿의 영향력과 시회적인 무드를 따라 사이키델릭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70년대 중반에는 데이빗 길모어의 블루지한 기타 플레이가 조목받으며 실험보다는 음악 철학에 깊이를 두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로저 워터스의 부각은 메시지에 주안점을 둔 핑크 플로이드로 변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듯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극단적인 스캣의 처절함도, 어두운 사회의 이면에 대한 반성도, 록 매니아라면 호감을 갖을 멜로우한 면모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73년 4월 28일 단 1주 넘버 운에 그쳤던「The Dark Side Of The Moon」는 이후 741주 동안 앨범 차트에 머무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팝 음악 역사상 가장 롱런한 앨범이 되었다.(이종현)


23. Bruce springsteen

       [Born to run] (75)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To Run」은 한 마디로 촌스러운 앨범이다. 문학적으로 그리 뛰어나지 못한, 밥 딜런 '뱁새 버전'(?)인 듯한 가사와 로이 비탄의 피아노와 올겐, 클라렌스 클레몬스의 색소폰 등 얼핏 느끼기에 록과는 거리가 먼 듯한 악기들의 구성이 이 앨범이 지닌 촌스러움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orn To Run」은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이 앨범처럼 하층 백인들의 생활을 정확하게 읽어낸 작품은 일찍이 없었다. 비록 그것이 딜런의 노랫말처럼 지적이며 은유적이지 못하더라도 가장 서민적이어야 할 록 음악의 가사로선 최상의 가치를 지닌다. 사운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만이 훌륭한 록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면 이 앨범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 앨범에 참여한 E 스트리트 밴드의 연주자들은 거의 모두가 스프링스틴이 브루크에일 커뮤니티 전문대를 중퇴하고 음악 생활을 시작한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음악의 동지들이다. 이들이 펼치는 연주의 조화와 미국적 에너지는 당시 영국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미국 록이 자존심을 회복하는 쾌거였다.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뉴 저지 주에 살고 있는 민초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Born To Run〉은 개처럼 뛰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서민들의 분노이며, 〈Thunder Road〉와 〈Tenth Avenue Freeze Out〉은 고통스러운 무명시절 스프링스틴의 상실감을 담고 있다. 〈Meeting Across The River〉는 돈 때문에 마약 딜러가 되려는 순진한 바보의 설레임을 슬프게 표현하고 있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가난한 실업자의 싸구려 자동차, 이것이 바로 「Born To Run」이다.(이무영)


24. The rolling stones

       [Exile on main street] (72)

밥 딜런, 킹크스, 더 후, 밴 모리슨, 롤링 스톤즈... 국내의 음악 시장에서 이들이 지니는 공통점은 그 유명세와 높은 평가에 비해 음악이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곡된 방송계의 생리와 음악 전달자, 수용자들의 편협성은 대체 이들이 어떤 음악을 했는지 한 번 들어보려 해도 그 기회를 가질 수 없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요즘은 음반을 구하지 못해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음악들을 듣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좋은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참된 명제이다. 롤링 스톤즈의 경우, 우리에게 기껏 알려진 곡들은 난데없이 TV시리즈에 사용되었거나 분위기만 타는 DJ들에 의해 소개된 감미로운 발라드 뿐이지만, 이들 역시 비틀즈만큼이나 다양한 음악과 실험을 행했고 그만큼 대중 음악계에 끼친 영향 또한 적지 않다. 록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 소울 감각으로 가득한 이들의 기본적인 음악 성향은 포크, 컨트리 앤 웨스턴과 싸이키델릭에 이르기까지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최초의 더블 앨범인 본작에서는 위의 요소들이 농축되고 또 증폭된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Beggars Banquet」(68), 「Let it Bleed」(69), 「Stidky Fingers」(71)등 여타 걸작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본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관악기 편성의 악곡 전개이다. 기존 멤버 외에 여러 명의 게스트 뮤지션들의 협연이 돋보이며, 더욱 안정되고 성숙된 스톤즈 사운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김경진)


25. The Beatles

       [Abbey road] (69)

자타가 공인하는 LP시절 최고의 명반이자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 〈Come together〉,〈Something〉등이 수록된 A면이 대중들의 감성을 기막히게 포착해낸 비틀즈 상업적 승리의 집약판이라면, 〈Because〉와〈Here Comes The Sun〉등이 꼬리를 물고 메들리처럼 이어지는  B면은 클래식 악곡 풍의 예술적인 심미안으로 가득 차 있다. 단언컨대, CD로 들으면 그 감흥이 반감된다. 판을 뒤집어 텐테이블에 올려놓는 그 짧은 시간의 간극이주는 A면과 B면의 뚜렷한 변별성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CD로 〈I Want〉까지 들은 후, 아주 잠시 쉬었다가 〈Here Comes The Sun〉을 들어 보라.)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오랜 헤게모니 싸움에서 그 주도권이 이 앨범에 이르러 폴 메카트니에게 넘어간다. 앨범의 기획을 비롯해 제작의 대부분을 지휘했던 폴 메카트니의 지배력이 앨범 전편에 넘실된다. 비록 존의 집중력이 이 음반에서 많이 떨어졌지만, 그의 〈Because〉는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친화력을 대중들에게 부여했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아울러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의 짙은 그늘에 가려있던 조지 해리슨이〈Something〉과 〈Here Comes The Sun〉을 링고 스타가 〈Octopus's Garden〉을 통해 작곡자로서의 일취월장한 면모를 보여준 앨범이기도 하다.
  20여년 전 음악이지만, 비틀즈의 천재적인 창조성과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 정신은 지금에도 그 감동의 진폭이 줄지 않는다. 곳곳에서 해산의 징후를 맡을 수 있는 이 앨범의 마지만 트랙은 〈The End〉다. 이 앨범은 폴의 승리이며 그의 전리품이다.(박신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