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산울림)

산울림은 1977년 대학가요제로 대학의 문화들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 '샌드페블스'라는 이름으로 김창훈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고 국내 음악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산울림이란 팀명은 그 당시 레코드사 사장이 산과 같이 크고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타와 보컬의 김창완, 베이스 기타와 백보컬에 김창훈 드럼에 김창익 이 삼형제는 1977년 첫 앨범 [아니 벌써]를 낸다.

당시 트로트가 판을 치고 있던 대중 가요계에 록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50만여 장이 가까이 팔리게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아니 벌써]의 두 번째 트랙곡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를 한 평론가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The) 의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에 비견되는 작품이라고 극찬을 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수많은 명곡들과 자주 비교됐다.

1977년부터 1996년까지 총 13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였고 79년부터는 5장의 동요앨범과 83년 [사랑의 발라드]와 [Rock World]등의 프로젝트 앨범 18장을 냈다. 97년엔 이들의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들의 모든 곡을 12장의 앨범을 8장의 CD로 나눠 제작되었고, '우는 아희야'와 '눈 뜬 어린애' 두 곡의 미발표 곡도 수록되어 있다.

1집을 내고 대학가를 위주의 공연을 하던 그들은 그들은 불과 5개월 후에 2집[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내고 이 앨범은 이들의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고 있다. 전작보다 프로그레시브와 헤비메틀 성향이 더 짙어지고 더욱 실험을 꾀하는 그들의 노력이 보인다.

3집 [내마음]에 와서는 둘째 김창훈의 곡으로 거의 채워져 있는데 국내 헤미메틀의 원조격으로 꼽힌다. '내 마음은 황무지'에서 보컬 김창완의 목을 눌러내는 목소리는 거친 음악의 이미지를 한층 더 부각시켜준다. 이 앨범엔 기념적인 것이 많다. 우선 이들 최고의 헤비한 음악인데다 '그대는 이미 나'란 18분 39초 짜리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3집이 되서야 비로소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락의 지평을 열었는데 당시의 음악계로는 쉽게 인정이 되지 않을 작품이어서 그런지 참패를 하고 만다.

4집부터는 두 동생이 군대를 간 뒤라 김창완의 음악적 성향이 더욱 짙게 나온다. 4집 [특급열차]는 그간 그가 작업했었던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 음악들을 모아 낸 앨범이고 5집 [한낮의 모래시계]는 동생 김창훈의 곡을 모아 만든 앨범으로 전통음악과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산울림의 노력은 계속된다. 6집에서 홀로 남겨져 있는 김창완의 음악성향을 더욱 드러내고 있는데 김창훈이 곡을 쓰던 시기에는 하드락적인 요소가 짙었던 반면 김창완 시절엔 서정성으로 승부한다. 7집에 가서야 두 동생이 다시 합류하면서 이들은 다시 타이틀 곡 '가지마오'로 옛 명성을 되찾는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서라벌레코드사에서 대성음반으로 건너가 처음 발매한 음반이었다.

10집 [너의 의미]로 이들의 활동을 총결산하고 공식적인 산울림의 활동은 끝냈지만 김창완 특유의 색깔로 산울림의 명성을 이어간다. 국내 락의 선구자이자 끊임없는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하면서 산울림은 명실공히 최고의 락밴드가 되었다.

                                             -  글 / 김정위 (음악창고)

※ 김창완 공식 홈페이지 :  http://www.chang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