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락> 역사와 발전상징- 30년세월 대중과 함께한 <사랑과 평화>

해방 이후 서구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대중가요도 서양 유행 음악의 영향을 받게된다. 트로트라는 엔카 풍의 노래들이 서민들에게 전쟁과 가난의 애환을 표현하면서 대표적인 유행가로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서구의 대표적인 장르인 락 음악은 60년대와 70년대 미8군이라는 무대를 통해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과 대중들 사이에 점차 어필해가고 있었다.

'신중현'과  ‘히식스’ 등 스타들이 나타나고 히트곡도 점점 늘어 갔지만,  본격적인 그룹음악의 열풍을 일으킨 70년대 말, 한국 그룹음악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사랑과 평화’와 ‘산울림이 아닌가 싶다. 산울림이 형제들로 구성되어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와 오리지넬리티로 음악세계를 펼쳤다면 미8군무대의 최고의 프로 뮤지션 들이 모여 결성된 사랑과 평화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연주와 편곡, 그리고 팀웍으로 국내 그룹 음악에 20년이 넘도록 영향을 끼치는 슈퍼그룹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위상과 매니아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연예 예술 상,연주 보컬그룹 상도 받았다.

그럼 지금부터 사랑과 평화의 결성과 지금까지의 활동, 그리고 그들이 한국 락의 역사와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자.

이남이(B), 김태흥(D), 이철호(V), 김명곤(K), 이근수(K), 최이철(G)  이들이 사랑과 평화의 창단 라인업이다.

미8군 무대에서 뛰어난 연주로 활동하던 이들을 오랫동안 살펴보고 오버로 이끌어낸 사람은 다름 아닌 당시의 유명한DJ겸 가수였던 이장희 였다.

특히 이들은 당시 한국에서 연주하기 힘든 Funky라는 장르의 연주에 능해 미8군 무대에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8군 무대는 연주자의 실력에 따라 등급을 나눠 게런티와 무대도 차별화하여 세웠는데, 8군 역사상 최고 등급인 Special AA를 받은 한국 밴드는 사랑과 평화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들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났던 것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78년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 했었지’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처음 흘러나왔을 때 일반인들과 연주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마치 지미 핸드릭스가 기타를 불태웠던 센셔이널처럼 최이철의 와우 와우 액서사리에 의한 연주와 리듬, 김명곤의 화려한 편곡, 이남이와 이철호의 스테이지 매너는 정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앨범라인업에는 이남이와 이철호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고, 대신 최이철의 보컬과 이태리인 사르보가 베이스를 연주했지만, 일반 라이브 무대에선 이철호와 이남이가 함께 활동 했다.

자세히 다루겠지만 사랑과 평화의1집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룹을 계속해 가기엔 척박한 토양의 한국에서 20년 이상을 살아남은 슈퍼 그룹의 탄생을 알린 것이고 이후에 발표된 수많은 음반 중에서도 뮤지션들과 팬, 그리고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앨범은 흔치 않은데, 이 앨범과 사랑과 평화 멤버들은 지금까지도 전설이라 표현될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안 뜸 했었지'의 생각보다 큰반향에 고무된 이들은 또 하나의 명반 2집 ‘장미’를 79년에 발표한다. 2집의 라인업은 이남이가 빠지고 불세출의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빼어난 연주력을 보여주는데 훗날 그는 잡지 인터뷰에서 그의 연주가 본격적인 프로로서 소리를 내게 된 것이 사랑과 평화에서 활동했을 때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주곡을 정규앨범에 수록하였는데 베토벤의 '운명','여왕벌의 행진', '엘리제를 위하여', '아베마리아'등의 클래식 곡과 '축제', '솔바람', '할미새'등 창작 연주곡을 삽입 훗날 뮤지션들의 필수 마스터링 레파토리가 될 만큼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여기까지가 1기 사랑과 평화라 할 수 있는데, 마치 Deep purple과 Led zeppelin이 그랬던 것처럼, 훗날 그룹의 멤버 각자가 아티스트로서 펼친 활동을 살펴보면 사랑과 평화가 그룹 음악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1기의 멤버들이 음악적 견해차와 드러머 김태홍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팀 전체가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그 슬픈 마음을 ‘울고 싶어라’라는 곡에 담고 몇 년 동안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그 외에도 몇몇의 멤버들이 사랑과 평화를 거쳤는데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정원영, 드러머 문영배 등이 있는데, 이들 사랑과 평화의 멤버들은 각자 작곡과 세션, 편곡 등으로 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어간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등 몇몇 재즈 팀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최이철은 사랑과 평화에서 했던 음악과, 지금은 퓨전 재즈라 하지만 당시엔 재즈 락이라 불렸던 실험적이고 색다른 음악을 하고픈 열망에 이남이를 찾게 되고 또다시 새로운 신화창조를 위해 의기투합한 이들은 당시 세션 계의 촉망 받던 젊은 연주인 들을 가세 시켜 2기 사랑과 평화의 라인업을 구축한다.

이후 2006년까지 자리를 지키던 드러머 (故)이병일(2006년 9월17일, 타계)과 최태일 한정호등이 가세한 2기들은 '울고 싶어라', 겨울 바다', '노래는 숲에 흐르고' 등이 수록된 또 하나의 역작인 3집 '노래는 숲에 흐르고'를 88년에 발표하는데 당시 청문회 정국과 이남이의 열창에 힘 입어 한때 전국의 길거리는 온통 울고 싶어라로 뒤덮이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최이철의 작품인 ‘노래는 숲에 흐르고’ 였는데 우연히 업소에서 이남이가 부르는 '울고 싶어라'를 듣게 된 MBC PD가 당시의 최고 인기 프로였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 출연, 방송을 타자, 기인인 이남이의 스테이지 매너와 오랫동안 기다려온 슈퍼그룹의 부활을 보면서 팬들은 열광하였던 것이다.

그룹이라는 것이 멤버 중 한명 인기를 끌다 보면 꼭 휴유증이 남는다. 이남이의 생각지도 않은 인기에 솔로 독립으로 이어지고 최이철은 새로운 라인업을 구상하는데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이끌어가던 재능 있는 뮤지션 박성식과 장기호를 영입, 퓨전 재즈로의 팀컬러를 확실히 구축, '샴푸의 요정', '조바심', '그대 떠난 뒤'가 수록된 4집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레코드 회사의 사정으로 시중에 얼마 풀지 않아 대중들은 잘 구할 수 없는 희귀음반이 되었지만, 박성식 장기호의 물오른 작곡과 연주가 팀을 한층 더 세련되고 퓨전적인 음악을 하는데 견인차가 되었다.

이 즈음 사랑과 평화는 한국을 대표하여 환태평양 락 오사카 음악제에 출전 사물놀이와 퓨전을 접목시킨 ‘덩더쿵’이라는 곡으로 일본 관계자들로부터 격찬을 받았고 경주 엑스포 특별 무대를 통해 최고의 그룹으로서 변함없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박성식과 장기호가 종교적인 이유로 빛과 소금을 결성하여 팀을 떠나고 사랑과 평화는 3기 라인업이 짜여지는데, 3기 라인업은 8년 동안 멤버 교체 없이 팀웍을 과시하게 된다. 박성식의 빈자리에 화려한 연주를 하는 안정현이 들어오고 이병일과 함께 한국 최고의 리듬라인을 만드는 베이시스트 이승수가 가세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댄스 가요가 메인이 되어 버린 가요계에서 5집 ‘못 생겨도 좋아’, 6집 ‘얼굴 보기 힘든 여자’를 발표하는데, 이때 이들은 클럽 연주와 후배 가수 김종서의 라이브 세션, 정동극장의 장기 콘서트, 라이브 소극장의 콘서트 등 매니아를 위한 직접적인 만남을 시도 하던 시기이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해야 할 것은 3기 라인업부터 가세한 한국 최고의 소울 보컬리스트 이철호를 주목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결성 당시의 원년 멤버였지만 잇따른 불운으로 앨범에 참여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남아있었지만, 그가 최고의 Soul singer 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음악계에서는 없을 것이다. 특히 그는 흑인 휠의 노래를 잘 소화하였는데 James Brown, Otis Redding 한국가수는 잘 부르지 못하는 흑인 휠의 Soul & Funky 한 곡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보급 보컬리스트이다.

그가 부르는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이나 "Kiss and say goodbuy", "Three times a lady"같은 곡들은(박상민이 리메이크 했던 '청바지 아가씨'의 원곡은 이철호가 불렀다.) 원곡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독특한 창법과 음색에 맞는 곡들을 만나기 힘들어 큰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랑과 평화의 리더로써 그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본다.

99년 사랑과 평화의 주축이었던 최이철과 안정현이 팀을 떠나는 대형사고가 터진다. 그 이유는 미국으로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서 였는 데 남은 멤버들은 커다란 딜레머에 빠지게 된다. 팀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해체 할 것인지 오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낸 결론은 팀을 계속 끌고 나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대중들에게 큰사랑을 받고 있지 않지만 그룹 음악을 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최고참 그룹으로서 본보기와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고 사랑과 평화 그 이름만으로 가지는 그룹 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였다.

사실 그룹음악을 한다는 것은 돈을 포기하고 순수하게 음악만을 한다는 것과  다름없고 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없이는 20년이 넘게 팀이 유지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88년도부터 자리를 지킨 드러머 (故)이병일과 이승수, 이철호의 음악적 열정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본다.  최이철과 안정현이 나간 빈 공백을 기타리스트 송기영과 피아노와 키보드에 이권희가 가세 새로운 사랑과 평화가 탄생되는데 이들은 일산에 자기들만의 연습실 공간을 마련, 보다 탄탄해진 팀웍과 연주로 제2의 도약을 한다.

키보디스트 이권희는 국내에서 세션 활동을 하던 중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 연주기법과 편곡을 공부한 학구파 뮤지션으로서, 김포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교수 뮤지션이기도 했다.  이권희의 가세로 사랑과 평화는 보다 세련되고 꽉찬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기타리스트 송기영은 최이철의 뒤를 잇는다는 면에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현재 활동하는 젊은 기타리스트 중 가장 안정되고 탁월한 연주기량으로 인정받고 있다.

7집까지 같이하던 키보디스트 이권희가  하고픈 음악을 하기 위해 2005년 팀을 나가고, 현재는 미국 유학을 한 키보드주자 홍현민이 영입되었다.

새로운 키보드의 영입으로 본격적인 Funky Group 으로서의 레퍼토리와 이철호의 인생이 묻어나는 가사와 한국적인 Funky  리듬이 물씬 베인 8집 앨범을 눈앞에 두고 사랑과 평화의 팬들에게 정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2006년 9월, 20년간 한 팀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킨 이철호와 더불어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었던 드러머 이병일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으로 멤버들과 팬들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지게된다.  공교롭게  연천에서 소년 소녀 가장 돕기 단독콘서트를 하는 도중 이병일의 소식을 접하게 되나, 가수는 어떤 무대도 버릴수 없기에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마치게 된다.  이병일의 죽음으로 이들은 팀 존폐위기 상황에 다시 한번 빠지게 된다.

20년간 이병일의 드럼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 어떤 드러머에도 만족할 수가 없을 것 같았고 또 너무나 갑작스런 죽음이었기에 멤버들이 받은 충격은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경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과 평화에 대한 애정으로 꿋꿋이 버텨온 이들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시 한 번 일어섰고, 새로운 드러머 문영배를 영입하게 된다.

동포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문영배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드러머로 이남이 씨와 더불어 신중현 씨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 후 수많은 레코딩 세션과 라이브 세션으로 드러머들 사이의 신으로 군림하던 화려한 이력의 드러머이다. 문영배의 가세로 더욱 화려하고 탄탄한 사운드를 내기 위해 또다시 뭉친 청년그룹 사랑과 평화....

2007년이면 그룹결성 30주년을 맞이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사랑과 평화...

사실 세계 밴드 사에 결성 30년을 넘는 그룹은 찿아 보기가 쉽지 않다. 지금 한창 인기 있는 크라잉 넛이나 인디 밴드들은 태어나지도 않은 해에 결성되어, 젊은이들 보다 더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는 사랑과 평화와 같은 밴드가 상업적 음악만이 남은 대한민국 가요계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2006년 홍대 Sound Day에, 이들의 무대가 어떠했는지 보신 분들이라면 이들은 결성 30년 된 노장그룹이 아닌 이제 30살 먹은 청년으로서 Funky 음악의 맛을 알고 어떤 것이 밴드 음악인지를 아는, 진짜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진짜 청년 Band 라는 걸 실감했을 것이다.

그동안 사랑과 평화의 음악적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창단 당시 너무나 뛰어난 연주력을 지녔기에, Funky한 사운드부터 퓨전, 블루스, 발라드에 이르기 까지 이들이 Rock Group인지

Funky Band인지 Fusionjazz Band인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은 Funky한 사운드를 추구하였고, 또 앞으로도 Funky한 음악을 들려주고자 한다.  세계적인 Funky Group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2005년 이전한 합정동  연습실에서 매일 호흡을 다지고 있다.

30년의 관록이 묻어나는 사랑과 평화만의 Funky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 들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그날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는 또 한 번 사랑과 평화의 충격을 30년 만에 느끼게 될 것이다.


                                               -  2006년 초겨울 강현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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