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신이 항상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록이고 재즈를 목표를 했던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종전의 록뮤지션보다는 재즈적이겠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난 그들이 지닌 테크닉 등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들만이 가진 잠재력을 스스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기성 뮤지션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명 기타리스트 조 새트리아니는 연주자들에게 있어서는 ‘사부'로 통한다. 이러한 존경과 선망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그는 인스트루멘틀 록 기타시대의 장을 열었고, 그로 인해 기타연주의 매력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조 새트리아니는 1956년 뉴욕 롱 아일랜드의 웨스트베리에서 태어났다. 14살때 누나로 부터 받은 기타때문에 그동안 익혔던 드럼을 포기하게된 조는 ‘칼플레이스’고등학교 때부터 록기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얼마후 조는 빌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작곡 등 이론을 배웠고, 버클리 음악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음악지식을 쌓았다. 그가 록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롤링 스톤스를 비롯한 몇몇 록 밴드들을 세션해 주면서부터이다. 그리고 86년 솔로 데뷔앨범 [Not Of This Earth]를 발표해 정식으로 록계에 등장했다. 첫 솔로작에서 조는 재즈적 색채강한 기타를 들려주어 그는 재즈퓨전 기타리스트에 분류되기 시작했다.

87년에 조는 첫 앨범보다 록적으로 기운 두 번째 앨범 [Surfing With The Alien]을 공개하였다. 또한 88년 6월 11일에는 샌디애고의 캘리포니아 극장에서 공연을 가지며, 명실공히 스튜디오와 라이브 모두에서 최고의 기타솜씨를 들려주었다.(이때의 실황은 그후 [Dreaming #11]으로 공개되었다)

89년에 조는 그간의 100% 인스트루멘틀 앨범 지향에서 그 자신이 직접 보컬까지 맡았던 앨범[Flying In A Blue Dream]을 발표하였다. 앨범활동 이외에도 조는 기타잡지 등에 이론 칼럼을 쓰고 학원강사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93년에 조는 딥 퍼플의 요청으로 탈퇴한 리치 블랙모어 대신 기타를 연주해주고 있어 그가 딥 퍼플 멤버로 정식 가입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조 새트리아니는 이론과 기술적인 면에서 언제나 미래적인 시도를 해 기타표현의 방법적 틀을 넓혀 왔다. 세밀한 코드보이싱,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멜로디라인, 뛰어난 테마 전개, 능란항 경과음 배치, 현란한 핑거링에 의한 부드러운 레가토 속주, 슬래핑을 사용한 색다른 화성구조, 디스토션의 양과 서스테인의 길이가 수시로 바뀌며 만들어내는 양질의 뛰어난 사운드 변조 등 그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만큼 다양한 인스트루멘틀 기타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실험적인 작법의 'The Snake', 'Hordes OF Locust', 핑거링 주체의 유창한 솔로가 담긴 'Back To Shalla-Bal', 'The Bells Of Lal Part 2', 리디안 스케일이 빛을 발하는 현대적인 라인의 'Flying In A Blue Dream' 등등 그의 기타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에게 ‘이상적인 연주’의 모범을 제시한다.

사 용 장 비
◇Ibanez 540 Radius, JS Model(픽업은 주로 Di Marzio PAF Pro, Di Marzio Fred를 사용), Ibanez JS6(배킹때 쓰는 메인기타)
◇Marshall JCM 25/50(100W),MK11(100W), Crown MacroTech 1200 Power Amp, Marshall Cabinets, Marshall 100W Mosfet Reverb Combo
◇Yamaha APX-10, BOSS DS-1 Distortion, Ibanez MDL-1 Delay Pedals(하나는 short delay용, 하나는 long delay용),Korg DT-1 Pro Digital Tuner, Ibanez SD R1000 Stereo Digital Reverb, BOSS CE-1 Stereo Chorus, T.C. Electronic 2240 Parametric EQ, Dunlop Cry Baby Wahwah Pedal, Chandler Tube Driver Digitech Smart Shift Pitch Transposer

글 / 조성진



뉴욕(New York) 롱아일랜드(Long Island) 태생의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는 다양한 연주법과 독창적인 기교를 바탕으로 기타리스트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또한 그는 너무나도 유명한 밴드 메탈리카(Metallica)의 기타리스트 Kirk Hammett과 프라이머스(Primus)의 Larry LaLonde, 그리고 실력파 기타리스트 Steve Vai의 스승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그만큼 그가 록계에 미친 영향은 상당한 것이며, 현재에도 대부분의 기타리스트들이 그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연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도 처음에는 스퀘어(Square)라는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때가 83년도였는데, 여름 휴가철을 맞이하여 멤버들이 휴가를 떠난 사이 기타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사운드를 담은 몇 개의 작품을 만들게 된다.  나름대로 훌륭한 곡이라고 생각한 조는 이 곡들을 발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직접 레이블을 설립한다.

이로써 독자적인 기타리스트로서의 음악 활동을 하게 된 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EP 앨범 [Joe Satriani]를 시작으로 86년에는 첫 정식 앨범인 [Not of This Earth]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젊은 기타리스트의 놀라운 테크닉과 다양한 연주법으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87년 이어서 발표한 [Surfing with the Alien] 앨범은 현재까지도 기타리스트들의 필청 음반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그의 창의적인 스타일과 독특한 핑거링이 돋보인 앨범이었다.

88년 미니 앨범인 [Dreaming No 11.]을 발표한 후 전설적인 베이시스트 Stu Hamm와 함께 89년 처음으로 보컬이 첨가된 앨범인 [Flying in a Blue Dream]을 발표한다.

그후 듣기 편한 멜로디와 인상적인 솔로가 돋보였던 작품인 92년 앨범 [Extremist]와 자신의 초기시절부터 공식 발표되지 않은 곡들을 모아놓은 두 장의 앨범 [Time Machine]을 발표하며 꾸준한 활동을 보인 조는 94년 잠시 딥 퍼플(Deep Purple)의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한다.

95년에는 에릭 존슨(Eric Johnson), 스티브 바이(Steve Vie)와 함께 각자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 [G3] 앨범을 발표한다.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는 최근앨범으로 98년도에 [Crystal Planet]을 발매한 바 있다.  지속적인 탐구정신과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해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조의 음악세계는 아직까지도 모든 음악인들의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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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기타리스트들의 '사부'로 인정받고 있는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 그는 현재까지 많은 기타리스트들의 귀감의 대상이기도 했고, 스승이기도 했고, 조언자이기도 했다. 그의 조언 또는 레슨을 받은 기타리스트들은 참 많기도 하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스티브 바이(Steve Vai)가 있으며, 메탈리카의 커크 해밋(Kirk Hammet),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 제프 타이슨(Jeff Tyson) 등이 있고, 기성 기타리스트들인 조지 린치(George Lynch), 토니 매칼파인 (Tony Macalpine), 심지어는 제프 벡(Jeff Beck) 과 같은 '원로' 거장 기타리스트들도 그의 조언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한마디로, 온갖 장르를 모조리 섭렵하여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 기타리스트이다. 록, 블루스, 재즈 등을 모두 넘나드는 그의 플레이의 기반은 왼손의 핑거링이 주가 되는 - 특히 해머링과 풀링- 레가토 프레이즈 지향이다. 또한 그는 스케일, 보이싱, 곡의 테마, 사운드 메이킹 등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감성과 두뇌파의 전형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퓨전 재즈 중심의 기타세계로, 중반에 들어서서 헤비메탈풍의 격렬한 기타와 블루스, 최근에 들어서서는 갖가지 기발한 모드와 어프로치, 이것저것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적절하게 혼합한 테크니컬한 기타로, 첨단 하이테크 기타세계를 완성하고 있다.

그는 56년 생으로서, 역시 '선대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프 왓슨(Jeff watson)과 동갑이다.  그는 어린 시절 리치 블랙모어와 지미 헨드릭스 등의 연주를 들으며 성장하였고, 이후에는 자니 윈터, BB King, 머디 워터스 등의 블루스에까지 심취하였다. 그 이후, 조는 좀 더 전문적인 음악수업을 위해 상당히 많은 뮤지션들이 거친 '버클리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의 전반적인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록 기타리스트로서의 앨범을 발표하며 공식으로 데뷔한 것은, 86년 [Not of this Earth]이다. 퓨전 재즈적인 색채가 짙은 이 앨범을 통해 그는 당시로서는 첨단을 달리는 갖가지 연주예술을 선보여 기성 록 기타 플레이어들의 찬탄을 한몸에 받았으며, 87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Surfing with the Alien]에서는 헤비메탈 풍의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이 앨범으로 인해 그해 그래미 상의 후보에 오름은 물론 [Guitar Player]지에서 최우수 록 기타리스트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89년 [Flying in a blue dream] 등을 발표하는 등 지속적인 실험을 하였으나 라이브 투어 중 한 열광적인 팬에게 자신의 기자재(악기와 이펙터 등)를 모두 도둑맞고 건강도 악화되는 불행을 맞았다.

92년 발표한 [The Extremist] 는 이와 같은 불행의 극복을 보여주는 것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93년에는 미발표곡과 라이브 등을 수록한 [Time Machine]이라는 두 장짜리 앨범을, 9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Joe Satriani]를 발표했으며 이 앨범은 블루스를 주로 한 스타일로 '새트리아니식 Still got the blues'라고 불리기도 했다.

97년에는 자신의 제자인 Steve Vai와 또 다른 신진 기타리스트 Eric Johnson과 함께 "G3 Live tour"를 거행했다. 3명의 뛰어난 기타리스트가 동시에 뿜어내는 그 압도적인 출력과 멜로디는 팬들이 열광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투어가 끝난 후 98년에는 [Crystal Planet]을 발표하고 현재는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고있다. 94년 탈퇴한 리치 블랙모어 대신 딥 퍼플의 라이브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 새트리아니는 앨런 홀스워쓰(Allan Holseworth), 프랭크 갬벨(Frank Gambale)과 함께 일렉트릭 기타계 전반에 걸친 대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이후의 플레이어들에 귀감이 되는 기타 아이템과 연주 기법들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그의 노력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기타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성장하는 조지 벨라스(George Bellas)나, 지속적인 실험정신으로 발전하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글 / Burning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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