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많은 시선을 모으고 있는 기타리스트들을 보면 그들의 스피드와 테크닉에 감탄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지나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주가 환영받는 때가 다시 오리라고 생각한다…내 경우 이제 나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타인의 그림자 속에 적당히 가려져 있고 싶을 뿐이다.”

70년대 하드록 기타의 상징적인 존재인 리치 블랙모어는 1945년 4월 14일 영국 웨스턴 슈퍼메어(Weston Super Mare)에서 태어났다. 11세되던 해의 생일날에 선물로 받은 스페니쉬 기타가 인연이 되어 기타에 몰두한 이래 행크 마빈(Hank Marvin), 스코티 무어(Scotty Moore)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카피시절을 거쳤다. 이후 60년대 초 함부르크로 건너가 세션맨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Heinz, Screaming Cord Sutch, Tornadoes 등등 많은 밴드에 세션으로 참가 명성을 떨치다가 존 로드의 권유로 런던으로 돌아와 그와 함께 그룹 딥 퍼플을 결성한다.

67년 여름 딥 퍼플은 데뷔싱글 'Hush'를 Top-5에 히트시키며 인기 록 그룹의 대열에 들어섰고, 리치는 데뷔앨범에서 74년 말의 [Stormbringer]까지 참여한 후 음악적 차이를 이유로 딥 퍼플을 탈퇴하였다. 이후 그는 75년 초 로니 제임스 디오(Ronnie James Dio)와 함께 레인보우를 결성, 본격 인스트루멘틀 하드록의 세계를 펼쳐 나갔다.

하지만 독선적인 리치의 성격 때문에 레인보우는 잦은 멤버교체를 되풀이해야 했고 이 때문에 록계에서 리치에 대한 입방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Rising], [Long Live Rock’n Roll] 등 록계에 길이 남을 앨범들을 완성하였다.

딥 퍼플 재결성으로 레인보우는 83년 가을 9집 앨범 [Bent Out Of Sharp]를 끝으로 해체되고, 리치는 제2기 딥 퍼플에 가입하여 다시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가 기대를 갖게 했으나 의외로 연주는 예전에 비해 진부해 팬들을 실망시킨 바 있다. 그는 또다시 멤버들과의 불화로 재결성된 딥 퍼플을 탈퇴해 레인보우를 조직해 딥 퍼플 멤버들에게 정면 도전장을 내걸기도 했다.

레인보우 이후에는 ‘No More Hard Rock'을 공표하며 캔디스 나잇(Candice Night)이라는 여성과 함께 블랙모어스 나잇(Blackmore's Night)을 조직해 포크 및 신비주의적인 형태의 아름답고 선율적인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언제나 도전적이며 전투적인 연주로 하드록 시대를 주름잡았던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세계는 소위‘정통 록기타(Orthodox Rock Guitar)’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셋 잇단 셔플리듬에 기초한 독자적인 피킹 스타일, 절도와 팽팽한 긴장감을 몰고 오는 스타카토, 위협적인 해머링, 격정적으로 표출되는 울림 큰 비브라토, 손버릇처럼 많이 쓰는 개방현 프레이즈와 분노하듯 떨어대는 과격한 아밍, 클래시컬한 감각을 볼 수 있는 피킹 아르페지오, 초킹한 상태에서 계속 같은 음을 쳐대는 주법 등 그가 록 기타계에 가져다준 선물들은 무시 못할 만큼 많다.

60년대에서 70년대로 이어지는 기타리스트답게 그 역시 1도와 5도 주체의 리프들을 애용했고, 솔로시엔 펜타토닉 스케일이 주가 되는 프레이즈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블루스 기타를 뿌리로 두고있는 만큼 솔로 진행시 쿼터초킹이나 하프초킹 등을 미묘하게 바꾸어가며 사용함으로써 블루지한 맛의 연주를 구사하기도 한다.

사운드메이킹에 있어서도 예민한 편이라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셀렉터 스위치를 리어-미들-프론트로 바꾸어가며 그때그때 곡의 분위기에 맞는 연주를 펼쳤고, 레인보우로 와선 좀더 내추럴한 음색을 선호해 깔끔하며 디스트가 적당히 걸린 톤을 만들어갔다.

한번 들어도 금새 익히기 쉬운 그의 인상적인 멜로디와 곡의 분위기를 서서히 고조시키는 강인한 집중력의 기타 세계는 딥 퍼플 시절의 'Highway Star', 'Smoke On The Water', 'Burn', 'Child In Time' 등과 레인보우의 'A Light In The Black', 'Kill The King' 등에서 만끽할 수 있다.


사 용 장 비
◇Fender Stratocaster(펜더를 쓰기 전까진 Gibson ES-335 TDC를 사용)
◇Marshall Amps
◇MXR Phase 100 등등



아마도 70년대 대학가에서 취미로나 본격 뮤지션을 지향하거나 그룹 사운드를 조직하여 합주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와 'Highway Star'를 처음 연주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당시 록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딥 퍼플의 음악은 절대적인 교과서 역할을 했고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리치 블랙모어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군림했다.

80년대에는 랜디 로즈의 기타가 살아 숨쉬는 오지 오스본의 'Mr. Crowley'나 'Crazy Train' 같은 곡들이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되었고, 80년대 후반 들어 메탈리카를 거쳐 90년대 너바나로 이어져온 이것은 소위 아마추어 그룹 사운드의 단골 연주 레퍼토리 계보이다.

리치 블랙모어는 일찌감치 록 기타의 모든 것을 정립해 놓은 지미 헨드릭스를 계승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클래시컬 어프로치를 가미해 많은 후배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절대적인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그만이 구사하는 개성 있는 연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2기 딥 퍼플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렉트릭 기타 주법의 발달과 록 씬은 형성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리치 블랙모어가 주도권을 잡은 2기 딥 퍼플이 록계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한 것으로, 그의 영향을 안 받은 기타리스트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오지 오스본의 랜디 로즈나 디오의 클레이그 골디, 데프 레파드의 비비언 캠블 등 일일이 거명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4연음이 주를 이루는 얼터네이트 피킹이나 과격한 아밍, 바로크 어프로치에 기반을 둔 아르페지오 등 이미 지미 헨드릭스가 잡아놓은 기본적 토대 위에 독특한 자신만의 개성을 접목하여 공격적이고 거친 록 기타 주법의 또 다른 스타일을 확립했다.

또 후에 등장하는 바로크 속주의 귀재인 잉베이 말름스틴이나 토니 맥칼파인 등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살아있는 록 기타의 전설로서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3기 딥 퍼플의 명곡인 'Burn'이나 레인보우의 'Kill The King', 'Different To Crue', 'Spotlight Kid', 'Death Alley Driver', 'A Light In The Black' 등에서 들려준 연주는 잉베이 말름스틴 이전에 이미 바로크 메틀의 기반이 확립된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75년 데이빗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가 설쳐대는(?) 3기 딥 퍼플을 탈퇴한 리치 블랙모어는 전 Elf 멤버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그룹 레인보우를 조직해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레인보우는 84년 전성기인 2기 멤버로 딥 퍼플이 재결성될 때까지 총 8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실력 있는 신인들이 거쳐간 스타 뮤지션 발굴의 산실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보컬리스트로 로니 제임스 디오, 그래험 보넷, 조 린 터너가 거쳐갔으며 키보디스트로 돈 에이리, 토니 캐리, 데이빗 로젠탈 등이 재직하며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후에 오지 오스본과 함께 한 밥 데이즐리나 2기 딥 퍼플 시절부터 호흡을 함께 해온 로저 글로브는 베이스로 리치를 서포트해 주었고, 제프 벡 그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더블베이스의 명인 코지 파웰, 브랜드 X를 거친 척 버지, 바비 론디넬리 같은 유명한 드러머 등 이름만 들어도 실력을 알만한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을 대거 배출했다.

하지만 그 까다로운 독재에 끝까지 그룹에 남아있는 멤버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항상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향해 무언가를 추구하는 그의 본능은 결국 [Perfect Strangers] 한 장의 앨범을 제외하고는 발표하는 앨범마다 음악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재결성 딥 퍼플에서도 스티브 모스에게 바톤을 넘겨주고 자신의 그룹 레인보우를 재결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단 한 장의 앨범 [Stranger In US All]에서도 일부 곡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삽입하는 시도를 빼고는 그다지 음악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많은 팬들을 실망시킨다.  97년에는 여성 보컬리스트 캔디스 나이트를 앞세워 중세 포크 음악을 들고 나와 팬들을 놀라게 한다. 르네상스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하고 전통 포크를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하는 등 기존의 리치 블랙모어 팬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폭의 음악적 변화를 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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