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8월 10일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근교의 한 농가 헛간에서 레오 펜더(Leo Fender)가 태어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전기제품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8살 쯤에는 피아노와 색소폰도 배웠다는군요. 일렉트릭 기타의 아버지로서의 소양을 이 때부터 착실히 쌓아갔던거죠.

대학에서는 상경계열을 전공해 경리실무를 익혔지만 이 때에도 전공공부보다는 집에서 라디오 고치는데 더 열심이었다는군요. 1934년에는 결혼과 동시에 회계사로 취업해서 일했는데 역시나 이 일에 염증을 느끼고 얼마 안가 그만두고는 캘리포니아의 풀러튼(Fullerton)에 라디오 수리점을 열었습니다. 전파사 아저씨가 된거죠. Fender radio service라는 이름의 이 전파사는 꽤 잘 돼서 금방 이름이 알려졌다니, 레오펜더의 라디오 수리 실력은 대단했나 봅니다.

1940년경에는 가게도 큰 건물로 옮기고 직원도 8명이나 두면서 사업을 확장하는 동시에 이제는 라디오 뿐만 아니라 소리에 관련된 모든 전기 제품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연주인들이 자신의 기타를 봐달라고 가져오거나 소리를 증폭시키는 문제를 의논하러 오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날 샌디에고에서 온 한 손님이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를 일렉트릭 기타로 개조해 달라고 의뢰합니다. 이 때 펜더는 T형 포드에서 떼어낸 자석을 이용해 마그네틱 픽업을 만들어냅니다. 현 하나에 자석 하나씩을 장착한 이 픽업은 나중에 브로드캐스터(Broadcaster, 후에 Telecaster로 이름이 바뀌게 됨)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형태로 되어있었습니다.

1943년에 레오 펜더는 독 카우프만(Doc Kauffman)을 만나서 둘이 함께 일렉트릭 솔리드 바디 기타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이 즈음에 연주인들의 요청에 따라 일렉트릭 기타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이걸 Radio Shop Guitar라고 불렀다는군요. 이 때만 해도 완전히 수작업의 커스텀 기타였고, 따라서 값도 꽤 비쌌겠죠.

1945년에 둘은 Kauffman & Fender라는 회사를 만들고 일렉트릭 랩스틸 기타(lap steel guitar,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주하는 방식)와 앰프를 생산합니다. 하지만 1946년에 카우프만은 회사를 떠나고 레오 펜더만이 남게 되어 드디어 Fender Electric Instrument Company가 탄생합니다.

"일렉트릭 기타라는 것은 그다지 전망이 밝아보이지 않았거든..내 판단이 틀렸던거지" - 후에 카우프만은 이렇게 회고했다는군요.

1949년에 Esquire이자 Broadcaster이자 결국에는 Telecaster가 되는 기타의 프로토타입(prototype, 원형)이 완성됩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구요? 잠시후면 드러납니다. 1950년에는 Esquire 모델이 생산됩니다. 이 기타에는 싱글픽업이 한 개만 달려있었고 네크에는 트러스로드가 없었습니다. 또한 이 모델은 대량생산 되지 않고 한정생산되었다고 하니, 요즘 소프트웨어의 베타테스트 버전 쯤이었던것 같죠?

에스콰이어를 시장에 풀어놓고 테스트 해보니, 네크가 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오는 네크에 트러스로드를 넣어서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죠. 또한 픽업도 하나를 더 장착하기로 결정합니다.

1951년 드디어 브로드캐스터(Broadcaster)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작품을 빨리 시장에 내놓고 싶은 마음에 펜더는 한가지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이 "Broadcaster"라는 이름이 등록상표로서 유효한가에 대한 조사가 없었던거죠. 51년 2월 20일, Gretsch 사로부터 전보가 옵니다. Gretsch에 이미 "Broadkaster"라는 등록상표의 드럼모델이 있으니, 펜더의 이 픽업 두 개 달린 기타의 상표는 위법이라는 내용이었죠. 펜더에서는 즉시(3일 후인 23일) 사과 편지를 보내고 결국 같은 해에 브로드캐스터의 상표를 "Telecaster"로 바꿉니다. 이 이름이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바로 그 텔레캐스터죠.

레오 펜더에게는 다사다난했던 이 해에 컬러텔레비젼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그러고 보면 텔레캐스터라는 이름이 당시 유행과 기술의 최첨단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 같죠? 지금에 와서는 똑같은 이름이 빈티지 스타일 기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걸 보면, 세상은 정말 숨가쁘게 돌아가는 것 같군요. 겨우 50년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죠..

1951년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에 레오 펜더는 세계 최초의 일렉트릭 베이스인 Precision Bass를 만들어내니까요. 게다가 레오 펜더는 51년 봄에 벌써 그 다음 모델의 개발(이게 바로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가 되죠)에 착수합니다. 이래저래 1951년의 레오 펜더는 슈퍼맨이었군요..  

사실 일렉트릭 솔리드 바디 기타와 일렉트릭 픽업의 "원조"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레오 펜더가 결코 이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발명해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리켄배커에서도 레오 펜더 이전에 이미 일렉트릭 픽업이 장착된 기타를 만들어냈죠. 따라서, "일렉트릭 기타는 레오 펜더가 발명했다."라는 말은 명백히 틀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 펜더가 일렉트릭 기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이유는 바로 "대량생산"이라는 키워드 때문입니다. 뭐 그냥 왕창 많이 만들어버리는게 대량생산은 아니죠. 거기에는 그에 따르는 마케팅과 생산능력, 품질관리, 유통망의 확보 등등의 골치 아픈 작업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대량생산이라는 이름 아래 이러한 "세기의 걸작"을 그나마 싼 가격에 구입해서 쓸 수가 있는 것이죠. 바로 여기에 레오 펜더의 위대함이 있고, 그래서 그가 일렉트릭 기타의 헨리 포드로 불리는 것입니다. 대량생산을 통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싼 가격에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 이것은 앞을 내다보는 지혜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한 번 저질러보겠다는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이후에도 레오 펜더는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54년 저 유명한 Stratocaster를 만들어 내고, 55년에는 앰프의 원조격인 Bassman을, 58년에는 Jazzmaster를 발표합니다. 이 재즈마스터는 오프셋 바디, 그러니까 바디의 홀쭉한 부분이 비대칭형으로 위치한 모양으로 특허를 받죠. 60년에는 Jazz Bass가 만들어집니다. 펜더 베이스의 대표적인 두 모델이 거의 10년차를 두고 만들어졌군요. 이 두 모델이 비슷하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둘은 꽤나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재즈베이스는 그 이름과는 달리 강하고 헤비한 사운드를 내서 헤비메탈에 많이 쓰이죠. 재즈에는 잘 안쓰이는듯..

63년에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Twin Reverb 앰프가 생산됩니다.
레오 펜더는 학생이나 가난한 사람들도 싼 가격에 일렉트릭 기타를 가질 수 있게 하는데도 꽤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56년에 아예 student model guitar라고 불리는 Musicmaster와 Duo-Sonic을, 62년에는 Jaguar를, 64년에는 초보자와 프로페셔널의 중간 단계를 위한 Mustang을 만들었습니다. 재규어와 머스탱은 90년대 락에 커다란 획을 그은 커트코베인(Kurt Cobain)에 의해 합쳐져서 재그-스탱(Jag-Stang)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죠.

1965년에 건강이 악화된 레오 펜더는 그동안 자신이 만들고 키워온 회사를 CBS에 넘깁니다. 그 후 20년 동안 펜더는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CBS의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그 한계를 드러냈다고 펜더사 스스로 평가하고 있군요.

결국 회사는 1985년에 당시 사장이었던 William Schultz와 그를 비롯한 투자가들에게 인수됩니다. 이로써 펜더는 다시 진짜로 음악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이 이끌게 됩니다. 이 시기가 묘하게도 깁슨이 매각된 1986년과 거의 일치하는걸 보면, 80년대의 헤비메탈 및 LA메탈의 열풍은 고전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던 두 회사에게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은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펜더는 앰프메이커인 Sunn과 기타메이커인 Guild 등을 인수합니다.
1987년에 펜더는 American Standard Stratocaster를 발표합니다. 동시에 캘리포니아의 코로나에 Fender Custom Shop을 설립하고, 멕시코의 공장에서는 싼 가격의 펜더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펜더라는 브랜드 아래 스탠다드를 주력으로 두고 그 아래로는 멕시코에서 싼 가격의 기타를 생산하고 그 위로는 커스텀 샵에서 고가의 고품질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제품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개인적인 잡담을 좀 쓰자면, "왜 펜더는 멕시코나 일본 같은데서 저가의 기타를 만드는걸까? 아무래도 품질관리가 더 어렵고 가격이 싼 만큼 질이 낮아서 그만큼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짓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설립자인 레오 펜더의 마인드가 바로 대량생산을 통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가격에 기타를 만드는 것이었으니, 그러한 정신이 아직도 이어져내려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러고 보면 역사와 전통이란 참으로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영원히 남아서 그 브랜드의 행동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 Swing Guit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