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결코 두려운 게 아니다. 그것은 곧 정신적인 면에서 더욱 성숙해져서 감정을 적절히 조절해 음악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왼손과 오른손으로 정통 록기타의 진수를 들려주는 게리 무어는 기성 기타리스트 모두가 부러워하는 살아있는 록기타의 화신이다. 1954년 6월 4일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게리 무어는 일렉트릭 기타를 10살 때부터 치기 시작했다. 처음 기타를 잡을 당시 그의 우상은 지미 헨드릭스와 제프 벡, 피터 그린 등이었다. 그는 이러한 기타리스트의 곡을 카피하며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16세가 되자 게리는 ‘Skid Row’라는 밴드를 결성해 정식으로 록계에 데뷔하였는 데, 이 당시 스키드 로우는 블루스와 하드록 소울 등이 섞인 음악을 연주하였다. 스키드 로우 해체 후 게리는 에릭 벨의 후임으로 그룹 씬 리지(Thin Lizzy)에 가입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게리는 이즈음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가장 많은 방황과 갈등을 겪고 있었는 데, 이 때문에 씬 리지에서도 그는 오래 있지 못하고 탈퇴하였다. 그리곤 자신의 독자적인 ‘게리 무어 밴드’를 결성해 73년 [Grinding Stone]을 발표하였다. 2년 후인 75년에는 재즈퓨전을 프로그레시브하게 연주했던 그룹 콜로세움Ⅱ에 가입, [Strange New Flesh](76)와 [Electric Savage], [WarDance](77) 등에 참여하게 된다. 그룹 콜로세움 투는 게리 무어를 맞아들여 인스트루멘틀 재즈록 지향의 뛰어난 음악세계를 한껏 과시할 수 있었다.

78년에 게리는 존 하이스먼, 돈 에일리 등의 콜로세움 친우들과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녹음작업에도 참여했다. 얼마 후 게리는 탈퇴한 브라이언 로버트슨의 후임으로 다시 씬 리지에 들어가 명반[Black Rose]녹음을 도왔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첫 솔로앨범 [Back On The Street]을 완성하기도 했다.

씬 리지의 앨범작업을 마친 게리는 다시 그룹을 탈퇴하고 79년에 드러머 코지 파웰의 첫 솔로앨범을 세션해 주며 때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가 80년에 ‘제트’레코드와 계약하고 그룹 G-Force를 결성했다. 현재까지도 록 역사의 명 그룹으로 기록되는 지 포스는 수많은 뮤지션과 팬들의 관심 속에서 셀프 타이틀의 데뷔앨범을 녹음하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제트 레코드가 도산해버리는 바람에 지 포스는 난관에 봉착되고 말았다. 결국 이 그룹은 제대로 활동도 못하고 해산되고 게리는 81년말 ‘버진’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고 이듬해에 명반 [Corridors Of Power]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 앨범을 시발로 게리는 본격적인 솔로 뮤지션으로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솔로 뮤지션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게리는 90년대로 들어와 그간의 헤비메틀 지향의 기타에서 벗어나 블루스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 첫 신호탄이 바로 90년의 앨범 [Still Got The Blues]이다. 이 앨범이후 게리는 완전히 블루스 뮤지션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게리 무어의 연주는 강력하고 어태키한 피킹과 지판을 짓눌러 버릴 것만 같은 정력적인 핑거링을 주축으로 초강력 에너지를 발산하는 프레이즈를 들려준다. 한때 그는 라이트핸드를 사용하지 않고 라이트핸드적인 프레이즈를 치며, 풀링 오프나 해머링을 멋지게 사용해 스피디한 애드립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형태의 프레이즈가 너무도 강렬해 때론 난폭하다는 인상을 줄 정도이다.

그는 헤비메틀 기타리스트이기 이전에 블루스 뮤지션이다. 그 때문에 그의 연주에선 고감도의 뜨거운 블루지함이 배어있다. 펜타토닉과 블루노트 스케일에 기반하여 마이너적인 느낌으로 음을 진행시킨다. 그외 디미니쉬와 도리안 등도 사용해 독자적인 멜로디라인을 창출한다. 거기에 그 특유의 다양한 초킹들이 얽혀 록의 정통성을 더욱 짙게 하고있다.

그는 언제나 최고의 음색을 추구해왔다. 콜로세움 Ⅱ에서 오늘날의 'Still Got The Blues'에 이르기까지 그의 기타 톤은 앰프자체의 게인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에선 가히 당대 최고중의 하나라 할만한 것이다. 공격적인 위협감과 우수어린 정서를 모두 뛰어나게 표현하는 그의 연주야말로 록기타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  글 / 조성진



게리 무어(Gary Moore; 1952년 4월 4일 북아일랜드 Belfest 출생)는 자신의 그룹은 물론 많은 다른 사람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Heavy Metal에서 Blues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그만의 피가 끓는 듯한 뜨겁고 처절한 연주를 들려준 기타연주자 겸 가수이다.

1. 10대 소년 Gary Moore와 Skid Row
그는 7세 때부터 부친의 권유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며 그러던 중 Shadows의 음악에 깊은 감명을 받고 11세 때 기타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67년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위해서 Dublin으로 이주한 Gary Moore는 Skid Row(미국의 Heavy Metal 그룹인 Skid Row와는 다른 그룹)에 가입하게 되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음악 여정에 막대한 영향을 줄 두 사람 -이후 그룹 Thin Lizzy에서 음악적 교류와 우정을 다지게 될 필 리뇻(Phil Lynott, v; 당시엔 아직 베이스를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Skid Row를 Opening 밴드로 세워 후원해 줬으며 Gary Moore에게 직접 자신이 사용하던 기타를 선물로 주며 격려했던 Fleetwood Mac의 피터 그린(Peter Green)- 과의 운명적 만남을 가짐과 동시에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그의 재능을 확인 받게 된다.

Phil은 Thin Lizzy의 결성을 위해 Skid Row를 곧 떠나게 되어 Gary Moore는 나머지 멤버인 브랜던 쉴즈(Brendan "Brush" Shields, 베이스), 노엘 브릿지모어(Noel "Nollaig" Bridgemore, 드럼)의 3인조로 첫 앨범 [Skid]를 1970년 Peter Green의 소개로 CBS에서 발매한다. 이어서 71년 [34 Hours](이 앨범의 녹음을 34시간에 마쳐서 붙여진 제목이라고 한다)의 발표와 함께 유럽 공연을 가졌으며, 아일랜드 잡지 [New Spotlight]에서 그 해 최고의 밴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다음 해 3번째 앨범을 녹음했으나 발매 전 Gary Moore가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하는 바람에 앨범 발매가 취소되어 90년에야 겨우 발매되게 된다.

2. 20대 청년 Gary Moore의 다양한 음악 체험
Skid Row를 탈퇴한 Gary Moore는 73년 피어스 켈리(Pearse Kelly, d), 존 커티스(John Curtis, b)와 함께 그의 첫 솔로 앨범 [Grinding Stone]을 발표하였으나 큰 주목은 받지 못한 채 Phil Lynott의 권유로 당시 공석이던 Thin Lizzy의 기타연주자 자리를 얻게 된다.  Thin Lizzy의 74년 앨범 [Nightlife]에서 Gary Moore가 참여한 것은 'Still in Love with You' 단 한 곡이지만, 이 곡은 그의 애절한 연주 덕분에 처음으로 대중적인 이름값을 얻는 계기가 된다.

Gary Moore는 다시 Thin Lizzy를 탈퇴하여 Eddie Howell의 [Gramophone]에 세션으로 참가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그룹 Colosseum의 존 하이스먼(Jon Hiseman, k)을 만난 그는 Colosseum II라는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여기서 그는 그와 함께 여러 그룹을 방랑하며 자주 마주치게 될 돈 에어리(Don Airey, k)와 활동한다. Colosseum II와 76년 [Strange New Flesh], 77년 [Electric Savage], [War Dance]를 제작하였으며 이 앨범들은 비록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실험성 강한 명작들로 인정받는다.

78년 다시 Phil Lynott과 만난 Gary Moore는 2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강한 Hard Rock 스타일의 [Back on the Streets]는 이 앨범에 수록된 너무도 유명한 'Parisienne Walkways'와 함께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79년 Gary Moore의 앨범에 우정 출현해 큰 성공을 거두게 해준 Phil Lynott은 이번에는 그를 다시 Thin Lizzy에 초대하여 명반 [Black Rose]를 완성시킨다. 하지만 투어 도중 말없이 사라진 Gary Moore는 Phil Lynott과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만다. 이 시기에 Gary Moore는 역시 방랑 연주인이자 명 드럼연주자인 코지 파웰(Cozy Powell, d)의 솔로 앨범 [Over the Top]에 일부 참여한다.

80년 Gary Moore는 G-Force란 프로젝트를 결성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채 Emerson Lake & Palmer 출신의 그렉 레이크(Greg Lake)의 솔로 앨범에 참여하고 투어에도 동참한다.

3. 30대 Gary Moore의 정열적인 Heavy Metal
82년은 Gary Moore에게 있어선 가장 바쁜 해이자 솔로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해이다. 먼저 강력한 Heavy Metal 사운드와 감미로운 Rock Ballad가 어우러진 그의 앨범 [Corridors of Power]가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렸으며, 동시에 [Live at Marquee] 앨범 녹음, Greg Lake의 [Manoeuvres], Cozy Powell의 [Octopuss]에도 참여하여 모두 좋은 성과를 거뒀다.

[Corridors of Power]의 성공으로 일본에서 공연을 마친 Gary Moore는 당시의 실황인 [Rockin' Every Night]을 83년 일본에서만 발매한다. 동시에 Thin Lizzy의 고별 공연에 우정 출연해 주기도 한다. 84년 소련에 의한 KAL기 격추사건을 규탄한 'Murder in the Skies'와 그의 두 번째 히트 발라드 'Empty Rooms'가 수록된 [Victims of the Future]가 발매되었으며, 그에 따른 세계 순회 공연을 내용으로 한 [We Want Moore]가 발매된다. 이후 Phil Lynott과 화해한 Gary Moore는 공동작업으로 EP [Out in the Fields]를 85년 발표하지만 다음해 Phil의 요절로 결국 두 사람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같은 해 발표된 [Run for Cover]에도 수록되었다.
87년에는 아일랜드적인 색채가 강한 [Wild Frontier]를 발표하였으며, 89년에는 블루스의 거장 Roy Buchanan의 명곡 'Messhia Will Come Again' 커버곡이 실린 [After the War]를 발표한다.

4. 40대 Gary Moore의 Blues로의 회귀
87년 [Wild Frontier]서부터 기존의 Heavy Metal로부터 탈피하려는 변화가 엿보이더니 마침내 90년 [Still Got the Blues]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Blues로의 회귀라는 커다란 변화를 단행하였다. 앨버트 콜린스(Albert Collins)와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게스트로 참가한 이 앨범의 결과는 예상외로 좋아서 음악적으로 호평을 받았음은 물론 커다란 상업적 성공도 거두게 된다. 앨범 발표 후의 공연에서는 앨버트 킹(Albert King)까지 가세하여 Albert Collins와 함께 2명의 Albert와 같은 무대에 서기도 하였다.

92년 [After the Hours]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번엔 비비 킹(B.B. King)과 Albert King이란 2명의 Blues 'KING'이 참가해 주었다. 거장들이 동참해준 멋진 실황은 93년 [Blues Alive]로 발매되어 다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90년대 중반 Gary Moore는 헌정 앨범에 참여하거나 과거의 거장들과 활동하는 등 약간 독특한 활동으로 Blues음악을 추구한다. 93년 폴 로저스(Paul Rodgers)가 주도한 무디 워터스(Muddy Waters) 헌정 앨범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95년에는 오래 전
그가 음악을 시작하던 무렵 큰 도움을 준 Peter Green에 대한 헌정 앨범 [Blues for Greeny]를 스스로 만들어 바치기도 하였다.

94년에는 Cream의 옛 멤버들과 BBM을 결성, [Around the Next Dream]을 발표하였다. 95년 베스트 앨범인 [Ballads & Blues 1982-1994] 이후에 발표된 앨범으로는 역시 베스트 앨범인 [Out in the Fields : The Very Best of Gary Moore](98)와 [Collection](99)이 있으며, 정규 앨범으로는 [Dark Days in Paradise](97)와 [A Different Beat](99) 등이 있다. 여기서는 정통 Blues보다는 Pop, Hard Rock, Jazz 등의 다양한 요소를 다시 도입해보려는 시도가 엿보이지만 전성기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글 / 박준택    - 음악 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