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은 70년대 혜성같이 등장한  하드록/헤비메틀 그룹으로, 헤비메틀의 시작으로 불리는 (비록 헤비메틀이란 명칭이 레드 제플린 이후에 등장하긴 했어도) 야드버즈(Yardbirds)에서 파생된 그룹이다.

1968년 야드버즈의 창단 멤버인 케이스 렐프(Keith Relf)와 제임스 메카티(James McCarty)가 듀엣 결성을 위해 탈퇴한 후, 리드 기타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베이시스트인 크리스 드레자(Chris  Dreja)는  밴드의  이름을 걸고  투어준비를 하고, 합스트위들(Hobbstweedle)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를 영입하게 된다.

프로젝트 작업을 위해 크리스마저  밴드를 떠난 후,  지미 페이지는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를 새로운 베이시스트로, 존 본햄(John  Bonham)을 드러머로 밴드에 가담시킴으로써 라인업을 구성한다. 뉴 아드버즈(New Yardbird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그룹의 이름을 레드 제플린(Led Zeppelin)(68)으로 바꾸고, 아틀란타 레코드사(Atlantic Records)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셀프 타이틀의 데뷔앨범(69)을 발표한다. 블루스적인 성향이 짙게  남아있는 'Babe, I'm  Gonna Leave  You'를 비롯하여 'Good Times-Bad Times', 'Dazed and Confused', 'Communication Breakdown' 등의 곡들이 수록된 첫 앨범은 발매 2개월만에 U.S 톱 텐에 올랐고, 이에 힘입어 영국 공연과 전미 투어중에도 앨범 작업을 하여 69년 10월 [Led Zeppelin II]를 발표한다.

두 번째 앨범 또한 발매 두 달만에 미국 차트 톱에 올라 7주 동안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움은 물론, 메인 리프가 돋보이며 록의 고전이란 평을 받는 'Whole lotta love'를 싱글 차트 4위까지 올리는 기염을 토한다. 영국 포크(British Folk) 음악적인 색채와 함께 더더욱 깊어진 레드 제플린의 사운드는 70년 10월 발매된 [Led Zeppelin III]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레드 제플린 음악의 뿌리로 볼 수 있는 블루스 명곡 'Since I've been loving you'를 필두로 하여 그들이 심취해 있던 포크와 신화의 결실은 [Led Zeppelin IV](71)에서 극대화된다. 이 앨범은 헤비메틀 발라드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받는 'Stairway to Heaven'을 비롯해, 로버트 플랜트의 카리스마적 보컬과 공격적인 하드록이 유감없이 발휘된 'Black Dog'에서 포크음악인 'The Battle of Evermore'까지 레드 제플린의 음악적 다양성을 드러난 역작이 라 할 수 있다.

'Starway to Heaven'은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방송국 역사 이래 가장 많이 연주되었으며, 앨범이 US 톱의 자리에  등극되지도 않았지만 2년여 동안 16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쾌거를 기록한다. 4집 앨범 이후 이들은 인기수위 조절의 일환으로 여러 공연에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대규모 공연장으로 활동의 범위를 집중시킨다. 72년 투어를 마친  레드 제플린은 73년 [Houses of the Holy]라는 5집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록과 포크에 펑크(funk)와 레게(reggae)를 가미한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이었고, 순식간에 US와 UK 넘버원 차트에 진입한다.

이후 레드 제플린은 스완 송(Swan Song)이라는 자신들의 레코드사를 세우고,  자신들의 앨범을 비롯해 데이브 에드먼드(Dave  Edmunds), 베드 컴퍼니(Bad  Company), 프리티 씽즈(Pretty Things) 등 여러 뮤지션들의 앨범을 출반했다. 1975년 스완 송에서의 첫 앨범인 [Physical Graffiti] 역시 US와 UK에서 동시에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리스에서 휴가를 보내던 로버트 플랜트의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대규모의 전미 투어가 취소되었고, 레드 제플린은 한동안 휴식기에 들어갔다. 76년 [Presence]로 활동을 재개한 레드 제플린은  3년 전인 73년 6월 메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공연에 바탕을 둔  실황녹음 앨범 겸 영화  [The Song Remains the Same](76)을 발표하고, 1977년 봄부터 미국 순회공연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로버트 플랜트의 6살  난 아들이 갑작스레 죽음으로써  공연은 취소되고, 로버트 플랜트의 탈퇴설, 밴드의 해체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들은 한동안 활동을 중지하게 된다. 1979년 [In Through the Out Door]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지만, 80년  9월 25일 술잔치 후 구토제 과다 복용이 사인이 되어 존 본햄이 세상을 떠나자 이들은 해체를 선언한다.

82년 지미 페이지는 생전에 존 본햄이 녹음해 두었던 드럼 솔로곡 'Bonzo's  Montreau'를 포함한 미발표곡들을 모은 편집앨범  'Coda'를 발표한다. 멤버들은 연주,  솔로 앨범 녹음, 프로듀서의 길을 걷는 등 각자의 활동을 하면서, 간간히 예전  레드 제플린 때의 음악을 박스 세트, 멀티디스크 세트, MTV 언플러그드(MTV Unplugged)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은 확실히 헤비메틀 밴드이다. 그러나 그들은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음악을 단지 고음역의 보컬과 화려한 연주 리프로 폭발적으로만 연출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영국 민속음악을 비롯한 다른 여러 장르의 음악과 신화, 신비주의를  그들의 사운드에 융화시킨 그룹이다.

밴드에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계와 거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레드 제플린은 팬들과의 교감을 오직 공연과 앨범을 통해서 이루어갔다. 또한 인기곡을 싱글로 출반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앨범 위주의 활동을 펴 더더욱 헤비메틀의 전형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개성이 다양한 4인의 멤버들이 전혀 불협화음 없이 완벽한 하모니로 밴드의 신화를 이뤘다는 면에서는 더더욱 여타 록밴드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음악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