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錢 대통령 줄줄이…민나 도로보오?  ]

청렴성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웠던 전임 대통령이 수뢰 혐의를 받고 검찰에 소환되는 장면을 TV로 보던 어떤 사람이 “하관이 밭더니 역시 말년 운이 나쁘네. 이 무슨 불행인가?” 하고 혀를 찼다. 그러자 곁에 있던 부인이 말했다.

“흥, 그래도 저분들은 행복한 거예요. 돈 없는 우리네 서민이 불쌍하지.”

부인은 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우선 데자뷔(deja vu)이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에, 차떼기다 뭐다 하면서 야단법석을 피운 사례가 한두 개가 아니다. 거기다 사건화하지 않은 물밑 수뢰사건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서민들은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공직자의 재산신고가 신문에 공표될 때마다 평생 공직생활만 했다는 일부 공무원들이 어떻게 공무원 월급으로 몇 십억 원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는지, 또 누가 뇌물을 먹었다고 잡아넣는 직업을 가진 일부 공무원의 재산은 왜 그렇게 많은지 말이다.

언젠가 부패방지 시민단체를 방문했더니 그곳 총무가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더미를 가리키며 “저게 모두 위조꾼 때문에 자기 땅을 빼앗긴 사람들의 서류인데, 재판에 가면 십중팔구 집니다” 하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총무는 땅 주인은 수수료 정도나 내놓지만, 위조꾼은 땅값의 절반을 뚝 잘라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판사도 위조꾼 쪽을 편드는 것이라고 총무는 말했다. 어느 정도 사실인지 확인해본 일은 없고, 또 있더라도 일부 사례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대한민국, 아주 썩었습니다” 하던 그 총무의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문제가 된 전임 대통령은 취임 2년째에 “털어도 먼지 안 나는 시민, 누가 좀 보자고 해도 오금 저리지 않는 떳떳한 시민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자던 분이다. 그런데 검찰에 소환되고 말았으니 언론마다 논객들이 때를 만난 듯 ‘공자님 말씀’으로 그를 매도한다.

그러나 서민들은 반드시 그런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해방 후 “민나 도로보오(모두 도둑놈)”라는 일본어가 유행한 일이 있는데, 사실 서민들의 눈에는 지금도 높은 사람들이 ‘민나 도로보오’로 보인다. 걸리면 ‘실패한 도로보오’요, 걸리지 않으면 ‘성공한 도로보오’일 뿐이다.

전임 대통령이 ‘실패한 도로보오’가 된 이유에 대해 이 분야에 좀 밝다는 어떤 사람은 술자리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첫째, 자기를 보호해줄 후계구도를 만들지 못했다. 둘째, 뇌물은 역대 경험과 노하우가 많은 재벌기업에서 받아야 탈이 없는데 중소기업으로부터 받았다. 셋째, 밑에서 받아 위로 올리는 수뢰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보호막이 생기는데 직거래를 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 받는다는 것이고, 실패한 도로보오와 성공한 도로보오의 차이는 오직 탈이 없도록 가려 받는 기술의 차이뿐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서민들은 전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보복이라는 야당적 주장까지 수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의 ‘공자님 말씀’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부패는 구조적

못 먹는 서민이 불쌍하다는 그 부인의 말처럼 사실은 서민도 그 ‘도로보오’들이 내심 부러운 것이다. 아니 몇 십억 원이 생긴다면 그까짓 감옥에 못 갈 것이 뭐냐,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처자식은 편히 먹고 살 것 아니냐는 정서를 가진 서민들이 꽤 있다. 정신이 비뚤어졌다고 욕할 것만도 아니다.

글쎄, 옥살이를 하고 나와 떵떵거리며 잘사는 분들이 한둘인가? 그런 사례를 지켜보면서 서민들은 자기의 박복한 신세 한탄과 팔자타령을 한 것이 또 한두 번인가 말이다.

부패는 매우 구조적이다. 이를테면 어떤 고위층이 뇌물을 받으면 그 아내가 행복해지고, 그 아들의 값비싼 수업료를 받는 과외 선생도 행복해지고, 팁을 받는 운전사도 행복해지고, 명절 떡값을 받는 그 아파트의 수위도 행복해진다. 누구 말처럼 이러한 ‘트리클다운이론(trickle-down theory)’에 의해 우리 경제가 굴러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그렇게 가외 비용이 들어가면 그만큼 물건 값이 비싸지고, 그에 따라 나라의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잃어 경제가 추락하니 부패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과 캠페인이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캠페인을 벌이던 대통령이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갑자기 나타난 현실이란 없는 것이며, 오늘은 다만 어제의 결과일 뿐이다. 실상 우리 사회의 부패는 그 뿌리가 꽤 깊다.

가령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당 고종으로부터 나당연합군 사령관에 임명되자 주변의 친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이제 하늘이 이 늙은이에게 부귀를 주려 하시는구나.”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한반도에 나가면 갖다 바치는 뇌물로 이제 한밑천 잡게 되었다는 감탄사인 것이다. 외직 중 가장 물이 좋다는 평양감사로 발령받은 사람이 조선조 500년 동안 1,000명을 훨씬 넘는다. 그래서 평균 보직기간이 6개월이 채 안 된다. 왜 이렇게 많은 평양감사가 나왔던 것일까?

물 좋은 자리이니 자주 갈아줘야 위에서도 인사 청탁금을 자주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조의 과거제도는 말기로 내려오면 이미 타락해 5만 냥 가량 주고 ‘정답’을 사야 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 같은 이는 하버드에서 석사,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인데도 도미하기 전 과거시험을 볼 때마다 낙방했다.

‘정답’을 따로 파는데 저 혼자 답안지를 써봐야 되지 않는 것이다. 또 과거에 합격해도 보직을 받으려면 거금을 따로 상납해야 했다. 그러니 신임 사또가 고을에 부임하면 날마다 백성들을 잡아들여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하고 볼기를 쳤는데, 그건 들어간 본전과 이자를 평균 임기 2년 반 동안 뽑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부패는 더욱 본격화했다. 자유당 때는 동회에 호적등본 같은 것을 떼러 가도 ‘급행료’를 주지 않으면 시간에 맞출 수 없었다. ‘촌지’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관급공사를 위시해 관이 허가를 내주는 사업은 뒷돈을 주지 않고는 일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토건업의 경우 관급공사의 몇%가 상납용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또 일부 현상이었겠지만, 장관 자리를 얻는 데 얼마, 장군 자리를 얻는 데 얼마, 교수 자리를 얻는 데 얼마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정당의 공천장사도 있다. 재벌의 비자금을 정기적으로 받는 ‘떡값검사’라는 유행어도 생겼다. 제약회사도 약품을 팔기 위해 의사에게 상납한다. 방송국 PD가 연예인으로부터 금품을 받는다는 뉴스도 나온다.

심지어 학교 교장이 학생들의 교복 공동구매에서도 무언가를 챙긴다. 놀라운 것은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면 대대적으로 ‘국민성금’을 걷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성금을 걷어 나랏일을 해결하는 선진국을 필자는 본 일이 없다.

국민에게 걷은 세금이 있는 이상 나랏일이면 의당 국가 예산에서 써야지 왜 언론사 등을 앞세워 성금을 걷는가? 이는 조선총독부가 ‘애국성금’이니 뭐니 하며 조선인을 쥐어짜던 일제 잔재를 해방 60년이 넘도록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 위상에 청렴도 못 미쳐

들리는 말로는 홍수가 난 피해지역의 수재민들은 성금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라면 등 눈에 보이는 싸구려 물품만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 국민들에게 걷은 그 막대한 성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아는 국민은 별로 없다. 모금 보도만 열심히 나오고 그 뒤는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심이 줄어든 사이에 관계자가 ‘슬쩍’ 한다는 말도 있던데, 아마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5공 때 200억 t의 물이 저장된 북한 금강산댐의 수공을 막아야 한다면서 걷은 평화성금을 당시 대통령이 꿀꺽했던 전례가 있다. 고위층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복지기금을 ‘슬쩍’ 한 말단 공무원이 감사원에 적발됐다는 뉴스도 나온다.

높든 낮든 자리에 앉아만 있으면 이렇듯 착복하니 서민의 눈에는 ‘민나 도로보오’로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부정부패와 비리로 엮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수치로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가 바로 그것이다. 경제적 위상으로 보면 12위 정도가 제자리일 듯싶은데, 2008년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국가별 순위는 40위였다.

좀 더 규범적인 일본은 18위로 한국보다 낫지만 역시 경제적 위상에 비하면 순위가 좀 떨어지는 편이고, 같은 아시아라도 대만은 39위, 그리고 조조의 아버지가 100만 냥을 주고 승상 자리를 샀다는 식의 오랜 부패 전통을 갖고 있는 중국은 72위다. 그러고 보니 청렴도가 높은 나라는 대부분 구미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싱가포르와 홍콩의 순위는 비교적 높으나 이들 나라는 규모가 작은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예외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덴마크·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북구 국가들이 최상위권이고,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네덜란드·영국·아일랜드도 상위권이며, 캐나다·미국도 그 다음 권에는 든다.

한국사회에서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발각되지 않으면 청백리이고,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발각되지 않으면 도덕군자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발달한 것은 상황을 잘 모면하는 임기응변술이고,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거짓말 기술이다. 가령 나이 든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6·25 전에 금송아지를 갖지 않았던 친정집이 별로 없다.

그럴듯하지 못한 아버지의 직업을 정직하게 말하는 딸도 별로 없다. 수뢰사건에 걸린 사람치고 돈을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데도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다고 말하는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시인하는 연예인도 별로 없다. 논문을 표절했다고 시인하는 교수도 별로 없다.

인사청문회 같은 데서 땅투기를 했다거나 위장전입을 한적이 있다고 시인하는 고위층도 없다. 모두 거짓말의 달인과 오리발의 명수 같다. 그런데 뇌물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이 거짓말이 또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는 <하멜표류기> 연구서를 집필한 일이 있는데, 그 저자인 하멜의 <조선왕국기>를 번역하다 “코레시안(코리언)은 훔치고 거짓말을 잘하며 속이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은 되지 못합니다. 남을 속여 넘기면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주 잘한 일로 생각합니다”라는 대목을 발견했다. 이것은 본래 출간을 위해 썼던 책이 아니고, 자신이 근무했던 화란 동인도회사로부터 밀린 월급을 타내기 위해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의 하나로 제출했던 원고가 나중에 책으로 출간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성이 높은 글이다.

그가 조선에 표류한 시기는 1653년이었다. 이미 그때도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잘했던 모양이다. 비단 1653년께만 거짓말을 잘했겠는가? 그 전부터도 주욱 그래왔겠지. 그리고 이 좋지 못한 전통이 주욱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말이다.

지정학적 원인

그럼 왜 한국인은 하멜의 표현처럼 거짓말을 잘하는 민족이 되었을까? 지정학적인 데서 그 원인을 찾는 이도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의 중심이었던 중국 대륙에서 무엇이 바뀔 때 그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한반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도 그렇고, 권력도 그렇고, 문화도 그랬다.

중국의 인준을 받지 못하면 왕권이 흔들렸다. 삼국시대에는 당나라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가 망했고, 신라는 그 영향 아래 놓였다. 고려 때는 자주성을 회복한 듯했지만 말기에는 원나라 지배를 받았고, 조선조는 아예 처음부터 명나라 밑으로 들어갔다. 중간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외부의 침입이나 영향에 의해 모든 것이 일시에 바뀌는 세월을 겪다 보니 중요해진 것은 삶의 원칙이 아니라 살아남는 요령 같은 것이었다. 그 요령이나 임기응변은 거짓말과 통한다. 세월과 함께 외부의 권력발전소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해방 후 미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재채기를 하면 한국에서 폐렴이 걸린다고 했는데, 이것은 경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것들도 그랬다. 외부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미술 같은 것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어떤 화풍을 정착시켜 꽃도 피우기 전에, 가령 남종화 같은 것이 중국에서 새로 생겨나면 그에 따라 한국에서도 남종화를 그려야만 했다.

한국의 미술적 특징이 ‘서민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어떤 화풍이 정형화될 때까지 계속 밀고 나가지는 못했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외부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지정학적 원인이 한국인을 임기응변의 달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같은 동양 국가인 일본은 기독교 문화의 전통 같은 것은 없지만 우리와 달리 외부의 침입이나 영향으로부터 보호되는 지정학적 이점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내전은 많았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는 외부의 침략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탓에 일본인은 우리네 같은 임기응변이나 요령보다 정직성 같은 삶의 원칙을 더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에서는 요령이나 임기응변이 칭송받을 일은 아니다.

요령·임기응변·적당주의·거짓말은 다 부정부패와 비리로 향하는 중간 역의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원칙을 준수하는 일본사회도 관료나 정치인의 뇌물수수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가 18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렇게 보면 청렴도는 기독교적 문화나 원칙 중시와 같은 문화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화란 오랜 시간이 남긴 생활의 흔적 같은 것이다. 그 시간은 적어도 100년, 200년 혹은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장시간에 걸쳐 형성된 문화를 단 몇 해 안에 바로잡기는 어렵다. 개인의 흡연 습관 하나를 고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국민의 도덕성을 단시일에 바로잡는다는 것이 용이하겠는가?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겠는가? 살던 집이 낡으면 한국인은 확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을 좋아하며, 일본인은 해마다 조금씩 수리해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10년 후 비교해 보면 한국인이 지은 새집은 10년 동안 다시 헌 집이 되어가고, 일본인이 수리한 헌 집은 조금씩 새로워져 결국 비슷해진다는 말이 있다.

부패구조의 청산에 관한 한 한국인이 좋아할 혁명적 방법은 없다. 혹자는 권력형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감사원을 국회로 옮겨 행정권력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국처럼 국회 상임위의 청문회를 통해 이를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혹자는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역할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패 청산을 위하여

그러나 감시와 견제의 기능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감시가 심하면 비리는 더 은밀하고 교묘해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뇌물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18세기의 실학자 박제가는 <북학의>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의 벼슬은 녹봉이 적은 까닭에 큰 벼슬, 작은 벼슬을 막론하고 죄다 권세로서 먹을 것을 만든다…. 권세가 있는 자리는 비록 작은 벼슬이라도 부자가 되는데 이것은 뇌물 때문이며, 권세가 없으면 비록 대신이라도 다만 규정된 녹봉만 바랄 뿐이다. 이것으로는 처자식을 부양하기에도 애시당초 부족하다. 또 지방 관원은 정해진 녹봉이 없다.”

이러니 뇌물을 안 먹을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지방의 사또는 중앙의 임금이 내려 보내는 명목상의 쌀가마니라도 있었지만, 사또 밑의 이방 이하는 아예 녹봉 자체가 없었다. 그렇게 알아서들 먹고 살라고 했으니 가렴주구의 명분을 나라에서 만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았는지 우리나라는 지금도 공무원들의 월급이 상대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니 쥐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가욋돈을 만들지 않으면 품위 있는 생활을 해나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우선 이런 점을 개선해야 하고, 둘째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높은 사교육비 같은 것 말이다. 사실 비리를 저지르는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 자식들의 사교육비가 꼽힌다.

또 때에 따라 몇 배씩 폭등하는 아파트나 땅 투기도 큰 문제다. 이렇게 소수의 가진 자만 불로소득하게 하는 괴상한 사회구조를 만든 선진국이 있는가? 도대체 작은 아파트 한 채에 십 몇 억 원씩 하는 것이 한국 실정에 맞는 일인가? 그럼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집을 장만하라는 것인가?

대학 등록금은 왜 임금이 높은 일본보다 비싸야 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감시와 견제 기능만으로 부정부패를 근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아무리 제도를 완벽하게 만들어 놓아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근절은 어렵다. 비리는 항상 그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기생하는 까닭이다.

그러니 필자의 생각으로는 혁명적 방식이 아니라 해마다 헌 집을 조금씩 고쳐 나가는 점진적 개선 방식을 택해 감시와 견제장치도 만들고 제도도 고치고 한편으로는 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의 의식을 바꾸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개량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다음 세대 혹은 그 다음 세대에 투명한 사회가 도래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일 사족 하나는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청렴성이 생산성을 높여주는 정답일까 하는 역설적 의문이다. 물론 목표로서는 그것이 정답이다. 그래서 참여정부 시절의 전임 대통령은 소장학자들이 쓴 책을 읽어보고 청렴성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는 당시 신문들의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사례나 이론을 원용해 청렴성을 강조한 그 저서들이 과연 우리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깊이 고찰한 끝에 나온 결론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목표로서는 정답일지 모르나 그 실천에서는 아닐 수 있다. 진짜 투명사회가 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세대에는 어려울지 모른다.

우리네 생활에는 아직 기독교적 문화가 뿌리내린 것도 아니고, 삶의 원칙을 지키는 문화 같은 것도 자리잡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투명사회가 되기까지 우리는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는가? 구조도 개선되지 않고 의식도 바뀌지 않았는데 무조건 투명성만 강요한다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부수입이 생기지 않으면 일하는 신명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련한 가게 주인은 현금을 관리하는 상점 여점원의 부정을 눈치채도 큰돈이 아닌 1만∼2만 원 정도의 ‘삥땅’은 그냥 눈감아준다고 한다. 그 맛에 여점원은 열심히 일하는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약간의 부패는 눈감아주면서 대신 일을 독려하는 것이 생산성을 더 높이는 길인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생산성은 떨어져도 투명성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에 대해 정책결정자는 깊이 고민한 끝에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패가망신’ 운운하며 청렴성과 도덕성을 강조했던 전임 대통령처럼 생산성도 제고하지 못하고 부패구조도 청산하지 못하면서 그 자신이 먼저 패가망신하는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출처 : Joins   ( 글 : 강준식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