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여(八餘)와 팔부족(八不足)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와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을 잇는 ‘혜음령’이란 고개가 있다.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몽진(蒙塵)할 때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맞으며 혜음령을 넘는 장면이 나온다. 옛날에는 한양에서 개성이나 평양·의주 등 서북쪽으로 가려면 벽제역을 거쳐 혜음령을 넘어야만 했다.



그 혜음령에 예부터 내려오는 두 도적 이야기가 있다. 도적질을 해 빼앗은 장물들이 더 이상 숲에 숨길 곳이 없을 만큼 많아지자 두 도적은 서로를 죽일 생각에 빠졌다. 물론 장물은 둘로 나눠가져도 충분했지만 두 도적은 나누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도적이 다른 도적을 죽일 요량으로 독이 든 술을 구하러 갔다. 다른 도적은 그가 돌아오면 단칼에 베리라 마음먹고 칼을 갈았다. 결국 독이 든 술을 갖고 오던 도적은 칼을 맞고 목이 날아갔다. 하지만 칼을 쓴 도적은 장물들을 독차지하게 된 것에 들뜬 나머지 무심결에 독이 든 술을 흥에 겨워 마시고 그 역시 죽었다. 족함을 모른 두 도적은 결국 모두 죽었다.



혜음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봉산이란 곳이 있다. 조선 중종 때 이조정랑·동부승지 등을 지낸 김정국(1485~1541)이란 사람이 기묘사화에 연루돼 삭탈관직 당하자 이곳에 은거해 살며 이런 말을 남겼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히 먹고, 등 따뜻하게 넉넉히 잠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히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히 보고, 봄 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히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히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히 맡는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를 넉넉히 즐기니 이것이 ‘팔여(八餘)’다.”



그는 ‘여덟 가지 넉넉함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에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자칭했다. 명봉산의 팔여거사 김정국은 훗날 다시 등용되어 당대에 칭송을 얻고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족한 줄도 모르고 장물을 독차지하려다 결국 둘 다 죽은 혜음령의 이름 모를 도적들과 억울하고 힘든 세월을 넉넉한 마음 하나로 이겨낸 팔여거사 김정국의 ‘팔자’를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은 다름 아닌 족함을 알고 모르고였다. 그래서 팔여가 있으면 팔자도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세상은 ‘팔여’보다는 ‘팔부족(八不足)’의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즉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멋진 그림을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여인과 한껏 즐기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고 여긴다. 여기 한 술 더 떠서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한탄하는 것”이 ‘팔부족’이다. 족함을 모르는 것은 병 중 큰 병이고,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이다. 역으로 족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심신이 온전할 수 있는 근간이요 최고의 행복 비결이다.



엊그제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지의 신대륙에 내려 거둔 첫 수확을 감사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특히 미국인들은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여긴다. 미국이란 나라가 시작은 미미했으나 나중에 창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족함을 알고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확의 계절 가을도 마지막 잎새만 남기듯 다해 간다. 그래도 족함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면 다가오는 겨울은 조금은 더 견딜 만 하고 또 따뜻할 수 있지 않을까? 족한 마음에 복이 깃들고 감사한 마음에 길이 트이는 법이다.


                                 -  2007년 11월 24일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