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라리 투기지역 아닌 곳을 발표하라.   ('06/11/23 조선일보)


21일 경남 마산의 아파트 분양 현장에 2만 請約청약 인파가 밀려들었다. 청약자 줄이 6㎞나 이어졌다. 사람들은 전날 초저녁부터 길바닥에 이불을 깔고 밤을 지샜다. 아파트 분양은 先着順선착순이 아니다. 자격만 되면 신청을 다 받아주고 추첨으로 분양을 가린다. 사람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모포를 뒤집어쓰고 길에서 날밤 새운 것이다. ‘이번 기회 놓치면 끝’이라는 불안과 초조가 서민들의 등을 떠민 것이다. 3년9개월 동안 경제정책이라곤 부동산 정책 하나만 주물러왔던 ‘부동산 전문 정권’의 실패가 국민의 마음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

이날 정부는 노원구·도봉구·중랑구·동대문구·서대문구 5곳을 ‘주택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헐하다는 지역이다. 이제 그런 곳까지 투기지역으로 묶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로써 서울 전체가 ‘주택·토지 투기지역’이 돼버린 것이다. 전국적으론 250개 시·군·구 가운데 88곳이 주택 투기지역, 95곳이 토지 투기지역이다. 국토의 47.2%에 ‘투기지역’ 꼬리표가 달렸다. 국민 전체의 약 70%가 투기지역에 살게 됐다.


투기지역을 지정하는 것은 집값이 들썩이는 지역에 양도소득세를 實去來價실거래가 기준으로 무겁게 매기고 금융기관 대출을 졸라매 투기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목적에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가 ‘투기지역’으로 지정하면 집값, 땅값은 더 뛰어오른다. 이른바 ‘버블 세븐’은 정부가 2003년부터 ‘투기지역’으로 묶어 놓았지만 지난 3년 내내 집값이 치솟았다.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마다 불 난 곳에 휘발유를 끼얹는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 정권의 경제 교과서에는 수요는 ‘투기’이고, 국민은 ‘투기꾼’이라고 쓰여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 정부는 3년9개월 내내 불 난 곳에 기름을 끼얹어왔다. 이 정부는 그저 놀고 있는 것이 국민을 돕는 길이다. 국민이 알아보기 쉽도록 길고 긴 투기지역 명단 대신 차라리 ‘非비투기지역’을 발표하는 개선책이나 생각하는 게 나을 것이다.


입력 : 2006.11.22 22:4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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