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 어느 분야나 일류(一流) 내지 1등은 있다. 일류는 그게 도박이나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영역만 아니라면 선망의 대상이 된다. 타고난 능력 때문이든, 뼈를 깎는 노력 때문이든 그 자체만으로도 타인의 존경을 받을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일류를 공격하고 심지어 없애자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건 서울대 폐지론이다.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이 “집권할 경우 서울대라는 명칭을 없애고 주요 국립대학을 서울대의 캠퍼스로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 정책위의장은 이후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안”이라며 한발 물러났지만 찬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중의 시기심 악용하는 政略

서울대 폐지론은 찬반을 떠나 이런 식의 문제제기가 과연 옳은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폐지론자들은 서울대가 대학 서열화를 부추기고 학벌과 간판을 우선시하는 고질적 병폐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병적인 수준인 학벌 집착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를 없앤다고 이런 병폐가 하루아침에 사라질까. 서울대만 사라지면 대학교육 평등이 실현되고 어떤 대학을 나오든 똑같은 대접을 받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울대 폐지론의 논리대로라면 이 땅의 모든 대학이 완전히 같은 수준이 되지 않는 한, 계속 상위 대학을 없애버려야 학벌사회가 근절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서울대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과 서울대를 없애면 학력위주 사회, 대학 서열화의 병폐가 사라진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그런데도 심심하면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서울대 폐지라는 다소 자극적인 구호를 통해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거기엔 학벌사회에서 좌절을 느낀 대중의 분노 내지는 시기심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다. 대선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비뚤어진 이중성도 문제

외고 폐지론도 마찬가지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외고와 자사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해 평등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목고나 자사고가 많은 부작용을 낳았고 제도 개선 여지가 큰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고교 교육시스템 개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단지 평등국가를 위해 외고와 자사고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정말 위험하다.

근본적교육제도나 교육풍토 개선은 뒷전이고 1등 내지 일류를 없애버리자는 식의 구호에만 매달린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재벌 해체나 대기업 규제 주장도 소위 ‘잘나가는 집단’에 대한 견제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대안 제시보다는 대중의 질투심 내지는 열등감을 자극해 일류는 모두 다 쓸어버리자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이런 식의 선동이 먹히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보기 힘들다.

혹시 외고 서울대 재벌 다 없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만들자면서 정작 자신의 자녀는 일류대 나와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재벌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게 우리 모습은 아닐까. 삼성전자는 밉지만 갤럭시는 갖고 싶고 사회는 평등해져야 하지만 우리 가족만은 아주 약간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우리 안의 비뚤어진 이중성이 일류를 없애자는 정치 구호에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