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9번 [합창] : Symphony No.9 D장조 op.125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베토벤이 이 곡을 구상한 것은 본 시절로, 프랑스 계몽주의와 칸트·실러의 영향을 받은 젊은 베토벤은 일찍부터 실러의 송시 <기쁨에 부쳐 An die Freude>에 곡을 붙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1822년 런던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의 위촉으로 본격적인 작곡에 들어갔고 1824년에 완성했다. 1824년 10월 빈에서 <장엄 미사 Missa Solemnis>의 몇 악장 등과 함께 초연되었다. 베토벤 자신의 감독 아래 실제적인 지휘는 미하엘 움라우프가 맡았다.

연주가 끝난 뒤 베토벤은 귓병으로 인해 박수갈채를 듣지 못하다가 독창자들이 그를 청중 쪽으로 돌려세워주자 비로소 연주가 성공적인 것을 알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기악곡으로 작곡되던 고전 교향곡에 성악을 포함시킨 최초의 시도로, 성악곡 사이에 삽입되던 간주곡의 성격을 갖던 바로크 시대 신포니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인 동시에 낭만주의의 문을 열은 베토벤의 혁신적 성향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네사람의 독창자와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함께 어울려 연주한 것은 음악사상 최초이며, 가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우렁찬 환희의 노랫소리를 벅찬감정으로 힘차게 노래한다.

교향곡의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인 합창 교향곡은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와 같은 어느 사조의 정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어서가 아니라, 혼돈과 갈등을 그 안에 내포하면서 상승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찬 작품이기 때문이다. 푸가의 도입, 압도적인 스케르초, 이중 변주, 성악과 합창의 도입, 유치하기까지 한 멜로디, 급작스러운 조바꿈, 혼돈스러운 독창자들의 노래 등등이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효과는 “천의무봉”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나, 이는 베토벤이 자신이 완성시킨 고전주의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옛것을 부활시키는 자기갱신의 노력이었다.

베토벤 후기 음악의 미학은 그의 정치학, 윤리학과 별개가 아니며, 이를 명백히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합창> 교향곡이다. 쉴러의 <기쁨에 부쳐>에서 가사를 빌려온 4악장은 베토벤이 본(Bonn) 시절부터 계획해온 30년 프로젝트의 완성으로, 모든 이들은 형제가 되고, 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껴안으며, 조물주와 자연 아래에서 인류는 기쁨을 만끽한다. 쉴러의 시는 프랑스 혁명 이후를 사는 베토벤의 신념이었으며, 유감스럽지만 현재까지도 그것은 유효하다다. 메이너드 솔로몬은 “예술적 걸작들에는 항상적으로 부활하는 잉여의 에너지,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에너지가 주입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제1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 ( 빠르고 장엄하게 )
              라단조 소나타형식 2/4박자

제2악장 : Molto Vivace ( 매우 빠르게 )
              라단조 스케르초 2/4박자

제3악장 : Adagio molto e Cantabile (느리고 노래하듯이 )
              내림나장조 4/4박자

제4악장 : Presto ( 아주 빠르게 )
             라단조 3/4박자 → 4/4박자


□ 제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un poco maestoso d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첫 16마디 동안 d단조의 딸림화음 중 3음을 생략한 빠른 음형을 연주하는 사이에 제 1주제에 주요 모티브가 잠깐씩 등장하다가 뒤로 갈수록 주요 모티브가 심화되어 크레선도로 제 1주제 혹은 제 1모티브군이 고조되어 등장한다. 이 주제가 제시된 이후에는 3음이 생략된 으뜸화음의 빠른 음형이 연주되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제 1주제가 다시 한번 제시되지만, 후반은 생략되고 대신 주제의 일부 모티브의 단편들에 의한 새로운 모티브를 도입하고 제 2주제로 이어진다. 정상적으로는 D장조로 제시되어야 할 제 2주제는 장조로 되어 있다. 제 1주제 외는 달리 즐거운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이어지는 부분 역시 대체로 앞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때때로 제 1주제의 부분들을 섞어서 발전부로 진행한다.

고전적 소나타 형식과는 달리 제시부의 반복은 없다. 그 까닭은 이 악장이 너무 길게 되는 것을 피할 의도도 있으며 또한 주제가 그 성격이 상당히 분명하기 때문에 반복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발전부는 총 184마디로서, 세 부분으로 나눠 불 수 있다. 제 1부분은 제 1주제에 의한 모티브적 발전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팀파니의 38마디에 걸친 포르티시모 트레몰로는 관악기의 거센 포효와 함께 가히 장관을 이룬다. 재현부는 301마디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주제의 형태나 연결 방법이 제시부와 상당히 달라져 있다. 여기에서 제 2주제는 D장조로 재현된다. 코다는 마치 제 2의 발전부를 시작하려는 듯이 제 1주제, 푸가의 주제 들을 화려하게 등장시켜 투티로 클라이맥스에 도달 했다가 갑자기 반음계적 상행을 두 번 시도하여 새로운 클라이맥스를 확립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침내 제 1주제를 유니즌으로 힘차게 연주함으로써 당당하게 악장을 마무리한다.

□ 제 2악장 Molto vivace d단조 3/4박자 스케르초.
고전교향곡의 표준 순서에 따르자면 이 악장은 제 3악장이 되어야 할 것이고, 제 3악장으로 되어 있는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가 제 2악장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이 교향곡에서 왜 이처럼 악장의 순서를 바꾸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들을 시도하고 있으나, 정작 베토벤 자신은 아무 이유도 말한 바 없다. 이 악장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속도가 극히 빠르다는 점, 그리고 팀파니가 통상 5도로 조율되지 않고 F음의 옥타브로 조율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이것은 스케르초 시작 부분에서의 푸가 첫음들의 움직임을 모방하기 위해서이다. 푸가악구는 3도 음정 단위들을 순차로 채워 넣은 것들의 연결로서 제 1바이올린이 피아니시모토로 제시한다. 중간 부분에서 목관악기들이 에피소드를 연주한다. 트리오는 2/2박자로 바뀌어 프레스토로 연주된다. 자체로서 3부 형식을 만들고 있는 바, 주선율은 호른으로 연주된다. 여기에 바순에 의한 대선율이 결합하여 대위법적 발전을 보인다.

□ 제 3악장 Adagio molto e cantabile B-flat장조 4/4박자
변주곡 형식이 악장은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주제에 대한 변주적 병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마디의 도입부를 거쳐 첫 주제가 바이올린에 의해 유도되면 목관이 그것을 반향한다. 두 번째 주제는 첫 주제의 장 3도의 위의 조성인 D장조로서 템포는 안단테 마에스토소로, 그리고 박자는 3/4박자로 바뀌어진다. 당김음 리듬으로 기품있는 무곡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 두가지 주제의 반복, 변주, 전조 등의 절차를 지나 코다로 이어져 다음 악장으로 쉬지 않고 넘어간다.

□ 제 4악장/ 5악장 Presto Allegro assai / Presto D장조 4/4, 3/2박자.
굳이 형식을 말한다면 변주곡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환희의 송가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들이 많은 투쟁을 체험해야 하며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듯한 이 악장은 프레스토 관현악에 의한 기괴한 소음으로 시작된다. 이 소음이 저음 현악기의 레시타티브에 의해 여러번 중단되다가 제 1악장의 첫머리가 나타난다. 다시 레시타티브가 있고 제 2악장의 부분이, 또 레시타티브를 연주한 다음 제 3악장의 선율이 회상되고는 합창의 모티브가 목관에서 나타나고 나서 비로서 저음 현악기에서 환희의 선율이 고조되어 간다. 다시 억센 소음이 나타나지만, 이것은 베토벤 자신이 쓴 바리톤 레시타티브에 의해 압도된다. 독창은 계속되어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베토벤을 모델로 하여 [장 크리스토프]라는 명작을 남긴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베토벤을 가리켜 그는 이제 승리자였다. 그는 인간의 옹졸함을 정복한 승리자였다. 자기 자신의 운명과 비애를 극복한 승리자였다고 말했다. 이 작품, 특히 제 4악장은 로맹 롤랑의 말을 실감케 한다.

1826년에 출간 된 초판 스코어의 제명에 [실러작 송가'환희에 붙임'을 마지막의 합창으로 한 대관현악, 4성의 독창, 4성의 합창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폐하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루드비히 반 베에토벤에 의해서 봉정된 교향곡 작품 125]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이 작품의 바른 명칭이다.

베에토벤은 1793년 고향인 본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이 곡의 작품을 구상해 왔는데, 1822년 10월 10일에 런던 필하모니협회(1813년 창립)에서 교향곡의 작곡 위촉장을 받고 합창 교향곡 구상을 즉시 실현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으며, 1823년 말경이거나 1824년 초에 이 거창한 교향곡은 완성되었다.

작곡 의도를 품은 때로부터 완성까지 실로 30여년에 걸친 것이다.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네르 극장에서 베에토벤 자신의 총감독하에 움라우프의 지휘로 그의 다른 작품 [서곡 헌당식], [장엄 미사]와 함께 초연되었다. 등을 지고 서 있던 베에토벤이 청중들의 열광적인 박수소리를 듣지 못하자, 알토 가수인 웅가르가 팔을 잡아 알려 주었다. 그가 돌아다 보고 답례했을 때 청중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더욱 열렬한 갈채를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