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행정학과 김병준(60) 교수는 1일, 7·30 재·보궐선거 참패로 혼돈에 빠진 야당의 재건(再建) 방향에 대해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라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비전과 대안을 세우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역적 기반과 상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연명(延命)해 온 지금의 야당 체질로는 비전에 기반을 둔 리더십이 나올 수 없다"며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문을 닫고 새 야당에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등을 지냈지만 지금의 야당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야당이 최근 선거에서 연패(連敗)하고 있다.

"집권 초·중반기 선거에서 야당은 지기도 어렵다. 그런데 계속 지고 있다. 국민은 이미 야당에 '너희들은 아니다'라는 신호를 계속 보냈는데, 야당 사람들만 참패를 참패로 인식하지 않았다. 위기를 위기로 인지하지 못하는 정당은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정당이다. "

 

―김한길,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지금의 야당이라면 문재인 의원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 대표를 맡더라도 또 '리더십 부재'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 새정치연합이 비상대책위를 만들고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로 새로운 사람을 내세운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근본적으로 사람과 문화, 정당 체질을 바꿔야 한다."

 

―국민이 왜 야당을 외면하고 있나.

"보수 정당이 대기업이라면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기려면 고객에게 꿈과 신뢰를 명확하게 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익숙한 대기업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야당은 꿈을 팔아야 하는데 꿈도 없고 실력도 없는 정당을 누가 지지하겠나.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이 잘못하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새정치연합은 그런 반사이익을 기대하면 안 된다. 비전이 없으니 지역적 기반과 진보라는 포장만 새로 하는 편안한 방법으로 연명을 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딱 두 가지다. 집권당을 공격하는 것, 또 하나는 야권 연대니, 단일화니, 영입이니 하면서 수시로 밖에서 새로운 사람이나 세력이 생기면 끌어들이는 것. 이 두 가지밖에 없었다."


―새정치연합이 비상대책위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려 하고 있다.

"비대위, 혁신 이런 것들은 이미 10년 전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다 해왔던 것이다. 또 내부 계파들이 자신들의 세(勢)를 불리면서 당 대표 얼굴을 바꾸는 정도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정당을 폐쇄하는 편이 진보와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을 위해 나을 수도 있다. 지금 야당이 문을 닫으면 그 자리에 적어도 새로운 세력이 등장은 할 것 아닌가."

 

―새 리더십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

"우선 자신들이 가진 비전과 대안이 무엇인지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치열하게 논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논쟁을 하다 보면 패거리나 계파가 아닌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안을 제시하며 논쟁을 리드하는 사람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사람을 죽이고 배척하는 네거티브 게임이 아니라 사람을 보듬고 키우는 포지티브 게임이 돼야 한다. 생각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생각 있는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야당은 리더(인물)를 고를 때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 대통령실장 했으니, 시민운동 했으니, IT 기업을 경영했으니 당에 들어오라'는 식으로 불러 놓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왔다. 국민이 믿고 따르는 대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나이와 배경, 계파를 따지지 말고 리더로 키워야 한다. 그것이 생각 있는 정책적 리더십이다."

 

―10여년째 야당 인물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인적 쇄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지금 야당은 여러 가지 면에서 폐쇄적이다. 야당에 들어가면 멀쩡하던 사람도 상처만 받는데 누가 들어가려 하겠나. 한·미 FTA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반(反)개혁으로 몰리고, 인신 공격을 당한다. SNS에서 한바탕 여론 재판까지 당해야 한다. 실용적이고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배척을 당하고 모멸당하는데 어떻게 새로운 리더가 나올 수 있겠나. 새로운 생각(노선)과 새로운 사람을 수용할 수 없는 정당이 돼버렸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그 생각이 맞다면 리더까지 될 수 있도록 정당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 2014.08.02 조선일보 정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