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솔로를 위한 바가텔 A단조 WoO59], 일명 [엘리제를 위하여]로 불리는 이 음악만큼 전 세계 사람들의 귀에 낯익은 멜로디는 없을 것이다. 그 단순하지만 애절하게 아름다운 이 환상적인 소네트는 200년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게끔 해준 명곡 가운데 명곡으로 손꼽힌다. 오른손의 특징적인 멜로디와 왼손의 아르페지오 반주로 시작하며 소심한 듯한 격정적인 발전부와 짧은 카덴차가 지나간 뒤 다시금 반복부로 접어든다. 처음 시작부의 그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발산한 뒤 공기 속으로 사그러지듯 마무리되는 이 곡은 무척이나 간결하고 짧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와 역사적인 배경은 비장하다 못해 미스터리하다.
 

 

엘리제는 누구인가?
지금은 분실된 자필악보에는 작곡가가 직접 ‘엘리제를 위하여’가 아니라 ‘테레제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적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곡은 1810년 초에 두 명의 백작 영애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베토벤이 새롭게 결혼하고자 마음먹었던 18세의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를 위해서 작곡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거친 성격과 형편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베토벤은 단호히 청혼을 거절당한다.

 

작품의 명칭이 ‘엘리제’로 굳어진 것은 1867년 초에 처음으로 이 작품을 출판한 루트비히 놀이 친구 브레들의 집에서 베토벤 자필 악보를 보며 단지 글자를 잘못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브레들은 이보다 앞서 이 자필악보를 테레제 말파티로부터 선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테레제 말파티가 베토벤의 ‘엘리제’였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테레제인 확률이 높았을 뿐이다.

 

다른 가설도 존재한다. 베를린의 음악학자 클라우스 마르틴 코피츠(Klaus Martin Kopitz)는 엘리자베스 뢰켈(Elisabeth Roeckel)이라는 여인이 바로 ‘불멸의 연인’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베토벤보다 23살 어린 엘리자베스 뢰켈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주인공인 플로레스탄 역을 맡았던 조세프 뢰켈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1814년 3월 9일 첫째 아이의 세례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엘리자베스가 아닌 ‘마리아 에바 엘리제’라고 기록했다. 이 증거가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의 그 이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후 1810년 엘리자베스가 빈으로 떠나게 되면서 그녀와의 추억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이라는 가설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자필악보가 발견되지 않는 한 확신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듯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질 수 없는 많은 가정과 의문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는 단 하나의 진실만을 가지고 있다. 바로 베토벤의 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은 사랑에 대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베토벤의 사랑이 담긴 곡, 그렇다면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는 바로 ‘불멸의 연인’을 둘러싼 것일 터이다. 게리 올드만의 불꽃같은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1994년작 영화 [불멸의 연인]은 지금까지 전해진 베토벤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뒤바꾼 영화로서 그 의미가 높다. 감독인 버나드 로즈는 줄리에타 귀차르디와 베토벤의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에르도디 백작 부인,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의 부인인 요한나, 이렇게 세 명의 여인을 내세운다. ‘카바티나’가 애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이 영화는 점차 요한나를 불멸의 연인으로 격상시키게 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픽션임은 의심할 바 없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은 그의 사후 발견된 세 통의 편지에서 기인한다. 발송되지 않은 이 편지에는 여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편지를 쓴 장소에 대한 아무런 힌트도 없다. 다만 여성의 정체를 고의로 모호하게 흐렸고 유일한 지리적 표시 또한 K라는 이니셜로 은폐되어 있다. 그녀의 결혼 여부나 부모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다만 편지의 어조로 보아 그녀가 베토벤의 사랑에 응답했으며, 그와 결합하기 위해 커다란 희생을 치룰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편지는 1812년 여름에 쓴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베토벤은 2년 전 테레제 말파티로부터 거절당했을 때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베토벤은 사랑과 가정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바램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던 편지의 주인공과 맺어질 수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또다시 홀로 된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암흑이었을 것이다.

 

그 ‘불멸의 연인’은 1799년부터 베토벤으로부터 레슨을 받아왔던 테레제 폰 브룬슈빅이라고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는 테레제의 여동생이며 다음 백작의 미망인인 요제피네 폰 브룬슈빅이나 괴테의 청년 시절의 친구였던 베티나 브렌타노의 사촌인 안토니에 브렌타노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안토니에 브렌타노의 경우는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비교적 베토벤의 입장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스토리에 해당한다. 미국의 음악학자인 메이너드 솔로몬은 1977년에 펴낸 베토벤 전기에서 안토니에 브렌타노를 ‘불멸의 연인’으로 지목했다. 베토벤은 매번 여자들에게 거절당하는 역할이었지만, 브렌타노와의 경우엔 전무후무하게 베토벤이 스스로 ‘결정적인 순간’에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마흔 즈음의 베토벤의 연애사를 낱낱이 밝히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엘리제가’가 누구이든 ‘불멸의 연인’이 누구이든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베토벤에게 있어서 이 두 인물은 사랑이라는 관념 안에 자리잡은 동일한 대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불어 끊임없이 마음의 안식을 갈구하고자 했던 베토벤은 매번 상처를 입고 정신적 불안에 시달렸지만, 그 고통이 인류 최고의 음악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이다.

 

                                                                       - 글 박제성 / 음악 칼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