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대의 음악적 경험 중 일부는 조 새트리아니의 방에서 그와 서로 등을 기대어 앉은 채 몇 시간이고 잼을 하던 때이다. 그때는 어떠한 에고(ego)도 없고 오로지 음악과 무언의 커뮤니케이션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록 기타의 현대화 첨단화를 부르짖는 미래주의자 스티브 바이는 조 새트리아니와 함께 가장 앞서가는 인스트루멘틀 기타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스티브 바이는 1960년 6월 6일 뉴욕 롱아일랜드의 이탤리언 지역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그는 6살 때 오르간을 배워 기초이론을 익혀갔다. 그러다가 9세 때 우드스탁 라이브 영화에 나오는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를 보고 강한 충격을 받고, 12살 때엔 레드 제플린의 공연을 접하고 일렉트릭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유명 기타리스트의 곡들을 카피하며 실력을 연마해 맨하탄 익스프레스(Manhattan Express), 레인지(Range), 서커스(Circus) 등의 밴드를 조직하기도 했다. 또한 이 무렵 스퀘어(Square)의 기타리스트였던 조 새트리아니를 알게돼 그로부터 얼마간의 기타교습을 받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엔 보다 깊게 음악을 배우기 위해 78년 9월 버클리 음악원에 입학, 음악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 학교에 다니면서 프랭크 자파의 난곡 중의 하나인 'Black Page'를 완전 채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때부터 익힌 기타실력을 통해 이후 ‘기타 플레이어'지의 채보를 맡기도 했다.

그리곤 80년 6월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게 되었고 81년엔 [Tinsel Town Rebellion] 앨범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프랭크 자파 그룹에서 [Them Of Us] 등 몇 장의 진귀한 앨범 제작을 함께 한 후 그룹을 탈퇴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스튜디오를 만든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앨범이 첫 솔로 데뷔작 [Flexable](84)이다. 여기엔 'The Attitude Song', 'Call It Sleep'같은 획기적인 연주곡들이 수록되어 80년대 록 기타 연주의 새 장을 열어 가는데 일조 하였다.

이후 그는 84년에 잉베이 맘스틴의 후임으로 알카트라즈(Alcatrazz)에 가입해 이들의 3번째 앨범 [Disturbing The Peace](85)를 공동제작 하였다. 스티브 바이는 이 앨범 수록곡 전부를 어레인지하여 음악적 감각의 우수성을 입증 받았고, 태핑과 아밍 기술에 의한 기상천외한 주법으로 잉베이 이후의 알카트래즈 사운드의 공백을 메웠다. 일본공연에서 그는 인트로부터 오버네크의 태핑솔로를 연주하고 잉베이의 애드립을 완전 카피한 뒤, 그것을 태핑으로 여유 있게 연주했었다.

그 뒤 LA의 한 언더그라운드 바에서 데이빗 리 로스를 만나 서로 뜻이 통하자 스티브는 그의 그룹에 가입하게 된다. 데이빗 리 로스 밴드에서 스티브는 [Eat’Em And Smile], [Skyscraper] 등 2장의 앨범에 참여, 그의 눈부신 트리키 기타 플레이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이 밴드에서도 오래있지 못하고 화이트스네이크에 가입해 89년 [Slip Of The Tongue]에서 뛰어난 테크닉의 기타솜씨를 보여준다. 그리곤 90년으로 들어와선 대망의 두 번째 솔로앨범 [Passion & Warfare]를 발표하고 자신의 현대적인 기타 인스트루멘틀리즘을 계속해서 추구했다. 93년에 스티브 바이는 신보 [Sex&Religion]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한마디로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 록 기타리스트다. 주로 태핑기술과 아밍기술로 갖가지 음들을 만들어내는 그는 특히 트레몰로 바 자체를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 듯 각양각색으로 활용하는 트리키 프레이즈로 정평이 높다. 스티브 바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직접 스케일 패턴을 만들어 쓰는 독자적인 라인전개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스티브 바이의 프레이즈 패턴은 록 기타사의 보물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모나이징과 대위적인 진행이 난해하리만큼 복잡해 결코 그 자신이 아니면 채보가 불가능한 테마연주를 만들어 낸다.

스티브 바이의 또 하나 특징적인 점이라면 타 기타리스트들보다 낮은 음을 첨가한 7현 기타를 사용해 이색적인 프레이즈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타로 인해 그는 기존 기타보다 약 4도 가량 낮은 음을 연주할 수 있다. 스티브 바이는 90년대 초반까지 매우 실험적인 기타 성향을 보였으나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며 펜타토닉 등의 어프로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다 정통적인 플레이어로서 변화된 노선을 들려주었다.

사운드메이킹에 있어서도 첨단 테크니션다운 음량을 만들어낸다. 디지틀 딜레이에 의해 풍부한 음량을 뽑아낸다거나 H3000하모나이저에 의한 변화무쌍한 음정변화, 크라이 베이비를 이용한 인간의 목소리 연출, 3대 이상 이퀄라이저를 접속하는 독자적인 톤 개발 등 그의 실험적인 사운드메이킹은 언제나 기타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사 용 장 비
◇Ibanez JEM77 Series(Steve Vai Model)
◇Marshall Amps(4대), Soldano
◇Mesa Boogie Strategy 400 Power Amp, Yamaha SPX 90, Roland SDE 3000, Lexicon PCM 70, TC Electronics Multi Signal Processor, Ibanez Stereo Reverb, BOSS SP-1, JEN Cry Baby, Eventide Harmonizer H 3000, H 969, Ultra Harmonizer

글/조성진



스티브 바이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이탈리아 거주지 지역에서 출생했는데 그가 출생한 곳은 대도시의 부유층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의 좋은 환경에다 음감이 선천적으로 뛰어난 이탈리아인의 피를 타고난 그는 '음악인'으로서 갖춰야 할 선천적인 요건은 일단 다 갖춘 셈이라고 하겠다. 이것이 향후 그를 '거장' 의 자리에 올려놓는 데 상당히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린시절 프랭크 자파(Frank Zappa)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등에 크게 감명 받은 그는 6살 때부터 치던 -아마 부모님의 권유였을 것 같은데- 오르간과 아코디언 등의 건반악기를 접고, 14살부터 기타를 잡기 시작하는데 학교의 음악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악보를 보는 법을 익히고 키스(Kiss), 레드제플린, 지미 헨드릭스의 카피를 하며 교내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를 만난 것은 그때 쯤이다.

그는 조의 연주에 감명받으며 그를 존경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그를 만나기로 계획하는데, '마음 착한' 조는 이 열정적인 젊은 이탈리아계 청년의 청을 뿌리치지 않고 그에게 조금씩 레슨을 해 주었다(새트리아니 역시 롱아일랜드 출신의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기에, 한민족이라는 그런 감정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1년 반 동안 조의 지도를 받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티브는 버클리 음악원에 진학 -조 새트리아니, 토니 매칼파인 역시 이곳을 거쳤다-해 고급 교육을 받으면서 '채보'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그의 장기가 된 이 기술로 [Guitar Player]지와 일을 하기도 했다).
버클리 음악원을 나온 스티브에게는, 이제 아우토반만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밴드에 가입하고 이리 저리 다니면서 수십 장의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그의 첫 번째 타겟은 프랭크 자파 밴드(Frank Zappa Band) 였다. 유년시절부터 그에게 음악적인 영감을 주어 온 프랭크 자파와 음악을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 스티브로서는 얼마나 좋았겠는가! 프랭크 자파와 8년동안 함께 하면서 음악적인 기술들과 스테이지 퍼포먼스, 자질구레한 엔지니어링 등을 습득한 스티브는 84년부터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하고 85년에는 잉베이 말름스틴이 떠난 알카트라즈(Alcatrazz)에 가입해서 음반을 한 장 내고, 밴드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나와서 마침 반 헤일런을 튀어나와 밴드를 모집하고 있던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의 밴드에 참여했다가 앨범을 두 장 발표하고 다시 탈퇴했더. 이어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 에 들어가서 이전까지는 좀 색다른 음악을 좀 하다가 -이전까지는 그의 하이테크니컬한 역량을 마음껏 과시하는 스타일이었으나 화이트스네이크에서는 그도 '리듬' 중심의 플레이를 했다- 완전히 솔로로 돌아서서 음반을 계속 발표하고 이곳저곳 세션으로 참가하고 있다.

스티브 바이는 첨단 기술을 모조리 사용하고 컨템포러리한 테크닉의 난무에 반기를 드는 사아티스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러한 하이테크닉 플레이를 주로 태핑과 아밍만을 가지고 사용한다는 점이며, 왼손과 오른손이 고속으로 교차되는 고난도 양손 태핑도 그의 프레이즈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러한 고급기술을 바탕으로, 기타 단 한대로 마치 3대가 내는 것처럼 다중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의 기타는 보통의 기타보다 현이 하나 더 많은 7현 기타인데 종래의 기타보다 4도 낮은 저음을 보강해 기존의 기타로는 불가능한 음역을 넘나들 수 있다. 또 디지털 딜레이와 하모나이저에 의한 풍부한 음정변화, 그리고 크라이 베이비를 사용한 -이것은 아마 스티브 바이가 가장 처음이지 않을까?- 인간 음성 흉내의 시작 등 그가 시작한 기술들은 많기도 하다. 그가 발표해 온 앨범만큼이나...
거의 수십 장에 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솔로앨범도 보통의 기타리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편이며 여러 밴드를 두루 거치면서 경험을 쌓았다.

새트리아니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특정적인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음악을 추구한다. 도시적인 블루스, 헤비한 리프를 바탕으로 하는 하드록 계열이나 네오클래식까지. 가장 최근 발표한 [Fire Garden]에서도 그러한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새로운 앨범마다 고난도 테크닉으로 듣는 이를 감탄과 경악의 세계로 몰아가는 그의 새로운 앨범을 기대한다.

글 / Burning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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