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헤비메탈의 아버지라 평가하고 싶은 어둠의 제왕 Black Sabbath. 30년이 넘게 그들을 둘러싼 흑마술(Black Art)과 사타니즘이라는 악명,  - 이제와 생각하보면 정말 혁신적인 사운드로 무장한 - 헤비사운드의 아버지라는 명성, 이 양 극단을 넘나드는 밴드 가 바로 그들이다. 영국 버밍햄의 노동자 계층에서 자란 Michael Osbourne - > Ozzy Osbourne (vocalist), Frank Anthony Iommi -> Tony Iommi (guitar), Terrence Michael Butler -> Geezer Butler (bass), William Thomas Ward -> Bill Ward (drums) 이 네 사람이 이와같은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받게된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그들의 가지고 있던 엄청난 음악성과 노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처음엔 Ozzy와 Geezer가 밴드를 결성하고자 할 때 당시 영국을 흔들던 사이키델릭의 냄새가 물씬풍기던 Mythology란 밴드의  Tony와 Bill을 만난건 우연 혹은 운명이었을 것이다. 당시 밴드는 Polka Tulk라는 동네 인디언 의상점을 본따 밴드명을 지었다가 후엔 Earth 로 정하고 영국내에서 활동한다.  점차 지역에서 명성을  얻어가며 비틀즈가 공연했던 곳으로 유명한 독일 하노버의 Star Club에 출연하기도 한다.

얼마 후 같은 밴드명이 있음을 알게된 멤버들은 1968년 밴드명을 Black Sabbath로 정한다.  밴드명의 유래는 Black Sabbath의 커버아트와 라이너 노트를 담당하던 Hugh Gilmour의 말을 따른다면  192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B급 공포영화의 주연으로 단골 출연했던 전설적인 배우 Boris Karloff의 영화 [Black Sabbath]에서 따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암튼. 점차 명성을 얻어가던 밴드는 자연스레 레코드사의 유혹을 받게되고 당시엔 신생 레이블이었던 Vertigo와 계약을 하게된다.  당시 600 파운드를 받은 멤버들은 이를 정확하게 1/4씩 나누어  가졌는데 이돈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번 가장큰 돈이었다고 Ozzy는 회고한다.

레코드사의 기획진은 Black Sabbath에게 어둠의 저주를 내린 장본인이다. 사실 블랙사바스와 흑마술이 연관된 사유는 사실 밴드의 흥행을 위한 소속 레코드사의 철저한 흥행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상업적 코드였다.

당시 흑마술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의 성장과 함께 라이브에서 흑인여성의 옷을 벗긴다든가, 엽기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진짜 오컬트적인 밴드 Black Widow의 인기를 본 레코드사는 자신들의 새로운 신인밴드에게 어둠의 저주를 내린다. 실제로 밴드멤버중에 흑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은 Geezer Butler 정도였을까. 나머지 사람들은 흑마술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암튼 유명한 이야기지만 (레코드사의 홍보 전략에 의해) 13일의 금요일에 발매되었다는 1970년 셀프타이틀 앨범 [Black Sabbath]는 그당시 가장 혁신적 사운드였고 그후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음반이다. 그들의 첫앨범 [Black Sabbath]는 전영국 차트 탑 10에 올랐고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이 앨범의 매력은 여전하다. 눅룩하고 어두운,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했지만 무언가 그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지하실로 한걸음씩 내려가는 기분 이 앨범은 바로 그러한 기분을 제공한다.

이미 이 앨범은 그후 30년간 밴드를 지배하는 두가지 아이콘, 엄청난 헤비 리프와 기이한 보컬로 점철된다. 노동자로 근무하며 오른손가락 두 개가 잘린 Tony의 독특한 오른손 뮤트와 리프, 엄청난 이펙트가 들어간 듯하나 자연그대로인 Ozzy의 보컬, 엄청난 리듬섹션과 사이키델릭, 블루스, 째즈의 즉흥성이 넘쳐나는 연주까지, 이미 2년간의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통해 밴드의 오리지널러티는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그해 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Paranoid]은 헤비메탈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앨범 10장 안에 들어가리라 장담할 만큼 충격적인 앨범이다. 헤비메탈에 있어 리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한 타이클 곡 Paranoid 를 담고 있는 이 앨범은 영국차트 1위와 미국 차트 8위에 오를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앨범에는 Paranoid뿐만 아니라 그해 가을 밴드는 미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 앨범 녹음에 들어간다

3번째 앨범 [Master of Reality]는 1971년 8월 발매된다.  이 앨범은 라이브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인 "Children of the Grave", "Sweet Leaf" 와 같은 곡뿐만 아니라 우울한 슬로우 넘버로 유난히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 Solitude"와 같은 명곡을 담고 있다. 미국 앨범 차트 10위내에 랭크되면서 이 앨범 역시 그들의 대표 앨범 중 하나가 된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밴드의 네 번째 앨범 [Vol. 4]는 우리에게는 Change라는 발라드 넘버로 너무나 유명한 앨범이다. 그외에도 특유의 음울한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Supernaut", "Under The Sun" 등과 같은 곡과 자주 나타나는 연주곡인 Laguna Sunrise 등도 인기를 얻었다. 73년 투어 후 만들어진 또 하나의 고전 [Sabbath, Bloody Sabbath]는 타이틀 트랙뿐만 아니라 Killing Yourself to Live, Looking For Today 과 같은 명곡을 배출했다.

그들의 6번째 앨범 [Sabotage]는 1975년 발매된다. "Symptom of the Universe" 과 같은 명곡이 실린 이 앨범 역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밴드는 이제 메이저 밴드로서의 역량을 보여준다. 밴드의 상업적 성공에 따라 레코드 사는 "We Sold Our Soul For Rock 'N' Roll"이라는 베스트 앨범을 발표한다.

1976년 발표된 [Technical Ecstasy]의 경우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She's gone 덕분에 유명하지만 해외에서는 "Gypsy", "Dirty Women"과 같은 곡이 인기를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후기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It's All Right"이란 노래를 좋아하는 데  이 노래는 Ozzy가 아닌 Bill이 부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점차 Ozzy의 마약과 알콜 중독이 문제가 되어가고 급기야 77년 가을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Ozzy는 밴드를 탈퇴하고 만다. 급한 대로 Fleetwood Mac 출신의 Dave Walker를 뽑아 활동하던 밴드는 다시금 Ozzy와 함께 [NEVER SAY DIE]를 발표한다. 돌아온 탕아 Ozzy는 앨범 수록곡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졌고 "Swinging the Chain"은 Bill이 부르기도 했지만 타이틀 곡 "Never Say Die"의 스트레이트한 맛은 여전하다.

이 시기에 벌어진 멤버간의 불화는 결국 Ozzy의 탈퇴 혹은 해고로 이어졌고 그를 대신해 Tony가 그전부터 눈여겨 보았던 Ronnie James Dio가 가입한다. 이미 Elf와 Rainbow에서 보여준 드라마틱한 보컬은 새로운 Black Sabbath의 영광을 예고했고 그에 부응하여 명 프로듀서 Martin Birch의 지휘하에 녹음된 새로운 앨범 [Heaven & Hell]은 메탈사에 남는 명작으로 기억된다.

80년대 국내 많은 아마추어 밴드들의 카피곡이었던 타이틀곡 Heaven & Hell'을 비롯해 장중한 맛이 매력적인 "Lonely Is The World" , 오프닝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인 " Children of the Sea" 등 어느 곡 하나 쉽게 놓칠 수 없는 곡들이다. 미국과 영국 투어를 하던 중 하와이 투어를 마치고 갑작스레 드러머 Bill이 탈퇴를 했다. 알콜과 개인적인 문제로 탈퇴한 그를 대신해 스틱을 잡은 이는 Axis 출신의 명 드러머 Vinnie Appice였다. 투어 후 밴드는  다시금 새앨범 녹음에 들어간다.

1981년 발표된 [Mob Rules] 역시 Turn Up The Night, The Mob Rules와 같은 히트 곡을 담고 잇으며 앨범 발표 후 밴드는 다시금 미국과 영국 투어에 오른다. 이때 녹음된 라이브 트랙은 다음해인 1982년 [ Live Evil]이란 제목으로 밴드의 첫 공식 라이브 앨범이다. 참고로 한동안 [Live At Last] 라는 이름으로 진열장을 장식하던 앨범은 1975년과 76년사이에 녹음된 부틀랙 앨범이다. 라이브 앨범 발매직전 Ronnie James Dio는 Vinnie Appice와 함께 밴드를 떠나 자신의 그룹인 디오를 결성하는 데 결별이유에는 밴드의 중심인 토미와의 불화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Live Evil 앨범 커버에 Ronnie의 이름을 마음대로 올린 문제는 Ronnie 탈퇴의 결러정적인 요인중 하나였다.

1983년 발표된 [Born Again]엔 딥퍼플의 보컬리스트였던 Ian Gillan이 참여하였고 원멤버였던 드러머 Bill Ward 역시 참여한다. 한동안 Deep Sabbath라 불리울 만한 시기에 발표된 앨범엔 길란의 역량이 돋보이는 슬로우 곡  Born again, Trashed, Digital Bitch and Zero The Hero 같은 곡들이 담겨있다.

건강상의 문제로 탈퇴한 Bill을 대신해 미국과 영국 투어를 위해서 ELO출신의 드러머 Bev Bevan 이 참여하였다. 전미, 전영 투어 직후에 Bev Bevan과 Ian Gillan이 탈퇴하였고 새로운 보컬리스트 Dave Donato가 참여했지만 그는 곧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 내용이 문제가 되어 해고되고 Jeff Fenholt, Ron Keel 등이 밴드의 보컬리스트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만 한동안 밴드는 보컬없이 활동정지인 상태였다.

1985년 7월 전세계적으로 열린이디오피아 난민 돕기 운동인 Live Aid 중에 Philadelphia, JFK Memorial Stadium에 Ozzy와 원년 밴드 멤버들이 나타나 3곡을 연주하고 내려간 후 많은 사람들에게 Black Sabbath 원년 멤버들의 재결성의 기대가 컷지만 이 라이브 이후 멤버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 결국 Black Sabbath는 해체의운명을 맞게 된다.

1986년 발표된 [Seventh Star]에는 다시 딥퍼플 출신의 베이시스트이자 명보컬리스트인 Glen Hughes가 참여하는 데  사실 이 앨범의 경우 Tony의 솔로앨범으로 기획되었다가 레코드사의 종용에 의해 Black Sabbath라는 이름을 걸긴했지만 Tony 역시 탈퇴한 밴드 멤버에게 미안했던지 Tony Iommi's Black Sabbath라는 이름으로 발표된다. 주로 슬로우한 헤비 넘버들이 주를 이룬 앨범중에 수록된 "In Memory" 라는 짧은 발라드 넘버는 보컬로서도 그 매력이 뛰어난 Glenn의 호소력 넘치는 보컬이 두드러 진다. 하지만 글렌 역시 전미 투어도중 탈퇴하고 그 대신 블루스 풍의 매력적인 보컬을 자랑하던 정말 출중한 싱어이자 93년 에이즈로 안타깝게 사망한 Ray Gillen을 대신 기용하여 전미투어를 마친다.

1987년 그들의 14번째 앨범 [The Eternal Idol]이 발표되었다. 이때의 라인업은 Tony Iommi 를 중심으로 Tony Martin (V), Dave Spitz/Bob Daisley (B), Bev Bevan (Percussion), Eric Singer (D)가 참여한다.

사실 이 앨범의 원 보컬리스트는 Ray Gillen이었지만 그는 녹음을 마치고 앨범발매 직전 탈퇴하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오지 오스본 만큼이나 블랙 사바스의 보컬리스트답다고 평가하는 Tony Martin이 보컬 트랙만 따로 녹음을 하여 발매된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the shining", "lost forever"같은 수작과 함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범 타이틀 곡 "The Eternal Idol"이다. 이 앨범은 이후 이전의 앨범에 비해 보다 강화한 신비한 사운드와 신화적인 가사, Tony의 시원시원한 파워 보컬은 이후 블랙 사바스 사운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앨범이기도하다.

1989년 발표된 15번째 앨범 [Headless Cross]에서 가장 중요한 사운드의 키는 이제는 고인이 된 코지 파웰의 드러밍이다. 타이틀곡 "Headless Cross"에는 보여지는 엄청난 울림의 드러밍은 헤비 드러밍의 교과서이자 앨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라인업은 Tony Iommi (guitars), Tony Martin (vocals), Cozy Powell (drums) and Laurance Cottle (bass)로 구성되었으며  앨범 발표 후 Laurance는 곧 탈퇴하고 Vow Wow, Gary Moore등과의 협연을 통해 그의 재능을 보여준 Neil Murray가 참여한다.

1990년 발표된 [TYR]는 북유럽 신화에서 차용한 스토리 위에 [The Eternal Idol]에서 돋보였던 신비주의적 사운드가 돋보이는데 "Anno Mundi"와 같은 곡은 헤비넘버를 좋아하시는 팬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곡이기도 하다.

1991년 2기 라인업인 Ronnie James Dio, Geezer Butler, Vinnie Appice, Tony Iommi가 다시 뭉친다는 소문은 다음해 발표된 [Dehumanizer]로 현실화 되었다. 이 앨범은 영화 Wayne's World의 수록곡 Time Machin의 인기 덕에 앨범차트 20위 권에 오르고 투어도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투어 후 멤버들은 다시금 흩어진다.

1994년 [Cross Purposes]와 1995년 [Forbidden]은 다시금 Tony Martin을 영입해 만든 앨범이지만 상업적인 성공과는 좀 거리가 먼 앨범이 되어 버린다.

1997년은 블랙 사바스와 그들의 팬들에겐 뜻깊은 날이었다. band aids이후 다시금 결성된 원년 멤버들이 그들의 고향인 버밈햄의 NEC Arena에서 12월 4일과 5일 역사적인 재결성 공연을 갖게되고 이 때의 라이브는 [Reunion]이라는 이름으로 이듬해 전세계에 배포되어 그들의 팬들에 대한 보답을 하게된다.  

모든 것에 양지와 음지가 있고 70년대 락음악의 양지를 Deep Purple과 Led Zepplin이 양분하고 있었다면 메탈음악의 어두운 세계는 Black Sabbath의 세계였으며 그러한 면에서 볼 때 Black Sabbath는 사상적, 음악적으로 헤비메탈의 파이오니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당시의 블루스와 락, 특히 60년대를 풍미했던 사이키델릭 음악 등을 그들의 음악적 배경으로 한다고 하는 평론가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의 사운드의 근원을 밝혀내는 것이 누구도 쉽지 않은 일일 만큼 그들은 혁신적이었다. 밴드에게 씌워진 도덕적 굴레가 멤버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건 혹은 쇼비즈니스계의 상업성에 의해 생긴 것이건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음악이 그후 밴드에게 미친 영향이다

신나고 재미나는 듯이 보이는 세상 아래 감추어져 있는 인간들의 어두운 세계를 굳이 들추어내는 부정적 태도, 신비주의적이고와 이교도적인 그래서 종교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메스컴, 여론과 비평가들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가사, 어둡고 느린 그러나 두려움을 갖게하는 사운드, 오지 오스본의 엽기적인 라이브 매너, 헤비메탈에 있어 Riff가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었던 기타리프, 이 모든 것은 바로 헤비메탈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미학 그 자체를 정의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을 헤비메탈 사운드의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잡게한 Black Sabbath는 현재까지 언제나 진행중인 두려움과 호기심이며 인간의 감추어진 욕망에 대한 또하나의 카타르시스이다. 그러하기에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고 그들에게서 파생된 수많은 메탈음악의 흐름들인 블랙메탈, 데쓰메탈계에 항상 새로운 신성들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메탈음악의 어두운 세계의 주인이자 아이콘은 여전히 Black Sabbat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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